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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Jan 13. 2017

체리처럼 달콤하고 초콜릿처럼 매력적인 그곳

#74. 포르투갈 오비두스

그곳이라면 떠오르는 몇 가지 수식어가 있다.     


왕비가 사랑에 빠진 마을.

아기자기한 상과 골목길반기는 마을.

동화 같은 색감이 배어있는 사랑스러운 마을.

달콤한 초콜릿 잔에 따라 마시는 진자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마을.     

사람들의 정겨운 웃음, 그리고 이곳을 사랑하는 행자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마을.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그곳의 아름답고 활기찬 사랑스러움을 다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

그곳을 직접 밟고 거닐고 느낄 때야

진정한 오비두스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리스본에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달려가니 어느새 작은 마을이 눈앞에 닿았다.

이 마을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는 왕비,

그리고 그런 왕비를 위해 오비두스 마을 전체를 선물로 건네주었다는 왕의 이야기.


얼마나 아답기에 왕비가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을까.

얼마나 사랑스럽기에 온 마을을 가지고 싶을 정도였을까.     


버스에서 내려 오비두스를 바라본다.

푸른 하늘 아래 반짝이는 하얀 빛깔을 품은 오비두스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부터 달콤한 공기가 가득 맴돌고 있었다.


왕비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던 낭만적이고 달콤한 이야기가

무심코 도착한 내 발걸음 앞에

덥석 덮여버렸다. 

마을로 내려가기 위해 커다란 문을 지나자

어디선가 귓가를 사로잡는 묘한 연주가 흘러나온다.

고개를 돌리자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눈을 감으신 채 아코디언의 묵직한 음색을 뽑아내고 계셨다.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지금 이 자리에서, 이 모습 그대로

걸어가는 누군가를 위해

어쩌면 당신 스스로를 위해

이토록 아름다운 연주를 이어가셨을지 모른다.


불어 드는 바람마저 사랑스러운 이른 오후,

공기를 타고 흐르는 달콤한 멜로디에

문득 뒤를 돌아서서는

잠시 눈을 감고

나지막히 흐르는 선율을 따라가 본다.     

아름다운 오비두스.

사랑스러운 오비두스.

계속해서 귓가에 맴도는 아코디언의 연주를 들으며 작은 돌들이 촘촘히 박힌 골목 거닌다.     


작고 아담한 동네인 탓에

벌써 몇 번이고 같은 골목길을 걷고 또 걷는다.

자꾸만 눈이 가는 상점들은 몇 번이고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 동안 마음에 드는 엽서 한 장을 고르고 또 고르며

오비두스의 사랑스러움을 천천히 그리고 진하게 발걸음에 담아본다.

오비두스의 작은 골목 어귀에는

빈티지한 감성의 소품들이 선반을 가득 채우고,

손수 만든 알록달록한 화관들이 천정마다 걸려있고,

사랑스러운 오비두스의 모습을 담은 액자들이 새하얀 벽면을 수놓은 채,

여행자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토록 작고 사랑스러운 곳에선

딱히 근사하고 거창한 무언가를 기념하며 남길 필요가 없다.

그들의 이야기가 묻은 작은 엽서 한 장 만으로도

이곳의 전부를 담아오기엔 충분하므로.


이토록 낭만적인 곳에선 골목길마다 베인

이곳의 향기를 가득 맡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므로.


그렇게 오비두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

나는 꽤나 오랜 시간을 작은 골목길에서 보냈고,

그러는 동안 우연히 눈에 들어온 그것은

오비두스에서 잊지 못할 가장 사랑스러운 시간을 손에 쥐어 주었다.   

그 시간을 가능케 한 것은 다름 아닌 진자였다.

오비두스의 골목 어디를 걷더라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진자.

진자(Ginja)는 체리를 담가 만든 달콤하면서도 독한 포르투갈의 전통주로

앙증맞은 초콜릿 잔에 따라 마시는 매력적인 술이다.


대부분의 가격은 초콜릿 잔 하나에 1유로였지만

사실상 나에게 가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초콜릿 잔에 따라 마시는 달콤한 체리주라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그 값어치는 충분했다.


상상만으로도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마시지 않아도 벌써부터 짙은 낭만에 취할 것만 같다.     

골목 한편에 자리한 진자 가게에 발걸음을 멈추고

떨리는 마음으로 진자를 주문한다.

