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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Mar 06. 2017

악마의 목구멍에서 끝없는 전율을 맛보다

#02.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를 보기 위해 꽤나 어렵사리 먼 길을 돌아왔다.

오래 머물 것도 아니었기에, 게다가 국립공원 입장료에 보트투어까지 하려면 경비가 빠듯했던 탓에

숙소도 그나마 가깝고 저렴한 곳으로 정해둔 참이었다.

    

브라질에서 어렵게 찾아간 버스정류장에서

운 좋게 저렴한 시내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     


1시간쯤 달렸을까.

버스가 멈춰 선 곳은 마치 움직이는 사람 하나 없을 것만 같은 한적하다 못해 스산해 보이기까지 하는 작은 마을이었다.     


한산하기 그지없는 이곳이 나에게 안겨준 가장 큰 시련은 페소를 바꿀만한 환전소가 없었던 것도,

제대로 된 식당 하나 보이지 않던 것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날씨였다.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단 하루뿐이었기에

무엇보다 이곳에서만큼은 날씨가 따라주길 바랬다.

그럼에도 기어코 꾸역꾸역 찾아와 마주친 이과수는 단 하루의 날씨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과수 폭포로 향하는 날 아침,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휩싸여 눈을 뜬다.

커튼을 채 걷어볼 새도 없이

하늘에서 울리는 요란한 천둥소리가 내 마음을 처참히 짓눌렀다.     


아니나 다를까.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폭우와 거센 바람을 동반하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 날씨를 무릅쓰고라도 가야 할지,

아니면 과감히 포기를 하고 고생을 면할지.     


오랜시간을 고민해보지 않아도 답은 뻔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렴 비를 쫄딱맞더라도 그곳을 내 두눈으로 기어이 봐야하지않겠는가.

'그깟 고생 한 번 해보지 뭐!'라는 심정으로

무거운 마음을 외면한 채 나갈 준비를 마쳤다.     


이과수를 향한 열정에 하늘이 감동이라도 받은 걸까.

나갈 채비를 마치자 어느새 요란했던 하늘은 고요해지고 먹구름마저 개는 듯 보였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기 전에 서둘러 나와

집 앞에 세워진 간이정류소에서 버스를 잡아타고 이과수 폭포로 향했다.     



드디어 도착한 국립공원 입구에서 티켓을 끊고,

안으로 조금 더 걸어들어가자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 보트투어 부스가 나왔다.

이곳은 이과수 폭포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폭포의 물줄기를 일컫는 악마의 목구멍 안으로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 짜릿한 액티비티 투어를 신청하는 곳이다.     


사실상 브라질 이과수를 보고도 굳이 또 다음날 아르헨티나 이과수까지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오늘이 아니면 다신 해볼 기회조차 없을지도 몰랐기에 아침부터 그 고생을 무릅쓰고라도 와야겠다고 다짐을 할 수밖에.



잠시 주춤해지는 날씨를 보며,

오늘도 보트투어가 가능한지 묻자 전혀 문제 될 게 없단다.

혹여나 안될까 노심초사했던 마음을 넣어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투어를 신청을 마쳤다.     

투어 티켓까지 손에 넣고는 본격적으로 이과수폭포를 느껴보기 위해 길을 걷는다.


기차역에 도착해 악마의 목구멍까지 향하는 기차를 타고 시원하게 달린다.

기차가 악마의 목구멍으로 향하는 사이

우연히 미국 텍사스에서 온 아저씨를 만났다.     


한국에서 왔다는 걸 듣자마자 눈을 커다랗게 떠 보이며 뭔가를 보여주신다.

서울과 부산 그리고 경주까지 1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을 여행하셨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그때의 즐거웠던 사진을 꺼내시곤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아저씨.  



신이 나신 듯 해맑은 표정으로 한국여행의 소감을 줄줄 꺼내놓으시는 아저씨를 보고있으니

괜스레 내 마음까지 기분 좋은 훈훈함으로 젖어들었다.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먼 곳에서부터 이곳까지 여행을 떠나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내가 그들의 나라를 꿈꾸며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내가 살고 있는 곳도 누군가에겐 설레는 마음으로 꿈꿔볼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꽤나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하루하루를 살고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행을 사랑하는 텍사스 아저씨와 함께

이곳저곳을 여행한 이야기를 정신없이 풀어놓다보니

어느새 종소리가 울리고 기차가 이내 멈춰 섰다.     


