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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Feb 04. 2017

달콤한 술 한잔을 따라가는 여행

#77. 포르투갈 포르투

누구에게나 여행을 하는 목적이 존재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 여행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미술관이 되었건, 음식이 되었건,

짜릿한 스포츠가 되었건, 커피 한잔이 되었건 말이다.


나에게도 역시 수많은 목적과 동기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절대 배신하지 않고 언제나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보다

그 나라만의 술을 마셔보는 일이다.


많이 마시는 것보단

맛있게, 그리고 기분 좋게,

그 나라의 음식과 분위기와

바깥의 풍경과 흔들리는 소리와

나른한 조명 아래에서 마시길 좋아하는 나는

매번 새로운 나라에서 다양한 종류의 술을 맛보며 여행을 하고 있음을 새삼 느끼곤 한다.


눈 앞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국적인 배경이 슬며시 뒤로 깔리고

낯선 소리들과 냄새가 오가는 가게 안에서

전혀 모르는 새로운 술 한잔이 입가에 닿는 순간,

이건 여행이 아니고선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함이다.



그렇게 나는 달콤한 술 한잔을 따라가는 여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포르투로 넘어오면서

아주 우연히 그리고 운명적으로

오랫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을 포르투의 전통 와인과 만나게 되었다.


바로 포트와인이다.

포트와인은 대표적인 포르투갈의 주정강화 와인으로 오랜 시간 배를 이용해 운반을 하는 동안

와인이 숙성되는 과정에서 변질되는 걸 막기 위해 브랜디를 첨가하면서 도수와 당도가 높아진 와인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와인과는 다르게 평균 20도의 알코올 도수를 자랑하며 

진하고 묵직한 달달함 뒤로 알콜향이 깊게 스며드는 것이 이 포트와인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포트와인은 대표적으로 3가지 타입이 존재한다.

가장 스파이시하고 강한 풍미를 자랑하는 토니,

붉은빛이 영롱하게 반짝이는 조금 더 달콤하고 부드러운 루비,

그리고 과일향을 듬뿍 벤 기분 좋은 산미가 풍겨오는 화이트.

이 중에서도 나는 언제나 거칠고 강한 토니를 즐겨 마셨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 사이로

노란 백열등이 천장 곳곳에서 반짝거리고,

붉은 포트와인이 찰랑거리는 잔을 들어 올리며

오늘이고 내일이고 포트와인의 향에 취해

끝나지 않을 저녁의 끝을 하염없이 붙잡는 일.


포르투를 가장 사랑하는 도시라 말할 수 있었던 이유,

언제고 다시 온다면 조금 더 오랜 시간을 풀어놓겠다 다짐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단연코 놓칠 수 없을 낭만이자 행복이 이곳에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토록 사랑스러운 와인이 있고

그곳을 거니는 여행이 있는 곳이라면

다른 어느 곳을 제쳐두고라도

지도를 펴고 배낭을 메고

언제고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맛있는 술 한잔을 따라가는 여행만큼 달콤하고 낭만적인 여행은 또 없을 테니.

적어도 술의 낭만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그랬다.


살짝 얼굴이 벌게진 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훨씬 더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렇게 살며시 풀어진 꾸미지 않은 순수한 모습들이 좋다.


살짝 취기가 감돈 채 걷는 골목은

더 이상 매일 걷던 익숙한 골목이 니다.

발걸음을 잠시 멈춰둘 만큼 아름다운 낭만을 새삼 덮어놓았으니.


눈물을 머금은 듯 빛나던 노란 가로등,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달,

하늘에 촘촘히 박혀있는 별들과

그저 이 휑한 거리를 걷고 있는 나 자신도

뭔지 모를 달콤함이 내 마음을 적셔온다.

 

그렇게 새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좋다.

너무 익숙해 더 이상 떨리지 않던 것들을 새삼 떨리게 하는 그 순간이 좋다.

그렇게 나는 모든 것에 떨림을 담은 여행을 사랑한다.



포르투에서 매일같이 새로운 떨림을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포트와인 한잔이면 충분하므로.

포트와인을 찾는 일 또한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저녁이 드리워지는 포르투의 골목에는

어느 곳 할 것 없이 와인잔을 부딪히는 달콤한 소리들로 넘쳐난다.

가게 안에서부터 거리 밖의 사람들까지

모두가 매일같이 찾아오는 이 저녁을 새삼 다르게 만나고 있는 중이다.


거리 곳곳마다 피어나는 와인의 진한 향기와

그 향기를 더욱 짙게 만들 흥겨운 노랫소리는

달콤한 포르투의 밤 어디에서고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곳에선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 발걸음이 향하는 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그저 따라가기만 할 뿐이다.

그럼 그곳에서 세상 가장 달콤한 포트와인을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골목 중턱에 놓인 테라스에 자리를 잡는다.

커다랗고 새까만 포르투의 밤과 대조되듯

테이블 곳곳에는 앙증맞은 초들이 아슬아슬하게 불을 켜고 있었다.


투명한 와인 잔 안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붉은 빛깔의 포트와인이 채워지면

곧, 세상 가장 달콤한 포르투의 밤이 시작다.


