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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Nov 07. 2016

지금 내 여행의 속도는 얼마나 될까

#그런데 여행에서조차 속도가 중요할까?..싶은 날


오후 5시, 마지막 날 무엇을 해야 좋을까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다는 생각에

자꾸만 욕심이 생긴다.


적당한 욕심을 부려 부다페스트에서의

마지막 밤을 채워 넣기로 한다.     

마침 쌀쌀한 날씨가 온천을 하기에 제격이다.


이왕이면 온천을 하면서

아름다운 야경도 눈에 담고 싶어

옥상에 야외 온천을 둔 루다스 온천으로 향했다.     



간단한 짐을 들고 온천에 도착하니

역시 듣던 대로 사람이 별로 없다.

뭐니 뭐니 해도 이런 곳은

북적거리지 않는 게 좋다.


한적하고 조용하게 그리고 나른하게

따뜻한 물속에 잠긴 채,

물끄러미 불빛이 켜지는 거리를

두 눈에 가득 담아야 하니 말이다.     


라커룸에 짐을 풀고 맨 위층에 자리한

파노라마 테라스로 향한다.

역시나 몇 안 되는 사람들 모두가 이 곳에 모여있다.     



익히 들은 것처럼 부다페스트 온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편한 기색 없이

조그만 탕 안에서

떠들고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굳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갈 필요가 었다.

애써 눈을 감으면 그것도 그저 괜찮은 기분을 가져다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남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미적지근한 물속에 몸을 담가본다.

뻐근한 몸을 노곤하게 풀어낼 만큼

따뜻하지도, 편안하고 아늑한 것만도 아니지만


부다페스트의 도심 한가운데에서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온천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어쩌면 용서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어둠이 깔리고

눈부신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면

빛나는 아름다운 야경에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용납되어버린다.     


다리와 강이 바로 보이는 한쪽에 몸을 기대어본다.

분주하게 달리는 차들과

그 옆에 나란히 줄을 선 가로등.


푸르스름한 밤하늘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다리엔 초록빛 조명이 들어오고

거리에는 노란 불빛들이 깜빡이며

곳을 지나간다.     



이 곳에 있는 모두가

아마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오늘처럼 눈부시게 낭만적인 밤이 또 있을까.'  


정신없이 부다페스트의 낭만에 취해 넋을 잃는다.


이 불빛들이 뭐 길래 사람을 이토록

정신 못 차리게 하는지.

반짝이는 아름다움은 무엇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환장하게 하는지.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한 채

소리 없이 반짝이는 불빛들에 모든 걸 내려놓고는

슬슬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2시간 정도의 온천욕에 몸이 풀렸는지

묵직한 피로가 몰려온다.

어느새 하늘은 아주 까만 어둠으로 가득 차있다.


몸은 무겁지만 마지막 헝가리의 밤을

온천으로만 달래기에는 아쉬워

유람선 선착장을 슬쩍 거닐어본다.     


화려한 조명을 휘감은 유람선들이

줄을 따라 길게 늘어서있다.

어떤 유람선은 이미 만석이 되어 떠날 준비를 하고

또 다른 유람선은 이미 부다페스트의 밤을

한 가득 싣고 다시 돌아온다.     



마지막 욕심을 부려 유람선 티켓을 끊는다.

꼭 유람선이었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부다페스트의 마지막을 무언가로 채우고 싶었다.     


그게 어떤 허무함 인지는 몰라도

너무나 크고 화려한 이 곳에서

왠지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만 같았다.     



까만 밤하늘과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유람선.

썩 기대를 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충분히 아름다워 서였을까.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탔던 유람선은

 낭만적인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부다왕궁, 세체니 다리, 어부의 요새,

그리고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감동을 받았던 국회의사당까지.


수많은 아름다운 다리와 건축물들이 하나같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며 빛나고 있다.     



마지막 밤이 돼서야

붙잡고 있던 욕심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부다페스트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조금 욕심을 부렸나 보다.

너무 많은 욕심과 기대가

여행에 커다란 무게를 얹었나 보다.


보고 있으면서도 더 봐야 할 것 같고,

하고 있지만 뭔가를 더 해야 할 것만 같은,

내가 원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의무와 책임, 압박과 부담에 의해 움직인 발걸음에

마음만 앞서 여행의 속도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던 탓이다.     



남들이 하는 익숙한 여행의 속도,

가이드북에 실린 최적화된 여행의 속도를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다.


수많은 야경명소를 다 찾아갈 필요는 없다.

맛집으로 유명한 곳들을 모두 가볼 필요도 없다.

유명한 오페라 공연 한 번 보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서 있는 곳이

가장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지는 곳이고,

배고플 때 우연히 찾아간 그 레스토랑이

나에겐 맛집이고,

오페라 공연 대신 마셨던 와인 한 병이

나에겐 가장 아름다운 부다페스트로

남아 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무거웠던 마음을 위로하고

떨쳐 내버릴 때쯤,

유람선도 다시 선착장으로 들어섰다.



못내 아쉬운 부다페스트와 작별을 하며

마지막 트램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부다페스트의 불빛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쫒아가기에 바빴던

내 조바심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여행을 따라 달리느라

버거웠던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내 발걸음에 맞

속도를 낮출 때이다.


창문 밖으로 반짝이고 있는 

조용한 부다페스트의 밤만이

영원히 기억 속에서 빛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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