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이상한 별장(別莊)
다음 날 아침 일찍 인협이 집 앞의 골목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데 황금산 반장이 다시 나타났다.
“아침부터 또 누구를 잡으시려고?”
인협이 그를 흘끔 보며 가시 돋친 인사를 건넸지만 황 반장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두 사건의 용의자가 모두 이곳에서 사라졌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우연도 우연 나름이죠.”
“혹시 범인이 이 근처 어디엔가 은신하고 있는 거 아니야?”
황금산 반장은 골목의 모든 집들이 범인의 은신처라는 되는 듯이 새삼스럽게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의 시선이 인협의 집에서는 꽤 오래 머물렀다. 그러다가 인협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했는지 황 반장은 노란색 이 층집을 가리켰다.
“저 집에는 누가 살죠?”
“모릅니다.”
“바로 앞 집인데 누가 사는지도 몰라요?”
“그럼 황 반장님의 앞집에는 누가 살죠?”
“새벽이슬 맞고 다니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알겠나?”
“마찬가지예요. 나 같은 백수가 허구한 날 지켜봐도 사람 출입하는 꼴을 한 번도 못 봤다니까요.”
인협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 백수라는 말에 힘을 줘가며 대꾸했다.
“참 여러 가지로 매우 수상한 집이야.”
황금산 반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 집 앞에 다가가서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러고는 그 집의 담장을 쳐다보더니 이맛살을 찌푸렸다.
“여기도 온통 낙서투성이군. 우리 동네도 이 꼴이라니까. 낙서가 그렇게 재미있나? 쯧,”
황 반장은 혀를 찼다.
“그런데 영희 아빠 문호상은 왜 계속 붙잡고 있는 거죠? 과잉수사 아니에요?”
인협은 영희 아빠를 끌어들여 괜히 의심받는 자신의 처지를 에둘러 항변했지만 닳고 닳은 황금산 반장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죽었다는 사람이 돌아왔는데 경찰이 조사를 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요?”
“처음부터 하동의 교통사고에 혹시 착오가 있었던 것 아니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동 경찰서는 문호상이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펄펄 뛰고 난리야.”
“전 아무래도 시골 경찰이 초동수사부터 뭔가 잘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차라리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수많은 강력 사건을 다루었을 황 반장 같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자 인협도 괜히 몸이 떨렸다.
“에이, 괜히 등짝이 오싹해지네.”
“어쨌든 혹시 다른 음모가 있나 조사 중이기는 한데.”
“다른 음모요?”
“사망사고로 위장해서 보험금을 타는 사람들이 가끔 있잖아”
“아예 소설을 쓰시죠.”
인협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면 금방 풀려나겠지 뭐.”
“그래야겠죠. 어쨌든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이 죄는 아닌데 무작정 사람을 감금할 수는 없잖아요.”
‘감금’이라는 인협의 지적에 황 반장은 슬쩍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말머리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어젯밤에 해골 인간이 이 부근에서 사라졌는데. 이곳에 뭔가 있는 것이 틀림없어.”
황 반장은 무뚝뚝하게 한마디 던지고 다시 인협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치 그에게 해골 인간을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또는 숨겨주는 용의자 아니냐 하고 묻는 듯했다. 그의 여전한 의심에 인협은 울컥했다.
“나도 그 망할 놈의 해골 인간을 찾고 있다고요!”
어쨌든 그날부터 황금산 반장과 형사들은 아예 인협의 동네에서 살다시피 했다. 괴이한 살인 용의자에 의해 두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으니 경찰이 바짝 긴장할 만도 했다. 또한 해가 떨어지자, 골목길 으슥한 곳마다 정복 경찰이 보초를 서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인협에게서 야간 순찰을 빼앗아 가버렸다. 그 바람에 다시 백수가 된 인협은 극심한 무력감에 빠져 버렸다.
무료하던 오후 햇살이 서산에 떨어지고 커피 빛 어둠이 골목에 은밀하게 밀려왔다.
(아니, )
저녁 9시에 3층 베란다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어둠 속에 잠복해 있을 형사들을 주시하던 인협의 눈이 번쩍 떠졌다. 깊은 어둠 속에 푹 가라앉아 있던 주인 없는 집 2층에서 작은 불빛이 새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어? 주인이 왔나?)
