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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Mar 18. 2017

당신은 지금 무엇과 사랑에 빠졌나요?

#사랑...? 먹는건가요? 네!!! 라고 당당히 외치던 날 

사랑에 빠진다라는 말만큼 명확하고 확실한 애정의 표현이 또 있을까?

무언가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면 우리의 시간 속엔 

그것이 부재했던 시간이 어떻게 존재했었는지 의아해질 만큼 맹목적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공기이든, 바람이든 말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오면 무언가와 종종, 아니 자주 사랑에 빠지곤 한다.

우연히 지나가다 들린 카페에서 마신 티가 좋아 집에 돌아오기 전이면 늘 손에 한잔씩 들려있기도 하고,

무심코 집어 들었던 CD 한 장에 담긴 노래 한곡에 빠져 그 노래만 질리도록 듣기도 한다.

특히나 인심이 좋고 손맛이 좋은 사장님이 계신 밥집은 사장님을 보는 낙으로 출석도장을 찍기도 하고

뻥 뚫린 광장에 앉아 매일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이 좋아 어느새 하루의 시작은 그 광장이 되기도 했다.


난 지금, 그것과 사랑에 빠졌나 봐!


어쩌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아주 지극히 사사롭고 사소하게 만나게 되는 것들에 

온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만 보면 거창하고 인생에 한 번 두 번 해볼까 말까 한 것들에 우린 사랑에 빠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주 들를 수 있고, 쉽게 만날 수 있고, 오래 내 옆에 둘 수 있는 것에서 

문득 새로운 감정이 피어오르는 순간

마음이 간질거리며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순간

우리는 결국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하루에 피어나는 작은 시간 속을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걷다 보면

익숙하게 지나쳤던 것들 마저도, 별 것 아닌 듯 흘려버렸던 것들 마저도 

생각보다 많은 것들에 사랑에 빠져버렸다고 말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가끔 이유 없이 무턱대고 사소한 것들과 사랑에 빠져버리기도 하니까.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또 하나의 그 무엇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매일 아침 눈만 뜨면 생각이 나고,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잠시 들어간 가게에서도 그것부터 찾게 되고,

그것만 생각하면 입꼬리가 씰룩 올라가 답답했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하루 온종일 그것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만 같았던 것.

이 정도면 충분히 사랑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미묘한 차이에도 내 모든 감각이 먼저 반응하게 되었던 그것은 바로

아르헨티나의 달콤한 디저트, '메디아루나'였다.

메디아 루나는 아르헨티나의 대표 디저트로

크루아상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작은 크기의 초승달 모양을 닮은 조그만 크루아상을 일컫는다.

     


한 손에 쏙 들어가는 앙증맞은 크기에

몇 번 베어 물면 감쪽같이 사라지는 메디아루나는

달콤한 시럽이 살짝 발린 바삭한 겉면과 부드럽게 녹아드는 촉촉한 빵의 식감이 

한 번 맛본 사람 그 누구라도 충분히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버린다.


고작 '디저트'?


사랑에 빠지는 일은 아주 단순하며 순식간에 일어난다.

고로 나는 이것과 사랑에 빠져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우연히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만난 무언가에 말도 안 되는 애착을 보이게 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에 가면 꼭 메디아루나를 먹어보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아니었다.

메디아루나로 유명한 맛집도 굳이 검색해볼 이유가 없었다.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메디아루나는 생각보다 쉽게 이곳저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웬만한 카페나 가게 그 어디에서고 국민 디저트인 메디아루나는 빠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메디아루나는 곧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전부가 되어버렸다.



메디아루나는 여행객의 주머니를 생각해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저렴한 가격에 부담이 없고, 끼니로 때울 만큼 양은 많지 않았지만 소소하게 배고픔을 달래주거나

모자란 입안을 채워주는 용으로 두말하면 입 아플 만큼 제격이었다.     

게다가 맛있기까지 하니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게 당연하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메디아루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어느새 가장 사랑스러운 메디아루나를 찾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적당한 달콤함이 베어든 바삭함과 촉촉함이 조화를 이루듯

메디아루나를 놓고 보내는 시간 또한 그처럼 달콤하고 나른해 순식간에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곳을 말이다.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마음에 딱 드는 한 곳을 발견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그곳은 

오페라하우스를 개조해 만든 낭만적인 아르헨티나의 한 서점이었다.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당장이라도 눈부신 공연 한 편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객석이었던 곳들은 반짝이는 조명을 달고 수많은 책장들로 빙 둘러져 있었고

커튼콜 뒤의 커다란 무대는 책을 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낭만적인 카페로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세트장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방불케 할 만큼 

여느 곳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색다른 서점의 모습은 순식간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번쯤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은 아예 없지 않으면서도 결코 소란스러워 방해가 되지는 않아야 했다.

중간중간 책을 고르는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 

누군가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움직임을 만들어주고

책을 보며 마실 수 있는 커피 한잔과 부담스럽지 않은 디저트 한 조각이 나른한 시간을 달래고

가끔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보는 것만으로도 멍해지는 아름다운 곳이었으면 했다.


온종일 이곳에 있으면서 밤인지 낮인지조차 구분할 필요 없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마음껏 밀렸던 생각과 일기를 써 내려가며 

하루를 송두리째 바치고 싶은 그런 곳, 

그런데 정말 그런 곳이 눈 앞에 나타났다.



떨리는 발걸음으로 반짝이는 조명들이 머리 위를 채우는 무대로 향했다.

