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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Dec 19. 2016

유럽의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푸른 지중해

#69. 스페인 네르하

오늘은 조금 특별한 일정이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네르하의 일요시장을 가기 위해 며칠 전부터

일요일의 아침을 기다렸던 참이었다.   

  

누군가는 네르하의 일요시장을 보기 위해

일부러 요일을 맞춰 네르하에 오기까지도 한다니 기대는 더할나위없이 커져갔다.

     

생각보다 네르하 발코니에서 꽤나 먼 탓에 택시를 타기로 한다.

택시를 타고 10분에서 15분 정도를 달리자 금세 벼룩시장 앞에 다다랐다.     

시장 문턱에서 바라보니 벼룩시장 끝자락 

푸른 지중해가 넘실거리고 있다.

해변 앞에서 펼쳐지는 벼룩시장이라니.


들어가기 전부터 벼룩시장은

낭만적인 설렘을 한껏 안겨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시장의 온상은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었다.


벼룩시장이라고 하기엔 애매하다 못해 너무나 잡다한 물건들이 거리마다 가득 차 있었고,

구경을 할 것도 마땅치 않은 물건들이 바닥을 메우고 있었다.     

심지어 규모도 생각보다 크지 않은 탓에

한 바퀴를 훅 둘러보고 나니

금세 다시 문 앞에 다다른다.


당황스러움과 아쉬움으로 남을 찰나

마침 작은 레고를 팔고 있는 가판대 앞을 지났다.     

다양한 영화캐릭터들을 레고로 팔고 있는 그곳은 역시나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중에서도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레고를 고르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색색깔의 아기자기한 레고는 지나가는 사람 누구라도 한번쯤 시선이 가기엔 충분했다.


결국 그 앞에서 한참을 구경하던 나도

재미 삼아 몇 가지를 집어 든다.

벼룩시장의 아쉬운 마음을 레고로 달래며

따사로운 일요일 오후, 시장을 나왔다.

예상에 없던 지출을 한 탓에 택시를 탈까말까 고민을하다 결국 걸어서 돌아가기로 한다.     


그럼에도 일요일의 나른한 햇살 덕분인지

푸른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며

기분좋은 발걸음으로 골목골목을 걷는다.     

가을이라는 계절에도 화창한 네르하의 오후는

흡사 여름이라 착각할 만큼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평소에 다니던 길이 아니었기에

처음 보는 네르하의 풍경들이 눈앞에 가득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우연히 시선을 끌어당기는 한 골목 앞에 멈춰섰다.


그 골목에는 하얀색 집들이 나란히 줄을 서듯 양옆으로 뻗어 있었고,

좁은 인도 사이에 놓인 기다란 도로 끝에는 반짝이는 지중해가 푸른빛을 품고 있었다.     

그 묘한 아름다움이 전혀 상관없는 길로

나를 끌고 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대의 길을 가야 하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지금 이 거리를 걷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으므.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 나는 그 끝을 싶었으므.

나는 골목을 걸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는 생각보다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관광지가 모여있는 올드타운 아닌

언덕 밑에 자리한 해변에서 여유로운 해수욕을 즐기러 온 여행객들이 묵는 동네인 듯했다.

바라만 봐도 여유로운 공기 스쳐지나가는 .

선선히 불어 드는 바람마저 조용히 왔다 돌아가는 곳.

반짝이는 햇살을 가득 담아 쓸쓸않은 한가로움이 짙게 빛나고 있는 곳이었다.  

   

'이런 곳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나도 여기에 묵었을 텐데.'

이 골목에 첫발을 놓자마자 불어드는 바람과 햇살에 흠뻑 취한 탓인지,

이제야 발견한 게 아쉬워 내심 부러움이 섞인 발걸음을 이어간다.     

해변까지 다다르자 꽤나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무엇보다 푸르게 반짝이는 지중해를 보자마자

나는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바다를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들어가지 않고는 못 베길만큼,

바다는 햇살이 머물고 낭만이 머무는 눈부신 푸른색을 뿌려놓고 있었다.


11월이 무색하도록 반짝이는 뜨거운 햇살은

해변가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한층 짙은 설렘으로 물들다.    

 

해맑게 물장구를 치며 뛰어노는 아이들도

모래사장에 앉아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는 연인들도

모두가 푸른 지중해만큼이나

아름다운 빛깔을 품은 채

네르하의 오후 속에 머물고 있었다.     

해변가에 서서 한참을 바라만 본다.    

미처 수영복 하나도 챙기지도 못한 탓에 

애꿎은 모래사장만 한없이 거닐며

못내 들리는 시원한 파도소리로

지중해 한가운 떠있는 달콤한 상상을 해본다.     

아쉬운 대로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바에 들어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기로 한다.

커다란 파라솔이 머리 위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짙은 푸른빛깔의 지중해가 두눈을 가득 채운다.


토록 눈부신 오후의 한때를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끝없이 반짝이는 지중해를 바라보며 마시는 달콤한 맥주 한잔은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다.

  

하마터면 이렇게 아름다운 네르하를 보지 못하고 떠날 뻔했다.

만약 그 골목이 나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그 골목에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네르하는 작고 아담한 유럽의 발코니 정도로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정해진 길이 아닌

전혀 모르는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누구나 가본 길이 아닌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보는 것도 좋겠다.     


답이 없는 곳에선 상상을 하고

길이 없는 곳에선 모험을 한다.     

어쩌면 모험과 상상을 매일같이 반복하는 나는

답도 없고 길도 없는 막막한 순간을

여행이라는 아름다운 시간 속에서 헤매며,


다른 누군가는 보지 못한 눈부신 보물들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찾아보지 않고 떠난 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오랜 시간 많은 것을 준비하고 찾아낸 것들보다

 보물을 가져다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20년 뒤,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 때문에
더 실망할 것이다.

그러니 밧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를 떠나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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