호기심이 동한 인협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 그 불빛이 출렁거리며 1층까지 내려왔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며 웬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70대를 바라보는 듯한 노인은 손전등을 들어 건물의 외벽을 비춰가며 유심히 훑어본다.
“이크!”
노인의 손전등 빛이 자신이 숨어있는 3층 베란다까지 뻗어오자, 인협은 노출될까 봐 재빨리 베란다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고는 눈만 살짝 내밀고 조심스럽게 노인의 동정을 살폈다. 이윽고 주위를 주의 깊게 살펴보던 노인은 이번에는 이 층집 담장에 손전등을 비췄다.
“쯧쯧, 그 녀석이 제대로 일을 안 했군. 게으른 작자 같으니라고!”
노란색 담장에 가득한 낙서를 발견하고는 했는지 노인은 혀를 차며 누군가를 비난했다. 그러고는 벽의 낙서를 유심히 읽어보는 듯했다.
한동안 침묵만을 지키던 그가 갑자기 키득키득 웃었다. 기이한 웃음소리에 인협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쭉 내밀었다.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노인의 얼굴이 뚜렷이 보였다. 잠시 후 노인은 어느 낙서를 보았는지 크게 탄식했다.
“허, 이거 큰일이군.”
말을 마친 노인은 허둥대며 집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무슨 일이야?)
인협이 궁금증에 빠져 있을 때 노인은 다시 바깥으로 급하게 나왔다. 노인의 손에는 커다란 양동이와 대걸레가 하나 쥐어져 있었다.
다시 담장 앞에 선 노인은 도저히 노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맹렬한 속도로 담장의 온갖 낙서를 지웠다.
(대체 무슨 낙서길래 저 호들갑이지?)
한밤중에 흉가와 다름없는 빈집에서 수상한 노인이 느닷없이 나타나더니 만사 제쳐두고 낙서부터 필사적으로 지우는 광경이 인협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낙서 중에 사람들이 봐서는 안 될 무엇이라도 있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기껏해야 철없는 동네 꼬마들이 욕지거리나 잔뜩 써놓았을 텐데.
그때였다.
“잠깐! ”
갑자기 장정 두 사람이 나타나 낙서 지우기에 정신이 없는 노인을 제지했다. 그들은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었던 황금산 반장과 그의 부하였다.
그래도 노인은 낙서를 지우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봐요!”
노인이 무시한다고 생각한 황금산 반장이 발끈하여 노인의 어깨를 낚아챘다. 그런데 노인은 바위처럼 끄떡하지 않았다. 단지 고개만 돌린 채 손은 여전히 바쁘게 낙서를 지운다. 잔주름이 많은 노인의 얼굴은 그리 험악해 보이지는 않았다.
“어르신, 이 집에 삽니까?”
“아니요, 난 이 별장 관리인이요.”
“그래요?”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소유천이요.”
황금산은 자신의 수첩에 노인의 인적 사항을 적었다.
“그런데 이 밤중에 뭐 하는 겁니까?”
“보면 모르겠소? 낙서를 지우고 있잖소?”
“얘들이 한 낙서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이 한밤중에 급하게 지우시나요?”
황금산 반장은 벽의 낙서를 슬쩍 훑어보며 물었다.
“그래도 내게는 중요한 일이니 어쩌겠소?”
소유천은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그 와중에도 손은 계속 낙서를 지우고 있다.
“이 집주인도 꽤 깔끔하신 분이군요. 참, 이 집주인을 좀 만나고 싶군요. 혹시 지금 있습니까?”
황 반장의 요청에 비로소 담장의 낙서를 다 지웠는지 소유천은 황 반장을 향해 완전히 돌아섰다. 그제야 황 반장의 신분이 궁금하다는 듯 그를 멀뚱히 쳐다본다.
“아, 전 남부 경찰서 황금산 반장입니다.”
“그래요. 하지만 지금은 주인님을 만날 수 없소이다.”
“아니 왜요?”
“주인님은 멀리 여행을 떠나셔서 한동안 못 오십니다.”
“흠. 그래요.”
“그런데 왜 주인님을 찾는 거요?”
“집만 덩그러니 있고 통 사람이 출입하지 않으니 경찰이 눈여겨보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이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뭐요? 살인사건? ”
“그래요. 그것도 두 건이 발생했어요.”
