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이 사랑한 휴양지에 빠지다

#05. 그리스 크레타 하니아

by bonita

아테네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크레타섬으로 향했다.

아테네 숙소 호스트였던 카테리나가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라며 추천해준 곳이었기에

기대를 한가득 안고 출발했다.


크레타 섬은 그리스인들이 여름 휴양지로 찾는 대표적인 그리스의 섬이다.

그중 하니아는 크레타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들이 모여있기로 유명하다.


그리스 국내 휴양지라 그런지 배낭여행으로 오는 사람도 거의 없는 데다 한국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약간의 어색함을 앉고 도착한 호텔에서 인상 좋으신 노부부 호스트를 만났다.

그분들은 내가 떠나온 세계여행을 무척이나 흥미로워하셨고,

세계여행 이야기를 시작으로 어디를 여행하는지, 얼마나 여행하는지,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한동안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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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la vida lo más importante es vivir el momento.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사는 것이다.


세계여행을 떠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작은 명함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명함 뒤편엔 여행을 하는 동안 그리고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살아가는 동안

잊고 싶지 않은 한 문장을 새겨두었다.


명함을 건네받은 노부부는 새겨 넣은 이 문구에 깊은 공감을 표해주셨다.

그리곤 상기된 표정으로 말씀을 덧붙이신다.


"지금이라는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전과 후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죠.

내가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보며 산다는 건

우리의 내면에 더 많은 것들을 채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 되어줄 거예요."


가슴 깊이 새기고 떠난 한 문장에 누군가의 뜨거운 진심이 더해지자

그 이야기가 피어나는 순간의 공기는 더없이 환하고 따스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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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감동이 이런 게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가치나 방향을 전혀 다른 나라의 낯선 누군가와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전혀 관계없던 누군가와 내가 붙잡고 살아온 그 무언가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여행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여행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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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 동안 기분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하니아 시내를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밖은 휴양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의 휴양은 특별할 것 없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고 있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비싼 돈을 주고 유명한 호텔에 묵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눈 앞에 펼쳐진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 시간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는 것.

그 여유를 즐기는 것이 하니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휴양이자 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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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들과 섞여 하니아에서의 휴양을 함께 했다.

베네치아 항구 앞에 펼쳐진 반짝이는 바다,

테라스에 앉아 그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

이것만으로도 그리스의 휴양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휴양 : 편안히 쉬면서 몸과 마음을 보양함.


생각해보면 우리는 편안히 쉰다는 것이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님에도

가끔은 휴식을 갖는다는 것 자체도 허용하지 않는 무심함을 보일 때가 있다.

다른 누구에게 보다 나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탓일까.


쉬면서도 머리로는 빼곡히 적어놓은 체크리스트를 떠올리며 해야 할 일들을 되새기곤 한다.

겉으로만 쉬는 척, 여유로운 척, 괜찮은 척.


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진짜 휴양을 허락하지 못하는 걸까.

바쁘게 사는 일상에서 휴식은 낭비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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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정신없는 알람으로 시도 때도 없이 두 눈을 붙잡는 핸드폰을 내려두고

눈 감고도 갈 만큼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아무것도 그 누구도 붙잡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 속에서 진짜 휴식을 가져야만 한다.


그때야 비로소 나를 휘감고 있던 답답했던 질문은 사라지고

갑갑했던 내 안에 향긋한 바람이 새어들어올 테니 말이다.

그렇게 가끔은 마음의 환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 날, 휴양을 사랑하는 하니아의 밤은 잠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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