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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Mar 03. 2017

브라질의 웃음 속엔 늘 그것이 있었다

#01.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로 떠나기 전날 밤,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드디어 내일이면 브라질로 떠난다니.

이제부터 남미 여행의 시작이라니.

세계여행을 준비하며 남미를 위해  모든 준비와 기대를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설레었던 여행임에도 이상하게 기분이 들뜨지만은 않는다.

    

그간 편안했던 유럽여행이 끝나버렸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고

사실상 남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마치 처음 한국에서 세계여행을 떠나오던 그날처럼

두근거리는 마음과 떨리는 심장은 쉽게 잠들도록 놓아주질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눈을 붙인다.

기나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건만

여전히 내 마음은 싱숭생숭하기만 하다.   

  


'이제 캄캄한 저녁이면 돌아다니지 못하겠지.'

'카메라 하나 꺼내는 것도, 가방 하나 편하게 매는 것도 어려울거야...'

걱정도 앞서하는 부지런한 성격 탓에 당장 브라질로 날아갈 준비가 한창인 비행기 앞에서도 나는 연신 불안함을 곱씹었다.


도대체 이럴거면 왜 남미를 가겠다고 한건지.

긴장을 놓아버리면 안 된다는 무거운 압박감에

들뜨고 설레는 마음보다 점점 걱정과 두려움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몸은 브라질을 향해가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쉽사리 그 걸음을 따라가질 못했다.


마음을 다 잡았는지, 혹은 그런 척 하고 있는건지

나도 내 마음을 꺼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20시간이 흐른 뒤에야 뜨거운 바람이 불어대는 리우 공항에 착륙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사이

창문 너머로 브라질의 거리를 바라본다.    

 


내 예상을 정확하게 반대로 뒤집어 놓은 듯

조용하고 한가로운 거리의 모습들이 유유히 그려지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표정,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은

심지어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내 마음을 놓아주지 못하고 있었다.

무거운 짐만큼이나 무거운 마음을 꼭 부여잡고는

이파네마 해변 근처에 버스를 세우고 천천히 첫 발을 떼었다.

 

느긋한 공기가 감도는 거리엔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여유롭게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있었다.     



버스에서 한가득 꺼내놓은 배낭과 짐가방들을

하나 둘 챙기려던 찰나에 지나가시던 아주머니께서 다급하게 손짓을 하셨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조용한 거리에서

갑작스레 멈춰선 아주머니는

마침 오늘이 남미에 발을 디딘 첫날임을 용케도 알아차리셨는지 혹은 나의 잔뜩 움츠러든 표정과 격양된 긴장감이 새어나온 탓이었는지

거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짐들을 조심하라며 

긴장감이 감도는 당부를 남기셨다.


'역시 이럴 줄 알았지.'

'여긴 정말 엄청 위험한 곳인거야.'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곧장 배낭과 짐을

온 몸에 주렁주렁 메달고는 해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잡아둔 호스텔로 곧장 향했다.


에 들어가 부랴부랴 짐을 풀고 잠시 재정비에 들어갔다.

카메라를 넣어 다닐 작은배낭은 자물쇠로 채워두고

돈은 필요한 만큼만 아주 소량을 챙겨

비어있는 미끼용 지갑을 만들어 챙기고

여권과 각종 소지품, 심지어 휴대폰까지 방 안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드디어 브라질과 대면할 준비가 끝났다.

긴장감을 살며시 감추고 이파네마 해변가로 걸어나갔다.

가는 길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거나 운동을 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편안히 모래사장 앞에 누워 쉬고 있기도 했고,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불과 몇분 안에 눈에 담긴 모습들이었지만 그 안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제대로 이곳을 오해하고 있었다고.

마치 작은 문 하나를 위해

아주 커다란 자물쇠로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 모조리 다 잠궈버린 것만 같은

허탈함이 밀려왔다.


실크처럼 부드러 백사장이 발바닥 사이를 간지럽힌다.

따뜻하고 기분 좋은 감촉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마음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어지러웠던 마음을 녹여내기라도 하듯

고운 모래사장을 밟으며 바라보는 느긋한 해변은

어느새 시원한 파도를 눈 앞에 가져다 놓는다.



신발을 벗어놓고 모래사장을 거닐어 본다.

-철썩철썩

꽤나 커다란 파도들이 발 앞까지 다가와 부서졌다.

아쉬움도 잠시 더 커다란 파도가 또다시 다가와 이번엔 다리를 흠뻑 적신다.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걱정도 무서움도

순식간에 잊은 채 해맑은 미소가 번졌다.     

짭짜름한 바다 냄새가 코끝에 감돌고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넘기고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 브라질 해변 가운데

세상 편안하게 웃고있는 내가 있었다.   

  

해가 뜨면 거리에 나와 햇살을 즐기고

파도가 좋은 날엔 서핑을 하며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있는 이 순간,

이 앞에선 그동안 보았던 자유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느낀다.



해변을 거닐다 파도와 혼자 놀고 있는 꼬마 소년을 만났다.

새까만 피부에 짧은 머리,

커다란 눈동자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은 그 어떤 순수함보다 명확했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으로도, 설명으로도,

이 소년이 아니고선 이토록 순수하다는 말을 정확하게 나타내 보일 순 없을 것만 같았다.