“두 건이요?”
소유천은 무척 놀란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왠지 꾸민 듯한 동작으로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놀람보다는 걱정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뭐, 문호상이 사라져?”
“네, 저도 어찌 된 영문인지 통 모르겠습니다.”
황 반장이 이 층집 관리인인 소유천을 심문하고 10시 조금 넘어서 경찰서로 돌아오자, 김 형사가 잔뜩 겁먹은 얼굴로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보고를 했다.
저녁 9시에 보강수사를 위해 유치장에 있던 문호상을 불러와 심문하고 있었는데 말 그대로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김 형사뿐만 아니라 문호상을 데리고 와 같이 배석하다가 불가사의한 광경을 목격한 순경들은 몸을 덜덜 떨기까지 했다. 경찰서가 발칵 뒤집힌 가운데 황 반장은 심문 과정을 촬영한 CCTV를 급히 다시 돌려보았다. 의자에 앉아 김 형사의 추궁에 강하게 머리를 흔들던 문호상이 9시 30분 되었을 때 홀연히 눈 녹듯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광경이 실제로 벌어졌다. 그것을 목격한 황 반장도 온몸에 감당할 수 없는 전율을 느끼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저게 대체 어찌 된 일이야?”
황 반장은 전소된 사고 차량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문호상 부부가 살아 돌아왔다는 신고를 받고 조사에 나섰을 때도 느낌은 별로 좋지 않았었다.
그때 하동 경찰서에 전소된 자동차의 주인이 살아왔다는 것을 통보하자 하동에서는 절대 그럴 리 없다며 수사관이 급거 상경했다. 그리고 문호상을 확인하던 하동 경찰서 수사관은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그대로 하동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 바람에 문호상을 단독 조사하게 된 베테랑 황 반장은 이성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사건을 보험사기 같은 다른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쪽으로 돌려 조사를 했었다. 차라리 그게 모두의 공포심을 덜어주는 데에는 최고의 약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조사를 해보아도 문호상이 가입했을 사망보험은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또한 문호상도 그동안 줄곧 여기저기를 아내와 함께 돌아다녔다 진지하게 주장했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그를 심문하던 수사관들은 그만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두려움만 증폭시키는 CCTV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황 반장은 갑자기 영희 엄마의 행방도 갑자기 궁금해졌다.
“...!”
11시가 넘어서 영희네 집 부근을 지나치던 인협은 집 앞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서 있는 영희를 발견했다.
“영희야, 이 늦은 시간에 여기서 뭐 하니?”
“...”
“너 어디 아파?”
그의 걱정에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흔드는 영희의 얼굴은 매우 창백하게 보였고 눈가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울었어? 무슨 일 있구나?”
“...”
“엄마한테 야단맞았어?”
“아니.”
“그런데 왜 그래?”
“우리 엄마가 없어졌어요. 연기처럼 말이에요.”
인협의 얼굴도 영희처럼 창백해졌다. 머리칼이 새삼 쭈뼛 섰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냐?”
“네,”
고개를 떨구는 영희의 어깨가 파르르 흔들린다.
“언제?”
“아까 9시 좀 넘어서요.”
“이런,”
영희 엄마는 여느 때처럼 저녁을 먹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단다. 그런데 밤늦게 학교 숙제를 하던 영희는 물어볼 것이 있어서 엄마 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이부자리만 휑하니 비어 있고 엄마는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거실에서 공부하던 영희는 엄마가 방 안에서 나오는 것을 못 보았다며 울먹이었다.
인협이 영희와 함께 집안에 들어가 보자 영희 할머니는 아예 몸져누워 있었다. 그때 황금산 반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헐레벌떡 들어섰다. 그는 다짜고짜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이윽고 영희를 붙잡고 황 반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엄마는 어디 갔니?”
“모르겠어요. 흑,”
영희가 왈칵 울음을 터뜨리자, 인협이 대신 대답했다.
“갑자기 행방이 묘연하답니다.”
그의 대답에 황 반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여기도 그렇다고?”
“뭐요? 영희 아빠에게도 무슨 일이 생겼어요?”
인협이 놀란 눈을 하고 물었지만, 황 반장 혼란스러운 표정만 지을 뿐 아무 대답도 안 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