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아귀(餓鬼)
황 반장이 문호상을 경찰서로 임의동행하는 것을 보고는 인협은 자기가 잡혀가는 것처럼 오금이 저렸다. 자기도 조만간 문호상처럼 경찰에 소환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황금산 반장은 그가 증언한 ‘해골 인간’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대신 그를 용의 선상에 놓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하긴 인협도 자신이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해골 인간의 존재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 판에 경찰인 황금산 반장이 그의 증언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 미칠 지경이었다. 잘못하다가는 엉뚱하게도 자기가 살인자로 몰릴 판이었다.
그는 다급했다. 빨리 그 해골 인간을 잡아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서 해골 인간을 찾아낼지 막막했다. 또 그놈과 다시 마주치면 이번에는 그것이 자기를 해칠 수도 있다는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방구석에 틀어박혀 걱정하기보다는 직접 부딪혀 보기로 결심하고 인협은 추운 겨울밤 야간 순찰에 나섰다.
전날보다 더욱 주의하며 주변을 살피며 사건 현장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 인협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 ”
노란색의 폴리스 라인이 저승길의 깃발처럼 어지럽게 나부끼는 살인 현장에서 수상한 인기척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자는 단순한 행인이 아닌 듯 사건 현장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인협의 머리털이 쭈뼛 일어섰다. 범죄자들은 자신이 범행을 저지른 곳에 혹시 단서라도 흘리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은밀하게 다시 현장에 돌아온다고 했다.
“거, 거기 누구야?”
인협이 고함을 지르자, 허리를 구부리고 뭔가 부지런히 찾던 자는 깜짝 놀란 듯 벌떡 상체를 들었다. 회색빛의 낯선 얼굴에 박힌 눈동자 없는 두 눈이 검은 중절모 밑에서 섬뜩하게 번쩍 빛났다. 세상에 존재하는 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특이하게도 검은색 연미복을 걸친 그자는 인협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듯 황급히 황금색 지팡이를 그에게 위협적으로 겨누었다.
“이런,”
뜻밖의 모습에 너무나 놀란 인협은 얼떨결에 신음을 내고는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동시에 중절모의 사내도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런데 그자도 예전의 해골 인간이 사라진 곳으로 도주했다.
“거기 서!”
인협은 용기를 내어 중절모의 사내를 쫓아갔다. 그러나 그가 이층 집 근처까지 쫓아왔을 때 앞에서 도주하던 중절모의 사내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인협은 이 층집 모퉁이를 잽싸게 돌아서 언덕으로 이어지는 소방도로를 살펴보았으나 거기에는 어슴푸레한 가로등만이 잠들어 있을 뿐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젠장, 도대체 이 자식이 어디로 도망갔지? 그런데 놈의 낯이 매우 익던데 어디서 보았지?”
“이번에는 제발 불이 안 일어났으면...”
한편 해골 인간 프레타(Preta)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에게 내린 하늘의 저주가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종종걸음으로 밤늦게 귀가하는 여고생의 뒤를 도둑고양이처럼 뒤따라갔다.
하늘의 저주.
산스크리트어로 프레타는 아귀(餓鬼)였다. 욕망의 화신이었던 아귀를 벌하기 위하여 하늘은 그에게 저주를 내렸다.
입은 아귀처럼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하여 음식물을 넘길 수가 없는 저주. 그것도 모자라 아귀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하여 두 손으로 먹을 것을 잡는 순간 그것들은 모두 불로 변하여 타버린다.
또한 그를 밤낮으로 괴롭히는 수컷의 욕정을 달래기 위하여 암컷을 포획하여 배 위로 올라가면 그것 또한 거대한 화염으로 변해 재가 되어버린다.
옹졸한 하늘의 저주였다.
그래서 프레타는 하늘이 자기에게 내린 형벌에 저항하는 길은 자기가 더 많은 인간을 끝없이 태워 죽이는 것이라고 자각했다.
그런 식으로 끊임없이 어깃장을 놓으면 인간의 무고한 희생에 지쳐버린 하늘도 언젠가 스스로 그 저주를 걷어갈 거라고 확신했다.
“어?”
그런데 프레타가 잠시 생각에 빠져든 사이 그의 화풀이 대상자인 여고생이 그의 냄새를 맡았는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레타는 가늘지만, 강철 같은 두 다리로 땅을 박차고 올라 여고생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감히 어딜 도망가?”
프레타가 악을 쓰고 깡마른 두 손으로 여고생의 머리를 잡아채는 순간 또다시 여고생의 몸은 거대한 불덩어리로 변하고 말았다. 화염 속 여고생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프레타 역시 괴로워했다. 괜히 애먼 곳에 화풀이 하나 싶어서였다.
그때 난데없이 웬 사내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꼼짝 마라!”
프레타가 서서히 돌아보니 트렌치코트를 걸친 남자가 양손으로 권총을 움켜쥐고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프레타는 뜬금없이 나타난 방해꾼과 상대하기 싫은 듯 갑자기 몸을 돌려 도주했다. 그것을 놓칠세라 황 반장은 주저 없이 프레타를 향해 권총을 발포했다.
한편 인협은 중절모를 놓쳐버리고 나서 울화통을 터뜨리고 있을 때 누군가 자기 쪽으로 정신없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어제 목격했던 그 해골 인간이었다. 질풍처럼 달려오는 해골에 기겁하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뱀같이 차가운 그것의 몸뚱이가 그의 곁을 스쳐 갔다.
“헉!”
깜짝 놀라 몸을 잔뜩 움츠렸던 인협이 고개를 들어보니 해골 인간은 간 곳이 없고 저만치 황금산 반장이 권총을 거머쥐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황 반장은 해골 인간이 사라진 자리에서 인협과 맞부딪치자 버럭 역정부터 냈다.
“또 당신이야!”
“나도 수상한 놈을 쫓고 있었어요.”
“해골이 도망치는 것 못 봤나?”
“순식간에 사라진 바람에 어디로 도망쳤는지 모르겠어요.”
“젠장,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황금산 반장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인협은 황 반장도 마침내 해골 인간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다. 최소한의 공감대가 생긴 것이니까.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황 반장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다.
“자네가 해골 인간이라 하기에는 너무 살쪘고……”
“참, 농담도 심하십니다.”
인협 역시 싸늘하게 응수하자 황 반장은 권총을 코트 속에 넣으며 피식 웃었다.
“나도 농담이네. 허허,”
“……!”
하지만 인협은 그의 농담이 영 찜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