아쉬운 작별인사와 함께 서로의 남은 여행에 응원을 보내며 드디어 악마의 목구멍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에 올라선다.     



철제다리로 되어있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사이 잠시 멈춰있던 비는 어느새 다시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숲 속 사이를 걷기도 하고 강물 위를 걷기도 하며

슬슬 힘이 부쳐올 때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요란한 물소리가 고요했던 귓가에 내리꽂혔다.  

   

물소리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눈앞엔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드디어 고대하던 악마의 목구멍이 눈앞에 타나는 순간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물줄기와 함께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보고 있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좀 더 사실감을 더해보자면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에서 아주 커다란 호랑이를 만나기라도 한 듯한 극심한 공포스러움이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았다.

'잘못하면 죽겠구나...!'

실로 경이로웠고 소름이 끼쳤다.


이 엄청난 순간을 눈앞에 맞닥트린 감동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내 눈을 의심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폭포는 웅장하다 못해 마치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집어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거대하게 피어나는 물안개가 두눈을 뒤덮었고,

끝도없이 쏟아져내리는 물줄기와 두 귀를 의심할 만큼 울려퍼지는 커다란 폭포의 소리는

이 앞에 내 두 다리가 서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공포와 감동이 뒤섞인 짜릿함 내 마음을 후벼파고 있었다.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바라본다.

이곳이 어느 정도의 높이인지 도통 가늠이 안될 만큼 끝이 보이지 않는 폭포를 보고 있으니

새삼 밀려오는 자연의 위대함 앞에 조용히 입을 다문다.



마치 저 깊은 폭포의 끝자락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장엄한 폭포의 모습에 한동안 넋을 놓고는 다시금 길을 나섰다.

보트투어의 마지막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탓에

시간을 지체하다간 마지막 배를 탈 시간마저 맞추지 못할 터였다.     


다시 기차를 타고 악마의 목구멍에서 내려와

로우트레일로 향하는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다시 걸어서 30분 정도를 가야 보트투어를 탈 수 있는 선착장에 도착한다.


로우트레일 입구를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갑자기 하늘에서 요란한 천둥소리가 들려오더니

아침 내내 쏟아붓던 거센 빗줄기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소나기이길 바라며 우비를 부여잡고 걸어보지만

빗줄기는 잠잠해질 줄 모르고 더욱 더 거센 바람을 동반하며 불어댔다.    

 

보트투어만 아니었다이 시점에서 분명 돌아갔을 게 뻔했지만, 이미 돈까지 다 내버린 상황이었기에 그대로 돌아설 수가 없었다.

비를 뚫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묵묵히 걸음을 이어나갔다.     


십여 분이 지나자 마치 이곳에 남은 사람이라곤 나 하나 뿐인 듯 조그만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는다.

푸릇푸릇했던 숲길은 먹구름과 비바람 탓에 흡사 들짐승이라도 튀어나올 듯 스산한 그림자를 드리웠고,

들리는 거라곤 차가운 폭포가 내리꽃히는 소리와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가 전부였다.     


앞으로 얼마를 더 가야 할지도 명확하게 가늠이 되지 않았다.

괜스레 이 길마저 잘못 들어온 게 아닐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적막이 감도는 길목에 서서

덜덜 떨리는 두 다리를 부여잡은 채

돌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하며

내 정신력과 싸워야만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며

조금만 더 걸어가 보기로 한다.

     

그때 마침 길이 다시 넓어지더니

내가 가는 방향과 동일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 졸이며 찾던 선착장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였고 

무사히 시간에 맞춰 그 앞에 도착했다.

    

보트투어를 하게 되었다는 즐거움에 앞서

살아서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더 커다랗 나를 에워쌌다.   