테이블과 의자가 빈틈없이 채워진 무대 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가장 사랑스러운 시간을 채워가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섞여 천천히 자리를 잡고 어김없이 메디아루나와 커피 한잔을 시켜두었다.


소란스러운 듯하면서도 적당히 조용하고,

어두운듯하면서도 조명들이 곳곳을 밝히고,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곳 같으면서도 책을 읽으며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곳.


우연히 한 장의 사진으로 돌고 돌아 찾아온 이곳에서

나는 기어이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사랑스러운 곳을 만났다.     


커피를 마셔도, 책을 읽어도, 글을 써도, 무엇을 해도

이곳에서는 마치 시간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어쩌면 들어오는 순간 이 공간에선 또 다른 시간의 흐름이 시작되는 것처럼

오로지 이 공간과 내가 사랑하는 것들만이 끝없이 나를 채우고 있었다.



그런 곳들을 나는 좋아했다.

간판 하나 제대로 없는 작은 가게일지라도

남들은 일부러 찾아오지도 않는 허름한 구석일지라도

오래 그리고 자주 드나들어도 바래지 않는 그곳만의 감동을 꿋꿋이 전해주는 곳,

오랜 시간을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한참을 생각에 잠겨도 눈치 하나 보이지 않는 

마음이 커다란 곳들을 말이다.

 

언제고 그런 곳을 찾을 때면 

그 도시에선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내 모든 하루가 끝이 나곤 했다.

그곳 하나만으로도 나에겐 그 도시를 느끼기에, 

그 도시를 여행하기에 더없이 충분했으니 말이다.

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머릿속에 그곳만 떠올라 

안 가고는 못 배길 만큼 간절했던 탓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결국 나는 그곳과 제대로 사랑에 빠진 것이다.

     

아르헨티나에 간다면 꼭 맛봐야 한다는 음식과 맛집들을 다 가보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떠오르는 메디아루나를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다녔다.

나에겐 그것이 여행이었고 그것이 행복이었으니 

다른 유명한 맛집과 단순히 메디아루나 하나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 사랑에 빠진 것과 빠지지 않은 것 중 선택을 하라면 

답은 불 보듯 뻔할 테니 말이다.



한 때는 남들이 들려주는 여행의 선택지들을 꼼꼼히 비교해보며 

내 마음에 드는 것들을 찾으려고 애를 쓴 적도 있다.

맛있다는 맛집을 정리해두고, 다녀야 할 동선들을 빼곡하게 맞춰 그려두고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을지 철저히 완벽한 여행을 준비하기도 했다.

무엇이든 처음은 불안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여행이 종이 한 장으로 말끔히 정리가 될 수 있을까.

가끔은 완벽하다 싶을 만큼 준비를 하고 나면

마치 출발도 하기 전에 이미 그곳을 다녀와버린 것처럼 김이 새어 버리기도 했다.  

   


하물며 열심히 준비하고 적어 내려 간 여행 계획이 그대로 흘러만 가준다면 좋으련만,

베스트셀러가 된 가이드북들과 남들이 추천해준 곳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미 너도나도 찾아온 탓에 카메라 프레시로 번쩍거리는 관광지가 되어버린 곳들만이 나를 반기곤 했다.     

그곳에선 소박했던 아름다움도 살랑거리는 일상의 소리도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닳아버린 그곳은 쉽사리 이전에 가졌던 순수한 여행의 맛을 회복하지 못했다.

더 이상 나는 그곳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오로지 살인적인 물가와 초초한 기다림에 마음을 졸이는 수많은 관광객들과 마주할 뿐.     

결국 가장 완벽할 것만 같았던 여행은 가장 큰 실망을 안고 끝이 나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사실은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있는 정보라곤 지극히 제한적인 낯선 땅덩어리에 와서야 

나는 내가 바라던, 한 번쯤 꿈꿔보았던 여행을 시작했다.

비로소 사전 계획이 의미가 없어지는 무계획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빽빽하게 적어둔 일정을 소화해야 할 필요가 없었기에

무작정 들어간 카페에서 반나절을 앉아있어도 되었고,

유명한 맛집들로 붐비는 골목을 벗어났기에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은 훌륭한 맛과 가격의 단골가게를 만날 수 있었고,

관광객 하나 없는 도시에 도착한 덕분에 그곳에 사는 현지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기도 했고,

이름 모를 보라색 꽃이 반짝이는 날이면 공원 벤치에 앉아 그들과 함께 오후의 햇살을 맘껏 들이마시기도 했다.      

계획이 없는 여행이 시작되자
여행은 더욱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여행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다.
- 괴테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목적지를 정해두고 살아갈까.

만약 스스로 정해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기라도 한다면

우린 또 얼마나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스스로를 질책하고 불안해할까.     

그러니 적어도 여행에서만큼은 

반드시 도착해야만 하는 목적지를 잠시 잃어버려보는 건 어떨까.


다른 길은 보지 않고 정해진 목적지만을 향해가는 내비게이션을 꺼두고

내 발걸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불안하면 불안한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한 번쯤 따라가 보는 건 어떨까.     



헷갈릴 때면 잠시 머뭇거려도 좋고

마음에 든다면 샛길로 새어버려도 좋다.     


조금 오래 헤매어도 괜찮고,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해도 괜찮다.     


어딘가에 도달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없어진 순간

비로소 내가 걸음이 닿는 순간순간이 곧 목적지이자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여행의 또 다른 시작이 될 테니 말이다.     


결코 우린 어딘가에 도착해야만 하는 여행이 아닌,
언제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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