꼬마소년을 바라보며 아직 내 안에도

그토록 명확하게 꺼내어 볼 수 있는 순수함이 남아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 사이 얼굴 한가득 싱글벙글 웃음꽃을 우며

파도를 기다리는 꼬마소년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커다란 파도가 다가온다는 듯 손짓을 하며

눈을 크게 떠 보이자 소년은 거세게 달려드는 파도와 신나는 달리기 한판을 벌인다.


까르르 웃어 보이는 꼬마소년의 웃음을 따라

나도 함께 웃어 보였다.



가끔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이 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랜만에 그 행복한 순간을 브라질 리우에서 만났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래사장을 걷고 또 걸으며

시원한 파도에 마음을 뺏기고 나니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있다.


이파네마해변에서 걸어나와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근처 생과일주스 가게로 들어선다.     

무얼 주문할지 몰라 두리번 거리던 그때,

가게 아저씨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브라질에서 꼭 한번 먹어봐야 한다는 아사히다.     

아마존의 열매라고 불리는 아사히는 원주민들의 자양강장과 치료를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을 만큼

그 효능이 익히 알려진 터였다.    

 


짙은 보랏빛을 띄는 색과 주스라고 하기엔

푸딩처럼 묵직한 비주얼이 약간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아저씨의 확고한 선택을 믿고 주문을 마쳤다.

   

그러자 아저씨는 신이 나신듯 더 큰 목소리로 "아싸히-!"라며 외친다.

그러곤 순박하게 으시는 모습을 보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왜 이렇게 자꾸 웃음이 나지?
이곳 사람들의 미소만 보면
자꾸 따라 웃게 되잖아!

 

브라질 사람들 특유의 순수함때문인지

혹은 매몰차게 닫아두었던 마음이 미안해서인지

어쩌면 아무런 기대도 욕심도 없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나는 브라질의 순수함에 마음을 빼앗겼다.

아직도 그들을 생각하면 자꾸만 환하게 웃는 얼굴들이 내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드디어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인 아사히를 들이켜니

잠시 햇볕에 지쳤던 정신이 번쩍 뜨인다.


안 먹어봤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매력적인 아사히에 빠져든 것도 잠시,

어느새 아사히를 담아두었던 컵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무래도 내일 또 들를 모양이라며 반가운 작별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금 리우의 거리를 걸었다.

     


여전히 살랑살랑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과

한가로움이 가득 찬 거리의 모습들이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든다.     


정신없는 축제와 화려한 삼바의 모습이 겹쳐지지 않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브라질의 얼굴에

나는 새삼 반해버렸다.

투박하지만 순수한 사람들에 제대로 반해버렸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따뜻한 브라질을 두려워하기만 했을까.

무엇이 그토록 브라질에 대한 어두운 선입견을 가지게 만들었을까.

그들은 언제나 정겨웠거짓이 없었고

오래도록 브라질을 더 많이 여행하지 못한 아쉬운 후회를 곱씹게 만들었다.     



근처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자

맛있는 가게를 알려주시겠다며 직접 데려다주신 경비 아저씨도.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할지 몰라 헤매는 나를 위해 지나가는 버스를 붙잡아 선뜻 물어봐 주시는 아주머니도.

    

그들의 인정 넘치는 따뜻한 모습에 몇 번이고 감사함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잠시나마 꼭꼭 닫아두었던 마음이 그들에게 보였을까 부끄러워다.   

  

직접 다가가보지 않고선 알 수 없다.

겉으로만 지레 짐작할 땐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속에 품은 따뜻한 마음도,

입 안에 담은 순수한 미소도.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모든 것들을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도, 직업도, 여행도, 혹은 그 무엇이든.     


반드시 겉모습으로 가늠해보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닐테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한번 정해놓은 첫인상이라는 높은 장벽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이 겉모습으로 모든 걸 판단해버렸을 때 다가올 가장 큰 위험이.     


사람도, 여행도, 사랑도, 일도
직접 겪어보고 부딪히며 얻어 지는 것이라야 진짜가 아닐까.


꽤나 까칠할 것만 같았던 그녀는 오히려 아주 진중한 사람이었고,

아무것도 없는 휑한 도시일 줄 알았던 그곳은 아무나 찾아오지않는 나만의 아지트가 되어주었고,

나를 사랑해주고 있다고 생각한 그 남자는 내 생각보다 나를 훨씬 더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은 그들이 가진 진짜 모습을 불필요한 것들로 감추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똑같이 많은 것들을 오해하며 살고 있었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오해를 사며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린 무겁게 깔려있던 선입견을 벗어 버리고 기필코 들이 가진 진실된 모습과 천천히 마주해야만 한다.   

 

그들이 가진 진짜 모습은,

내가 가진 진짜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아름답고 찬란할테니 말이다.

 


어쩌면 여행을 하는 그곳이 좀처럼 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딱딱한 그림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지금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낯설고 어색한 공간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을 나누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또 다른 공기와 그림이 그 공간을 채우게 될테니 말이다.


마치 무섭고 거칠것같았던 브라질이

평화롭고 순수한 모습을 꺼내준 것처럼.   


나는 리우에서 무거운 선입견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웃음이 따스한 사람들을 만났고,

세상 가장 순수한 진짜 브라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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