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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Nov 02. 2016

사람 냄새가 기분 좋은 그곳

#수박 한통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던 날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선선히 부는 바람 위로 맑은 햇살이 거리를 비추는 기분 좋은 아침이다.     


부다페스트의 중앙시장을 가기 위해 집 앞의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서울만큼이나 지하철이 잘 되어있는 부다페스트는

웬만한 곳은 지하철로 쉽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바로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작은 역.

작고 귀여운 지하철역 벤치에 앉아

열차가 오기를 기다린다.    

 

하루를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조그만 역 사이를

내리고, 타고, 떠나가고 있다.


어쩌면 일상이 가장 잘 스며들어 있는 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마치는

이 곳이 아닐까.     



그곳에 앉아 잠시 그들의 일상을 느껴본다.

얼핏 예전의 내 모습이 그 위로 그려진다.

지겨울 만큼 익숙했던 그 모습,

왜 그 어깨가 가벼워 보이지 않던걸까.

그때의 아침엔 또 어떤 무게가

너의 발걸음 위에 앉아있던 걸까.  

    

다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듯 보는 내 뒷모습에 새삼 기분이 묘하다.

심심한 위로를 건네주고 싶기도 하고,

담담하게 잘했다고 토닥여주고 싶기도 하고.

     

소란스러운 열차의 도착 소리에

다시 몸을 움직여 시장으로 향했다.

Kalvin ter역에서 내려 걸어가다가

문득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가게가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그만 수첩에서부터

빈티지한 느낌의 포스터들까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 고심 끝에 마음에 드는 포스터를 한 장 꺼냈다.

빨간 포스터 안에 그려져 있는 카메라 한 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거든,

여행을 하고 있는 이 순간을 조금이나마 자주 떠올릴 수 있었으면.

이 포스터라면 그 바람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방에 걸어놓으면 참 예쁘겠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계산대에 가져다 놓는다.

동그랗게 말은 포스터를 케이스에 담고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누며 나온다.



곧이어 시장 입구에 도착했다.

시장답지 않은 아름다운 외관에 높은 천장까지 갖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부다페스트의 중앙시장.

실내로 되어있어 그 웅장한 느낌이

더 배가 되는 듯하다.     


1층에서는 다양한 공예품과 각종 식재료 팔고 있다.

매운 고추의 향도 맡아보고,

토마토의 가격을 가늠해보며

마트에서 사길 잘했다고 위안도 삼아 본다.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

순식간에 1층을 돌아보고서는 2층으로 향한다.     



2층에도 기념품을 팔고 있는 가게들과

다양한 식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우연히 한 기념품 가게를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했다.

빈티지한 감성이 물씬 풍기는 그림을 몇 개 고르며 주인아저씨와 별 소득 없는 흥정도 해본다.



한 시간 정도 둘러봤을까, 슬슬 배가 고파온다.

식당을 지나 간단한 음식을 몇 가지씩 파는 가게가 줄지어 있는 곳에 다다랐다.


점심시간이 한창일 때라 그런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정신없이 분주하고 복잡하지만

나름대로 그 안에서의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게

시장의 재미이고 매력이 아닐까.     



자리가 날 만한 곳에 짐을 풀어놓고 간단히 소시지와 양배추 절임, 그리고 닭다리 하나를 주문했다.

곁들일 만한 소스까지 더해 계산을 마치고

자리를 잡는다.     


제대로 된 테이블이나 의자도 딱히 없고,

테이블을 닦아주는 사람이나

접시를 따로 치워주는 사람도 없지만

다들 그렇게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곳에서 

조금은 조촐한 식사를

행복하고 즐거운 얼굴로 하고 있다.


어쩌면 시장이라서 받아들일 수 있는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이 곳 사람들의 틈에 끼어 허기진 배를 채운다.

마치 순대를 떠올리게 하는 맛의 소시지와 짭짜름한 양배추가 생각보다 아주 잘 어울린다.


그릇을 싹싹 비우고

잠시 정신없는 1층을 내려다본다.     



그런 날이 있다.

별 거 아닌 것에도

내 스스로가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낯선 곳에서

내가 앉을 자리를 잡고,

정신없는 인파 속에서도 꿋꿋히 내 요리를 시켜낸

그 순간들이 뭔지 모를 뿌듯함과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아마도 잠시나마 이방인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그들과 같은 모습에

내심 잘 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였으리라.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장을 나

문 앞에 있는 과일가게에 들렀다.

싱싱해 보이는 수박과 멜론을 한 통씩 사들고 나온다.


몇몇 마트를 둘러보고도 사지 못했던 과일을

양 손 한가득 무겁게 들고 나오니

마음 한쪽이 든든하다.     


집에 가면 수박을 반통으로 갈라

숟가락을 넣고 한 움큼 떠먹어야지.

벌써부터 입 안 한가득 채워 넣을 생각에 발걸음마저 가볍다.



입에 고이는 침을 삼키며,

 

사람 냄새가 기분 좋게 풍기는

부다페스트의 시장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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