잠시 숨을 고르고 소름 끼쳤던 순간을 털어버리자

드디어 악마의 목구멍 속으로 들어간다는 설렘이 쪼글아들었던 심장을 마구 두들겼다.     



자고로 물놀이는 비가 올 때 해야 그 재미가 더해지는 법.

방금 전까지 겁먹었던 내 모습을 상상이나 할는지,

오늘은 해가 쨍쨍한 것보다 비바람이 치길 잘했다며 기대에 찬 발걸음을 옮겨 출발을 기다리는 보트 앞에 도착했다.     


날씨 탓인지 배에 타는 사람은 반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흥이 넘치시는 아르헨티나의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사이에 낀 덕분에 설렘과 흥분은 이미 최고조에 달했다.


커다란 환호성과 함께 드디어 보트가 출발한다.

보트는 제법 커다란 파도를 가로지르며 곧장 새하얗게 쏟아지는 폭포를 향해 돌진했다.

들어갈 듯 말 듯 애태우더니

다시금 뒤로 돌아 전력질주를 한다.     



요동치는 파도를 타고 다시 한번 폭포향해 달린다.

방금 전보다 더 거센 속력으로 돌진하더니

폭포의 거센 물줄기가 보트를 집어삼킬 듯 다가온다.


고개를 들어 바라볼 새도 없이 물안개를 동반한 물줄기의 거대한 짜릿함이 온몸을 적신다.      

-쏴아아

눈앞에서 떨어지는 이과수 폭포의 물줄기라니!

그 순간 온몸에 퍼지는 전율이란 가히 상상할 수가 없다.     


모두가 Otra vez!(다시 한번 더!)를 외치자

보트는 그 환호에 답을 하듯 다시 한번 돌아 폭포 속으로 달려든다.

시원하게 내리꽂는 폭포를 맞으며

오랜만에 짜릿한 비명을 마음껏 질러댔다.

     

모두가 손뼉을 치고 만세를 하고 엄지를 치켜들며 표현할 수 있는 즐거움이란 즐거움은 모두 꺼내놓기 시작했다. 

    


세계 3대 폭포라 불리는 이과수 폭포에서

그것도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이 쳐대는 시꺼먼 하늘 아래에서

거대한 폭포의 물줄기 속을 들어갔다 나오며 perfecto! excelente!를 외치고 있다니.


진정 이 순간은 이과수 폭포를 온몸으로 느끼는 전율의 순간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으리라.

    

꿈이 아니기를,

이 순간이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끝나지 않을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이 순간의 짜릿한 감동에 흠뻑 취본다.    

 

호기롭게 폭포를 빠져나온 보트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과수의 하늘을 머리 위에 두고 유유히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꿈만 같았던 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사이, 여전히 쿵쾅대는 심장을 붙잡으며 다시 계단을 올랐다.

밖으로 나와서도 한껏 올라간 입꼬리는 쉽사리 내려올 생각을 하질 않는다.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고

하늘엔 먹구름이 깔려있었고

집으로 가기 위해선 왔던 길을 또다시 한참 동안 걸어가야 하지만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다.    

 


구석구석 막힌 곳 하나없이 뚫어버리는 속 시원한 폭포의 물줄기 덕에 돌아가야 할 기나긴 걸음도, 축축하게 젖은 옷과 신발을 빨아야 할 걱정도, 우중충하게 하늘을 가린 먹구름도, 그 무엇 하나도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던 강렬했던 순간들이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또 하나 피워냈다. 


오늘은 비바람이 치길 잘했다.

가끔은 비바람이 쳐도 괜찮겠다.

그 비바람을 뚫고 묵묵히 걸어온 시간은

기어코 해냈다는 짜릿함,

기어코 돌아서지 않았다는 뿌듯함을 더욱 단단히 오래도록 가슴 속에 붙들어줄테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비바람이 치길 잘했다.

그 빗속을 뚫고 끝까지 걸어오길 참 잘했다.


그 빗속을 뚫고 끝까지 걸어온 나에게 말해주고싶다.

참 잘했다고,

그리고 쉽게 잊히지 않을 뜨거운 순간을 피워내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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