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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Oct 27. 2016

창문을 열고 달려보세요

#34. 크로아티아 렌터카 여행

자다르에서 렌터카를 빌렸다.

플리트비체와 마지막 크로아티아의 여행지인 로빈을 가기 위해서다.     

버스로도 갈 수 있지만 이동시간과 교통비 등을 고려했을 때 큰 차이가 없어 큰 맘먹고 렌터카를 빌려본다.     


낯선 외국에서 운전을 한다는 건

생각만큼 익숙한 기분만을 가져다 주않는다.

물론 수동을 빌린 탓에 운전대를 잡아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지만 운전하는 사람의 표정만 봐도 안다.

신기하고 낯선 이 상황이 재밌기도 하지만

동시에 묘한 긴장이 감도는 것을.    

긴장도 잠시.

뻥뻥 뚫린 도로에 긴장을 내려놓고 기분 좋게 달려본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름다자연경관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런 자연을 바라보며 달릴 수 있다니.

참 행운이다.     


양 옆에 드넓게 펼쳐진 푸르른 평야와 들판,

그 위를 달리는 하얀 양 떼들.

거대하고 장엄한 산맥들이 차창 너머로 빠르게 지나간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느껴본다.

저 밖에 존재하는 거대한 움직임과 마주한다.

깨어있는 자연 앞에서,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무심코 라디오를 틀었다.

낯선 언어낯선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이럴 때 문득, 떠나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처음 듣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묘하게 설레는 기분을 안고 달린다.

왠지 모르게 낯설고 어색한 이 순간이 꽤나 즐겁게 다가온다.     

신호에 걸려 대기하던 그때,

투명한 차창 너머로 보이는 동양인이 신기하기만 한가보다.

창문 앞까지 다가올 듯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들.     


과도한 관심에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려니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상책일 뿐.     


가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에 화가 나거나

괜스레 이해할 수 있는 것들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오기가 발동할 때가 있다.


충분히 넘어갈 수도 있고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쉽사리 마음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다.     

가끔 그런 마음이 밀려 올 때면,

꾸역꾸역 되새기곤 했다.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스스로를 납득시키거나 이해시키려고 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그저 인정하는 것 뿐이다.     

그 모습, 그 행동, 그 말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한결 수월하다.


억지로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일부러라도 그들을 인정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렌터카 여행의 마지막 날.

자다르에서 로빈으로 향한다.

조금 먼 거리인 탓에 로빈에 다다를 때쯤,

기어코 길을 잘못 들고 만다.


벌써 몇 시간째 허리도 못 펴고 달리던 탓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그 순간.

눈 앞에 보이는 이름 모를 동네의 아름다운 풍경이

기분을 한순간에 바꿔버린다.     

마치 이탈리아 로마를 연상케 하는 듯,

널따란 대로와 곧게 솟은 건물들이 웅장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의 모습에

넋을 잃고 따라간다.     

만약 길을 잘못 들지 않았더라면

이런 행운을 가질 수 있었을까.


아마 잠깐이나마 아름다운 도시를 누비는 선물 같은 시간은 영영 갖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가끔은 실수를 해도 괜찮다.

길을 잘못 들어도 괜찮다.

한숨이 나와도 괜찮다.     


 끝의 이야기가 해피앤딩 일지 새앤딩 일지는

끝까지 달려봐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때론,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보이는 풍경이

훨씬 진한 감동을 남기기도 할테니.     

시원한 바람이 마음까지 상쾌하게 두드리는 날이면

창문을 열자.

낯선 도로를 달려보자.

그리고 이 순간 눈 앞에 펼쳐진 수많은 아름다움,

황홀한 순간들과 마주하자.


아직 우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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