-쪼르륵

초콜릿 잔에 붉은 진자가 채워진다.     


조심스레 한 모금을 홀짝 마셔본다.

그저 재미있어 자꾸만 웃음이 흐른다.

두 번째 모금을 홀짝 마신다.

달달한 체리향 뒤로 묵직한 알코올이 스며든다.

세 번째 모금을 마시고 달달한 초콜릿 잔까지 먹고 나니 역시나 상상한 만큼이나 사랑스럽다.     


독하디 독한,

달콤하디 달콤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Ginja.


거리마다 놓인 초콜릿 잔과 진자가

오비두스를 한층 사랑스럽게 만들고 있다.     

토록 달콤한 생각을 누가 을는지.

진자 한 잔으로 달달한 취기를 달고

오비두스의 성벽을 오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은 덕에 급하지 않게 천천히 한적한 오비두스의 성벽을 걷는다.


푸른 하늘이 머리 위를 채우고,

구름이 뭉게뭉게 하늘을 덮고,

기다랗게 뻗은 성벽길 앞으로

반짝이는 햇살이 살며시 놓인다.     

머리칼을 스치는 선선 바람을 맞으며

오비두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성벽길을 걸었다.     


다른 유명한 성벽길처럼 드넓은 바다가 보이지도,

높게 솟은 화려한 건물들이 발아래 펼쳐지는 것도 아니지만

이곳에선 오비두스만의 향기가 가득 담긴 

소박한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색 바랜 붉은 지붕들이 오비두스의 깊고 잔잔한 세월의 이야기를 살포시 꺼내어 놓는 이곳.


저 멀리 높은 곳이 아닌

아주 가까운 옆에서 나란히 발을 맞추며 오비두스를 걷는다.

특별하게 세워놓은 랜드마크 하나 없지만

우연히 걷다가 마주치는 성벽길 아래 잔잔한 풍경과

그 사이로 스며드는 새하얀 구름과 햇살을 담은

나만의 장소를 찾을 때면

무엇보다 커다란 행복이 끝없이 나를 두드린다.


오비두스 곳곳에 묻어있는

때 타지 않은 순수함을 거니는 동안

나는 자꾸만 이곳이 그리워졌다.

괜스레 이 순간이 아주 많이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소란스럽지 않은 성벽길을 느긋하게 걸으며

오비두스의 사랑스러움에 더 깊이 빠져들 때쯤

다시 마을로 내려와 골목을 걸었다.     


성벽을 오르기 전 마셨던 달콤했던 진자가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 않는다.

아무래도 그냥 이대로 돌아가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랬다간 분명 땅을 치고 후회할 게 뻔했다.


오비두스의 아쉬움을 달래 줄,

첫눈에 반해 깊은 곳에 마음을 내어준

마지막 진자 한잔을 찾아야 할 것만 같았다.

  

다시금 골목을 거닐며 또 다른 진자 가게 앞에 걸음을 멈춰 섰다.

조그만 체리까지 얹은 진를 담은 초콜릿 잔을

두 손으로 꼭 움켜쥐고는 

다시금 조심스레 홀짝홀짝 들이킨다.


또다시 달콤한 진자가 스르륵 넘어간다.

쌀쌀한 바람이 감도는 저녁이지만

달콤한 진자 한 잔어느새 따스한 온기가 온몸에 스며든다.     

한두 모금 사이에 없어진 진자를 내심 아쉬워하며

아름다웠던 오비두스를 두 눈에 한동안 담아두고는

집으로 향하버스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 팔을 벌리면 다 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작은 마을.

그 마을 안에 넘치도록 차오르는 사랑스러움.

그 사랑스러움을 꾹꾹 눌러 담은

따스한 사람들의 정겨움... 그리움. 

이런 마을이 우리가 꿈꾸는 동화가 아닐까.

햇살이 좋은 아침 오

이런 곳에서 눈을 뜨고 싶다.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저녁,

어딘가로 돌아가야 한다면

이런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언제고 잠시 메마른 일상에 지쳐

문득 어딘가간절히 그리워 떠올렸다

어디에서든 소박한 사랑스러움이 묻어던,

달콤하리만치 아늑했던,

마르지 않는 따뜻함을 품고 있던,

오비두스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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