10년 산 포트와인을 한 잔씩 시켜두곤 포르투의 밤하늘을 눈에 담아본다.


거리 곳곳을 밝히는 노란 가로등 불빛과

하나둘 손을 꼭 맞잡고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그 사이 들려오는 나른한 노랫소리 너머로

시원한 바람이 더해진다.

결국 짙은 포르투의 낭만은 끝을 모르고 퍼져나간다.



달콤한 향이 묵직하게 스며드는 포트와인 한 모금에

포르투의 밤을 담고,

포르투의 불빛을 담고,

포르투의 낭만을 담는다.


참 묘하다.

독한 알코올과 함께 스며드는 달달함이 묘하게 매력적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마셨다간 큰일 날 술이겠다며 고개를 저어 보지만

와인잔을 잡고 있는 손은 떨어질 줄을 모른다.   


아무래도 이토록 낭만적인 와인을 조금 더 깊이 느껴보고 싶어 졌다.

이토록 매력적인 포트와인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포르투의 기다란 도우루 강변에는 내로라하는 와이너리가 가득하다.

서로 다른 지역을 강 하나를 끼고 연결되어 있는 동 루이스 다리를 건너면

포트와인의 성지라 불리는 빌라노바드가이아(Vila Nova de Gaia)에 다다를 수 있다.


다리 하나만 건넜을 뿐이건만, 이곳에선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수많은 와이너리들이 언덕 위까지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그 밑에는 다양한 와인바들이 거리를 채우고

그 안에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채워지는 와인으로 흥겨움이 배가된다.


햇살에 반짝이는 도우루 강변을 바라보며 걷는다.  

강물 위로는 포트와인을 담은 오크통이 한가득 실어진 배들이 줄지어 정박되어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지만

한때 오크통을 실어 나르던 옛 모습을 잠시나마 그 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

기다란 나룻배에 채워진 커다란 오크통들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를 설렘과 낭만이 슬며시 차오른다.     


강물 위에 떠있는 달콤한 낭만을 따라 

포르투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강하게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바라만 봐도

아름다워 미치겠으니 말이다.


강가를 따라 즐비한 와이너리 중 미리 보아둔 샌드맨 와이너리로 향했다.

가이드를 따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와이너리를 둘러보고 나면

마지막으로 2잔의 포트와인을 시음해볼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지는 투어이다.



와이너리 투어는 포트와인을 만나고 나서부터 가장 기다렸던 순간이다.

저장방법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포트와인에 대한 궁금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수많은 와인들을 한국에서도 똑같이 맛볼 수 있다지만

직접 포도를 심고

뜨거운 햇볕을 받아 잘 익은 포도를 수확해

오랜 시간을 거쳐 정착된 방법으로 숙성을 시키

그 향기가 가장 진하게 베인 바로 그 본고장에서 마셔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이건 분명 그 어떤 같은 와인으로도 똑같은 감흥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 묘한 설렘과 낭만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그곳에 다가가는 것 외에는 말이다.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와인 저장소로 들어간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진한 포트와인의 향이 코끝을 감싼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와인향을 맡으며 와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수많은 오크통이 내가 걷는 길 양옆을 가득 채우고

곳곳에 놓인 은은한 조명들이 그곳의 달콤함을 한층 진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순간, 이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와인이 숨 쉬고 있는 오크통에 살며시 손을 댄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셔본다.

특별한 것 없는 공기마저 달콤해지는 순간이다.


샌드맨 특유의 컨셉인 모자와 망토를 두른 가이드를 따라가며

1시간 동안 샌드맨의 역사와 포트와인의 저장방법,

포트와인의 빈티지와 다양한 맛의 차이 등을 듣고 나니

어느새 향긋한 향이 가득 찼던 와이너리 투어가 끝이 났다.



다시 저장소 밖으로 나오자 테이블마다 포트와인이 2잔씩 채워진 잔들이 놓여있었다.

하나는 화이트 포트와인, 또 한잔은 토니 포트와인이다.

상큼한 과일향이 한껏 풍기는 화이트 와인과

짙은 붉은 빛깔에 달콤한 캐러멜과 바닐라향이 풍기는 토니 포트와인까지 마시고 나니

기분 좋은 취기가 살며시 달아오른다.


참 단순하다.

달콤한 술 한 잔에 모든 걸 내려놓을 만큼 행복해하고 있다니 말이다.

그래서 맛있는 술을 따라가는 여행은 이토록 행복한 걸까.     



맛있는 술과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 어디서고 누구와 함께든

잊지 못할 따스한 순간을 선물해준다.


긴장했던 모습을 풀어놓게 하고

추웠던 몸을 살며시 녹이고

어색했던 사이를 묶어주고

아쉬웠던 시간을 넉넉히 채워준다.   

  

좋은 사람과 함께 마시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기쁜 날은 더욱 기쁘게, 슬픈 날은 더욱 단단하게,

그렇게 여행의 맛은 더욱 깊어간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술이 끝나지 않는 한,

달콤한 술 한잔을 따라가는 이 여행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고 이 여행의 끝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맛있는 술 한잔이 기우는 밤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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