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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Nov 09. 2016

어김없이 비가 내리는 아침이면

#분명 아침엔 무지 배불렀던 날

오늘따라 유난히 눈꺼풀이 무겁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이불속에 묶인 몸은

일어날 기미조차 없다.

뭘 했는지 딱딱하게 뭉친 어깨와 목을 주무르며

억지로 겨우 한쪽 눈을 떠본다.     


아침이겠건만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없다.

스산하고 축축한 분위기만 새어 들어올 뿐이다.

꾸역꾸역 커튼을 쳐보니 결국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젯밤 소나기인 줄 알았던 비는

아마도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하루 종일 오려나보다.


비가 와서 몸이 더 무거웠나.

괜스레 비에 늦잠 핑계를 대고는

느릿느릿 거실로 나온다.     


딱히 허기가 지진 않지만 뭐라도 만들어야

이 묵직한 뻐근함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아 주섬주섬 냉장고를 연다.     


오랜만에 유럽 스타일의 아침을 차려볼 생각이다.

어디까지나 냉장고 속 재료를 비우기 위함이지만.

남은 소시지 2개를 팬에 굽고

구워낸 소시지 옆으로 루꼴라를 한 줌 얹는다.     


그 다음,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서는

싱싱한 달걀 하나를 깬다.

그 위로 소금과 후추를 솔솔 뿌려주고

약한 불로 밑에만 살짝 익혀내면

터지지 않은 노른자가 뽀얀 빛깔을 머고 있는

프라이가 완성된다.


요리에 쓰고 남은 베이컨을 몇 장 더 구워내고,

300원에 한 봉지를 채우고도 남을 양의

아무 맛없는 퍽퍽한 빵 몇 조각과 버터를 꺼낸다.



꽤나 푸짐한 아침다.

언젠가 혼자 독립을 해서 살거든

밥 한 끼라도 해 먹으려나 싶던 적이 있다.

아무래도 너무 잘 해 먹고 살 것만 같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고 하기에 민망할 만큼

아침을 뚝딱 비우고는 커피 물을 올린다.


보글보글 끓는 물에 

인스턴트커피 한 스푼을 붓는다.

어제 마트에서 새로 산 커피가 향이 참 좋다.



진한 커피 한잔은

역시 축축하고 흐린 날씨가 제격이다.


비가 내리는 아침,

구름이 잔뜩 낀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마신다.    

 

이렇게 나른한 아침이라니.

한없이 게을러지는 이 시간이 참 좋다.


탁자 맞은편엔 밖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창이

비 오는 아침을 담아내고 있다.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촉촉한 바람이 유리창 안으로 살며시 스며든다.     



진한 커피 향 때문일까,

비 오는 흐린 날 때문일까,

문득 여행을 떠나오기까지 수차례 부서지던

지난날의 내 모습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흔들렸던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잣대가

나를 향해 거꾸로 꽂히지 않았으면 하는 불안함에

무작정 달리기만 했던 적이 있다.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던 것 같은데

그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다.


그땐, 내가 아닌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살곤 했다.

내가 아닌 그들이 말하는 성공을 원했고,

그들이 바라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에게도 후회 없는 삶일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 모습들이

내가 원하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며

답답해하는 나를 모른 채 눈감아버리곤 했다.     



그땐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은 거라고.

때론 바보같다는 소릴 들어도,

못났다는 소리를 들어도,

부족하다는 소릴 들어도 괜찮은 거라고.     


그들이 말하는 모습이

반드시 내 모습의 전부는 아니니까.

그들이 말하는 대로

내가 그렇게 살아줄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몇 가지 안 되는 선택지를 가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틀에 박힌 몇 가지의 선택지 안에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고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낙오자라 찍히기도 하고

스스로를 실패라는 무거운 틀에 가두기도 한다.     


세상에 많고 많은 선택들은

의 것이 될 수 없고,

자신의 꿈을 펼치라는 말은

어느덧 정말 꿈같은 소리가 되어버렸다.


선택지에 없는 길을 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긴 하지만

못내 그 길이 성공일지에 대한 의문을 품으며 들었던 용기마저 무심히 고개를 숙인다.  

   


남들이 말하그럴듯한 꿈의 직장을 그만뒀다.

평생 꿈일 것만 같은 세계여행을 떠났다.

남들의 일관된 시선을 무시하고

남들과 다른 선택지를 들고 산다는 게

생각보다 행복한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딱히 정해진 직장도, 연봉도, 지위도 없지만

그 전의 삶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을 채울 수 있는 하루를 살고 있다.  

   

비어있는 순간은 불안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이다.     



작은 것일지라도

남들과 다른 나만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있다는 건,

그들이 말하는 성공과 행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할  있는 

가장 큰 무기일 것이다.      


여행을 떠나와 맞는

낯선 아침이 있어 다행이다.

매일을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는

비어있는 하루가 있어 다행이다.


지금은 괜찮다고 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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