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신을 신고 폴짝 뛰어오른 날
포르투에 푸른 저녁이 드리워질 때면
언제나 향하는 곳이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매일 저녁을 서성이였던 그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기다란 도로 끝에 무심한 돌계단을 몇 개 내려오면
해가 지는 저녁, 하염없이 그 빛을 따라 물드는 도우루 강이 보이고
그 뒤로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이 시간을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조금 더 천천히 담아내기 위해
해가 지기 전 동 루이스 다리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 또한 그들처럼 그 다리 위에 올라
따스한 불빛들이 곳곳에 스며드는 강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내려오는 게
오늘은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조금 더 오랜 시간을 바라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포르투의 마지막 밤이니 말이다.
언덕을 오르고 계단을 오르고 또다시 언덕을 오르면
어느새 도우루 강을 가장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아직 해가 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 오후 4시.
나는 이곳에서 하늘이 온통 까맣게 물들고
곳곳에 노랗게 켜진 가로등과 불빛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 밤이 될 때까지
그 무엇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는
그저 시시각각 변하는 강물의 빛깔만 바라보았다.
하늘과 풍경이 맞닿는 곳에 잠깐 붉은 노을이 깔리더니
어느새 붉은 해가 조심스레 모습을 감추고
잠시 온 도시가 푸르스름한 어둠에 사로잡힌다.
그 기운을 이어 서서히 곳곳에선 어둠을 밝히려는 반짝이는 불빛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민다.
다리 밑을 달리는 차들도,
강변 끝자락에 옹기종기 모인 상점들도
깊어지는 밤을 알리듯 따스한 기운을 담은 불빛들을 깜박였다.
조금 더 짙은 어둠이 깔리자 불빛은 그제야 자신의 모든 걸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던 어둠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타오르는 불빛에 맥없이 힘을 잃는다.
눈부신 불빛들이 어둠을 색으로 물들이는 이 순간,
비로소 까만 어둠 속에서야 불빛은
자신이 가진 모든 빛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그 사이 강물은 수차례 변화의 색을 거듭하였고,
서서히 짙은 어둠으로 향해가는 강물에 넋을 놓은 사이 어느덧 시계는 7시를 가리켰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마침내
가장 화려하고 눈부신 색감으로 채워지는 빛의 향연이 절정으로 치닫자
뜨거웠던 나의 마지막 포르투 저녁에도 새까만 밤하늘이 고요히 덮여왔다.
그 진한 불빛 때문일까.
그동안 달려온 여행에 대한 여운 때문일까.
까만 어둠 위로 스스륵 내려앉은 화려한 불빛 사이로
지난날의 여행의 순간들이 살며시 겹쳐졌다.
뭉클해지는 마음이 끝내 가시질 않아 몇 걸음을 더 맴돌다 다시금 언덕을 내려온다.
때론 푸르기도, 붉어지기도,
어둡기도, 밝아지기도 했던
강물의 수만 가지의 모습들이 결국엔 하나의 똑같은 강물이었던 것처럼
문득 그 모습이 나와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매번 다른 곳을 여행하며 하루에도 수없이
푸른빛, 붉은빛, 어두운 빛과 밝은 빛을 그려냈던 나도,
그 어디서도 쉽게 꺼내보여 놓지 못했던
나라는 한 사람이 가진 수많은 모습 중 하나였을 테니 말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어쩌면 쉽사리 인정하고 싶지만은 않았던 솔직한 나 자신과 마주 하기도 했다.
멋지게 모든 걸 포기하고 떠난 사람인 줄 알았건만
나는 여전히 내가 버린 것들에 미련이 많았고,
여행에서 얻는 모든 고통은 배움이라며 자부하던 나는
쓰라린 배신과 차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고,
오로지 내 의지대로 사는 삶을 살겠다며 큰소리쳤던 나는
여전히 남의 시선과 남의 생각에 휘둘리고,
나 자신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겁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알고 있던 나와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은
정확히 반대로 뒤집어졌고,
전혀 알지 못했던 나와
평생 모르고 살 것만 같았던 순간들은
예고 없이 불쑥불쑥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찾아왔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변화에 내 하루는 멈춰있을 틈이 없었다.
하루는 들끓는 열정에 온몸이 부서지기도
하루는 도통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죽어있는 듯한 하루에 무료해 미칠 것만 같은 날도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나 자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그 하루들이 차곡차곡 채워진다는 사실이 가끔은 무섭기도 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 인생에 변화가 없다면
그의 인생은
이미 녹슬어있는 것과 다름없다.
- 법정-
그럼에도 나는 이런 나 자신을 사랑한다.
아니, 한 번쯤은 이런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무언가에 대해
지레 겁먹고 도망가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여행 하나만으로도
지금까지의 모든 선택과 결정을 후회하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점점 까맣게 변해가는 피부색만큼
버려지고 얻어지는 모습들을 통해
변해가는 나 자신을 내몰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나 스스로 못나고 부족한 사람임을 인정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꿋꿋이 힘든 상황에서도 내 모든 결정과 판단을 믿고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가끔은 멈춰 서서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두려워하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나 지금의 모습에서
멈추지 않고 끝없이 변화할 수 있다는 용기를 잃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여행에서만큼은 내 감정과 생각을
억지로 괜찮은 척 아닌 척 감추거나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오랜 시간 묶어두었던 내 진실된 모습들을 하나둘 꺼내보며
그동안 무심히 외면했었던 시간을 다독이기만 하면 충분할 테니 말이다.
되돌아보면 지금껏 내 인생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이 시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가장 많이 웃었고, 수없이 설레었으며, 세상 가장 달콤했던 시간이자
이전의 모자란 내 모습에 부끄러운 후회를 곱씹기도 했던 고마운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이 나에게 준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어쩌면 그동안 꾸며진 행복에 처참히 매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어쩌면 그건 행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행복이라고 포장해놓은 그럴싸한 겉모습에 나도 모르게 현혹되어버렸는지도 몰랐다.
결국 나는 내 발에 맞는 행복을 찾기 위해
맞지 않는 신발을 벗어던지고는
105일간 10개국 29개의 도시를 걸었다.
물론 앞으로 걸어가야 할 시간들이 더 남았지만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내 발에 맞는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갑갑하고 딱딱하게 짜인 신발이 아닌
헐렁해서 가끔은 공기가 드나들 수 있는 신발.
앞만 보고 걸어가야 하는
무겁고 투박한 신발이 아닌
언제고 되돌아갈 수도, 다른 곳으로 향할 수도 있는 가벼운 신발을 말이다.
오래 남아 자주 떠올릴 수 있는 행복이란,
시간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고 고유의 색이 더욱 짙어지는 행복이란
내 발에 맞는 행복을 찾아 신었을 때야 만날 수 있는 행복이 아닐까.
이제 내 발에 맞는 행복이란 신발을 찾았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신발을 신고,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걸어가는 것뿐이다.
매일같이 똑같은 일상과 반복되는 고민에 뒤엉켜 허우적 될 때면,
내가 신고 있는 행복이란 신발이 내 발에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면,
혹은 그런 의심이 자꾸만 내 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면,
잠시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무심코 떠난 그곳에서
우린 속도를 줄이고,
느리게 걷고, 천천히 생각하며,
오래도록 내 속도에 맞춰
행복한 순간들을 함께 걸어가 줄
내 발에 맞는 행복을 찾아 신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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