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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Nov 21. 2016

폴란드에선 따뜻한 와인 한 잔을

#59. 폴란드 바르샤바

따뜻한 와인이라.

어쩌면 뜨끈한 와인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와인은 난생처음이었다.     

와인을 뜨겁게 마실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상하겠다 싶은 마음도 잠시,

한 모금 삼키자마자 깊고 진한 핫와인의 향이

뜨겁게 목을 타고 내려간다.


그 묘한 달콤함과 뜨거움에

순간 빠져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핫와인은 폴란드였기에

더 잘 어울렸는지도 모르겠다.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는 브라질의 어느 한 거리를 걷다가 마주쳤더라면 쳐다라도 봤을까.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감도는,

주머니에 넣어둔 손가락마저

꽁꽁 얼어붙는 폴란드였기에

따뜻한 와인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는지도 모른다.     

차갑고 냉정한 폴란드의 날씨에 벌벌 떨다

옷깃을 여민 채 간신히 들어온 카페에서

우연히 잡은 그 잔은 아마도 참 따뜻했으리라.

그리고 그 잔은 뜨거운 와인을 한가득 담고 있었으리라.     


그렇다.

폴란드였기에 뜨거운 와인을 만났던 것이었으리라.

오렌지 한 조각이 무심히 떠있는

뜨겁고 달콤한 와인을 처음 만난 건 자코파네였다.     


갑작스러운 눈발이 휘날리는 밤길을 걷다가

문득 간판에 적힌 핫와인이라는 글자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가게 문을 열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저 얼은 몸을 녹일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뜨끈한 무언가를 시켰다.

그리고 그 뜨거운 무언가는

따뜻한 와인 한 잔이었다.     

계피향이 나는 한 알싸하고 진한 향이 매력적인 핫와인은 얼어붙은 몸도 마음도 남김없이 녹여버렸다.     


그날처럼 얼어붙은 몸을 녹이며

마지막으로 핫와인을 마시고 있는 곳은

더할 나위 없이 차갑고 매정한 바르샤다.     

오늘도 어김없이 폴란드 사람들의 무뚝뚝함에

코끝이 벌게질 만큼 추운 날씨까지 더해져

하나같이 입도 얼굴도 닫은 채

무심히 걷고만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며 마주친 바르샤바는

왜 그리도 차갑고 냉정해 보였는지.

차가운 바람에 온 몸을 구겨 넣은 채

무심히 걷는 사람들은 흐리고 뿌연 날씨만큼이나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손 하나도 건네줄 것 같지 않았다.

매정하게만 바라보는 내 눈길을 거둬주기 위함이었을까.

바르샤바의 올드타운에서 만난 핫와인은

딱딱하고 냉담한 그들의 모습을

소리 없이 이해시켰다.     


삭막하고 차가운 분위기에

몸도 마음도 얼어붙은 채 거닐었던

정신없는 지하철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에 맞서며 꾸역꾸역 발걸음을 옮겨 올드타운까지 걸어왔던 매정한 날씨도

더 이상 억울하지 않았다.   

  

꾸덕한 치즈케이크 한 조각과

따뜻한 와인 한잔에

괜스레 그들의 추웠던 마음까지도 다독여주고 싶어 졌다.     

뜨끈한 와인 한 잔과 함께

무심하기도 달콤하기도,

차갑기도 뜨겁기도 했던

폴란드의 여행이 막을 내린다.     

생각보다 추웠던 날씨 탓에 고생도 꽤나 했건만

돌이켜보던 따뜻했던 순간들이

더 먼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괜스레 아픈 역사가 떠오르는

슬픈 도시를 걷는 안타까움도,

냉정하고 무심한 사람들의 말투와 표정에

상처를 받는 일들도,

예기지 않았던 작고 소소한 호의에

감동을 받던 날들도,

폴란드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의 순간들이다.     

어쩌면 나는 가끔 이곳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핫와인 한 잔 때문일수도,

또는 차갑고 삭막한 거리 곳곳을 걷다가

문득 들어온 작은 카페에서 얻은 포근한 온기처럼,

무심해 보이고 딱딱해 보이는 것들에도

아늑하고 따뜻한 무언가는 있더라는 것을 다시금 찾고싶어서 말이다.    

오렌지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핫와인을 마시며

차갑게 얼어붙었던 폴란드의 마지막이

스르륵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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