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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Jan 06. 2017

낯선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따뜻함

#73. 포르투갈 리스본

오늘은 이상하게도 하늘이 파랗다.

오랜만에 본 리스본에서의 푸른 하늘에 가벼운 발걸음마저 어색하기만 하다.

여전히 기온은 낮고 바람은 차갑게 불어오지만

햇살만큼은 눈이 부시도록 환하다.   

  

시내로 나가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온다.

여전히 말끔히 정돈되어있는 집 앞 가게의 테라스를 바라보며 내려오던 그때,

건너편 골목 끝자락서계시던 백발의 할머니께서 나를 불러 세우신다.     

"혹시 영어 할 줄 알아요?"     

순간 주춤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선한 얼굴로 다가와서는 좋은 말을 해주곤 돈을 달라거나,

문득 선물이라 건네며 손에 꼭 쥐여준 나뭇잎을 보고 있으니 돈을 달라거나,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며 근처 언덕으로 데려다주고는 기어이 돈을 달라는 일들이 다반사였으니 말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이 나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굳이 나를 불러 세우는 것이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모르는 척 지나갈까 잠깐의 고민에 잠기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살며시 늦췄다.


가파른 리스본의 언덕을 오르시느라 숨도 채 다 쉬지 못하셨다며 잠시 숨을 고르시고는 곧이어 말씀을 이어가신다.     

간단히 이곳에서 뭔가를 살 수 있는 조그만 상점이 어디 있는지 아냐고 물으셨고,

나는 슬쩍 손가락으로 위치를 알려드리며 대답했다.

"여기 횡단보도만 건너시면 바로 있어요."     


이 언덕 주변 아래는 웬만한 식당뿐이고

뭔가를 살만한 상점이라고는 언덕 끝까지 올라야 보이는 한두 개가 전부였다.

상점 근처에 거의 다 오신 걸 아시고선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며 혹시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셨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씀드리자 무척이나 환한 미소를 보이시며 반가운 인사를 덧붙이신다.

그렇게 끝나려나 하고 돌아서려던 찰나,

할머니께선 갑작스레 두 팔을 벌리셨고

나는 어리둥절해하다 미처 어떤 판단을 할 겨를도 없이 낯할머니의 품에 그대로 안기고 말았다.     


할머니께선 내 등을 토닥이시며 오늘 하루,

그리고 낯선 곳으로 용기있게 떠나온 내 여행을 위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전해주셨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포옹을 했으니 돈을 달라는 것도,

좋은 말을 해주었으니 답례를 해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낯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 표한 감사와 반가움의 밝은 미소, 그리고 따뜻한 품이 전부였다.

그제야 알았다.

그 미소는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그 품은 누군가를 위해 건네는 조건없는 따뜻함이라는 것을.

나는 선한 한 사람을, 자신의 품까지 기꺼이 나눠주는 더없이 따뜻한 한 사람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오해해버렸다는 것을.     


그 순간 나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았다.

모른척 외면하려했던 차가운 내가,

조금 더 환하게 웃으며 다가가지 못한 내가,

지레 겁먹고 한발 물러서 있던 내가,

따뜻한 말들에 진심을 보지 못하고 의심만 품었던 내가 전부 다 후회스러웠다.     


문득 할머니 품에 안겼던 어리둥절한 그 순간이 다시금 스쳐지나갔다.

참 따뜻했다.

그 어느 품보다 편안했다.

사랑하는 누군가의 품을 떠올릴 만큼,

뭉클한 감정이 몽글몽글 올라올 만큼,

이상하리만치 낯선 누군가에게서 나는 익숙한 포근함을 느꼈다.     

따뜻한 미소로 작별 인사를 해주시는 할머니께

너무 늦어버렸지만 마지막 인사만큼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     

분명 도움을 드렸건만 마음 한구석이 왠지 모를 아쉬움과 찝찝함으로 얼룩졌다.   

  

언덕을 내려오며 나는 다시 다짐했다.

다신 상처받는게 두려워 절대로 먼저 물러서지 않겠다고.

먼저 다가간 내 용기가 무색하게 상처를 받고 또다시 누군가를 향해 보낸 따뜻한 미소가 처참히 묻혀버릴지라도 적어도 내가 먼저 뒤돌아서지는 않겠다고.     

그렇게 나만큼은 어리석게도 따뜻함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랬으니 말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난 그러면 안 되는 거였으니까.  

오늘 같은 후회를 또다시 남기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푸른 하늘만큼이나 환하게 빛나던

할머니의 미소를 따라

차갑게 돌아섰던 마음이

다시 한번 뜨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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