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던 그리스를 만나다

#06. 그리스 크레타 이라클리온

by bonita


크레타 하니아에서 이라클리온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향했다.

짐은 더 무거워졌지만 새로운 여행지로 내딛는 발걸음은 더욱 가볍기만 하다.


이라클리온은 그리스의 현대적인 도시 모습과 고유의 빈티지한 모습을 동시에 가지는 매력적인 항구도시이다.

그곳에서 나는 유독 그 어떤 도시보다 가장 그리스다운 차분한 듯 상쾌한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취해 시내 골목을 돌다 우연히 한 서점 앞에서 걸음을 멈춰섰다.

서점 밖 까지 풍겨져 나오는 따뜻한 조명과 벽면 한가득 빼곡하게 채워진 책장.

낯선 곳에서 우연이라도 이런 서점을 찾아 들어설 때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도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당장이라도 책을 펼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상상이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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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신비로운 분위기가 한껏 감싸진 이 공간에선 고요한 멜로디만이 유일하게 움직이는 듯 했다.

노란 조명들 사이로 향긋한 프리지아 향이 흘러다녔고,

그 안에서 숨을 쉬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인 것만 같았다.


서점 밖은 다를 바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이야기를 나누고 살아 움직이고 있었지만

오로지 이 공간 만큼은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숨 막히는 아름다운 정적이 내 두 발걸음을 붙잡고 있었다.


천천히 책장을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사랑스러운 파스텔 톤의 표지와 새겨진 그림이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 좋은 에너지가 마음 속을 채워넣었다.


책 안에 새겨진 낯선 그리스어는 어색하지만 싫지 않았다.

한 글자 한 글자 박혀있는 그 나라의 언어를 보고 있으니

분명 내가 그리스에 와있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가장 명확하게 드러났다.


묘하게 신비로운 이 공간에서 나만의 보물을 찾아낸 것만 같은 설렘이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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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생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토록 작은 추억 하나가 내 평생의 보물이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디 이 작은 책 한권이 오늘이라는 따스한 시간을 오랫동안 간직해주길 바라며

조심스레 계산대로 걸음을 옮긴다.

정성스레 고른 책 한 권을 세심하게 포장해주시는 주인아저씨.

두고두고 볼 때마다 기분좋은 순간을 되새기게 해줄 보물 하나를 들고 다시금 밖을 나섰다.


빨래방에 들러 그동안 묵혀두었던 빨래를 맡기고 골목을 걸어본다.

도시마다 지역마다 자신들의 색깔로 가득 채워진 그리스의 골목길.

그 안에서 그들은 오늘 또 각자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익숙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그 사이에 서서 살며시 그들의 시간을 훔쳐볼 뿐.


그리스에서 골목을 만난다면

왼쪽, 오른쪽 어디로 향하든 좋다.

발길이 닿는 대로 향하는 그 골목이
당신이 만난 그리스의 가장 아름다운 골목이 되어 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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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그리스를 다시 온다면 나는 아마 가장 먼저 이라클리온으로 향할지 모른다.

이라클리온의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 흥겨운 분위기도 좋지만

그들이 전해준 따뜻한 마음은 그리스 여행에서 만난 가장 고맙고 행복한 기억이자 보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스를 여행하다 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무뚝뚝하고 차가운 그들의 표정과 언어에 간혹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그런 겉모습을 헤치고 떨고 있는 여행자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다가온다.


낯선 외국인에게 따뜻한 미소를 건넨다는 건 그들에게도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때론 우리는 그들이 환대해주기를 당연하게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도 우리처럼 새롭고 낯선 것에 다가가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 일 텐데 말이다.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기 전에, 상처 받기가 두려워 뒤로 물러서기 전에

그들이 어떤 대답을 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거절을 할지, 받아 줄지를 걱정하기 전에

일단 먼저 한 발짝 다가가 보는 대범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건넨 따뜻한 손이 먼저 닿는 순간

차갑게 얼어있을 것만 같던 벽은 생각보다 쉽게 녹아버릴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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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슴없이 다가온 이라클리온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에 나는 속절없이 녹아버렸다.

오늘따라 그들이 건네 준 손에 깊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한 여름밤의 꿈같던 이라클리온이 웃으며 안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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