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크로아티아 로빈
로빈은 크로아티아에서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곳 중 하나이다.
와인을 사랑하는 나 이기에,
여행지에서 그곳의 와인을 먹어보는 일만큼 설레고 기분 좋은 날은 없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올드타운 안에 있는 와인바로 향했다.
내부는 크지 않지만
벽면 한가득 빼곡하게 채워진 와인을 보고 있으니
벌써 향기로운 와인에 취할 것만 같다.
은은하게 빛을 내는 몇 개의 조명 아래에서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역시 와인을 마실 때는
약간 어두운 편이 좋다.
와인 한잔에 풀어지는 미소,
와인 한잔에 풀어놓는 이야기들,
와인 한잔에 시작되는 모든 것들이
조금은 부담스럽지 않게, 조금은 더 편안하게,
조금은 가려질 수 있으니 말이다.
로빈에서 와인을 마신다면
레드와인은 테란, 화이트 와인은 말바지야를 마셔봐야 한다.
오늘의 선택은 진한 레드와인의 카볼라 테란이다.
거기에 와인과 짝을 맞춰 줄 카프레제 샐러드 하나를 시킨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면서
꽤나 와인을 사다 먹기도 했고
괜찮다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마셔보기도 했지만
인생에 남을 만한 감동을 남겨준 곳은 없었다.
어쩌면 오늘, 크로아티아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 날 와인을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드라이하면서도 바디감이 묵직하게 전해져 오는 카볼라 테란.
씁쓰름하고 달콤한 와인 향이 코 끝으로 번진다.
아무래도 오늘은 제대로 고른 모양이다.
맛있는 와인을 마실 때면
아무 말 없이 가늘고 긴 미소가 지어진다.
붉은 빛깔이 찰랑이는 잔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나른하게 풀어진다.
빛깔에 취하고, 향긋함에 취하고,
이 순간에 취하고 있다.
갈증이 날 때 마시는 시원한 맥주.
달콤한 추억을 남기고 싶을 때 마시는 칵테일.
아무생각 없이 취하고만 싶은 날 마시는 보드카.
그리고 조금 느리게, 천천히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을 때 마시는 와인.
오늘은 로빈을 조금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느끼고 싶다. 여유롭고 편안한 지금을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다.
문득, 지금까지 걸어온 여행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처럼만 앞으로 남은 여행도 잘 흘러가기를.
오늘은 와인을 마시길 잘했다.
안녕, 로빈.
안녕, 크로아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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