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살인

7화:아수라

by 김정걸


다음 날 대한 은행 소속 검은색 현금 수송차가 은행 본부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수송차에는 두 명의 무장 보안요원이 탑승했다. 각진 얼굴을 한 유상수는 운전을 맡았고 갸름한 얼굴의 소문식은 잔뜩 긴장한 시선으로 전방을 경계하고 있다. 허리에 찬 권총을 줄곧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소문식은 운전에 집중하던 유상수에게 긴장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매일 하는 일인데 오늘은 왜 이렇게 떨리냐?”

“겁쟁이, 이제 저 블록만 돌면 우리 임무도 끝이야. 일 끝내고 맥주나 한 잔 하자. 그러니까 조그만 참아.”

유상수가 소문식에게 눈짓하며 웃자, 그도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 슬쩍 따라 웃었다.

“쨍그랑,”

그때 전방 유리에 뭔가 강력한 것이 충돌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악!”

동시에 운전하던 유상수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옆으로 푹 쓰러졌다. 그의 가슴팍에 난데없는 긴 화살이 하나 박혀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이런,”

뜻밖의 돌발 상황에 깜짝 놀란 소문식은 서둘러 권총을 뽑아 화살이 날아온 전방을 향해 무작정 겨눴다. 그러나 중심을 잃은 현금 수송차는 비틀거리더니 도로의 가로등을 들이박고 말았다. 그 바람에 그도 사정없이 앞으로 엎어졌다.

그 와중에도 소문식은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그는 찌그러진 차 문을 간신히 열고 겨우 빠져나왔다. 바로 그 순간 그 앞에 하늘에서 난데없는 괴한이 날아와 쿵! 하고 내려섰다.

“...!”

괴한의 온몸은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쓴 듯 붉었다. 괴한의 얼굴은 놀랍게도 세 개였는데 모두 무서운 도깨비의 형상이었다. 그리고 팔은 여섯 개였다. 첫 번째 팔과 여섯 번째의 팔이 쇠로 만든 커다란 활에 화살을 재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팔은 각각 긴 장검을 쥐고 흔들어 댔다.

“저, 저건?”

질겁한 소문식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괴한이 가소롭다는 그에게 대꾸했다.

‘나는 아수라(阿修羅)다! 하하,“

아수라는 오싹하게 웃더니 곧바로 소문식의 목을 향해 장검을 가차 없이 내려쳤다. 순식간에 소문식의 목은 허망하게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소문식이 통나무처럼 쓰러지자, 아수라는 즉시 다른 손으로 현금 수송차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그 순간 수송차의 옆구리가 종이짝처럼 찢어졌다. 아수라는 그 찢어진 틈을 여러 팔로 붙잡고 종이 찢듯이 힘껏 찢어버렸다. 현금 수송차의 측면이 완전히 찢겨나가자, 현금을 담은 수십 개의 행랑이 가득 드러났다.

아수라는 허리춤에 활을 쑤셔 넣더니 여섯 개의 팔로 현금 행랑을 욕심 사납게 모두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도로를 날 듯이 비약하면서 어디론가 도주하였다.


대낮에 현금 수송차가 강탈을 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오자, 관할구역인 수성 경찰서에서는 난리가 났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CCTV를 통해 정체불명의 괴물이 마지막으로 사라진 곳이 얼마 전에 해골 인간이 출현했던 곳으로 파악했다. 수사 보고를 받은 경찰 수뇌부는 황금산 반장에게 수사에 합류하라고 긴급명령을 내렸다.

”또 저곳이야? 어째 좀 뜸하다고 했지. 쯧,”

수사에 합류한 황금산 반장은 세 개의 얼굴을 가진 괴물이 사라진 낯익은 골목을 보여주는 CCTV 화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희의 부모가 바람처럼 사라진 이후 한동안 인협의 동네는 표면상 다시 평온해졌다. 물론 두 건의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일으켰던 해골 인간도 정말 꿈속의 일처럼 여겨질 정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더러운 공기로 가득 찼던 하늘이 한차례의 소나기로 깨끗해졌고 동네 분위기도 한층 밝아졌다. 이층 집의 담장도 순결한 처녀 가슴처럼 낙서 하나 없이 깨끗했다.

덕분에 인협도 면접 결과를 전해줄 휴대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

어젯밤에는 꿈도 괜찮게 꾸어서 그의 가슴은 은근히 설렜다. 인협이 휴대폰을 꼭 쥐고 골목길을 괜히 왔다 갔다 하는데 황금산 반장이 불쑥 그 앞에 나타났다.

“이제 조용해졌는데 왜 또 오셨었어요?”

“조용하기는! 이번에는 이상하게 생긴 놈이 현금 수송차를 털었어?”

“그래요? 그런데 왜 여기로 출동한 거죠?”

“이번에도 그놈이 이곳으로 도망쳤거든.”

“정말요?”

인협의 이맛살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그러자 황 반장이 주머니에서 몽타주를 꺼내어 그의 눈앞에 내밀었다.

“그래. 혹시 이런 놈 본 적 있어?”

몽타주에 그려진 용의자는 해골 인간만큼이나 기괴했다. 거대한 체구에 도깨비 같은 얼굴이 세 개나 달려 있었고 팔은 여섯 개였다. 그 팔들은 각각 예리한 검을 쥐고 있었다.

“아니요.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놈입니다.”

인협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황 반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놈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황 반장은 인협의 집 주변을 슬쩍 훑어보고는 탐문수사를 할 생각인지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갔다.

“휴, 나도 순찰을 다시 시작해야겠군.”

면접 결과나 기다리면서 좀 쉬려고 했던 인협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순찰을 재개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순찰 전등의 건전지를 사기 위해서 마트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인협은 이층 집의 담장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영희를 발견했다. 영희는 매우 상기된 표정으로 손에 작은 분필 토막 하나를 꼭 쥐고 있었다.

“영희야, 여기서 뭐 하니?”

“우리 엄마 아빠를 되찾으려고요.”

한이 맺힌 듯한 영희의 목소리에 인협은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엄마 아빠를 찾아? 어떻게?”

“이 벽에다 ‘돌아와요. 엄마 아빠!’라고 쓰면 된대요.”

영희의 작은 손이 바로 앞의 담장을 가리켰다. 그 담장에는 엄청난 양의 낙서들이 다시 가득했다. 아침만 해도 처녀림처럼 깨끗하던 담장이 다시 낙서로 더러워진 것을 보자 인협은 공연히 화가 났다.

“너마저 여기다 낙서하면 안 되지. 집주인이 싫어하잖아?”

인협은 짐짓 정색했다.

“이건 낙서가 아니에요! 나의 소망이라고 그랬어요. ”

“소망? 누가 그러던?”

“어떤 할아버지가요.”

“할아버지?”

“네. 그분이 여기에 쓴 대로 다 이루어진다고 했어요.”

참으로 맹랑한 영희였다. 오죽 부모가 보고 싶으면 그런 이야기를 할까 싶었지만, 인협은 헛된 희망 때문에 영희가 더 큰 상처를 입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건 그 할아버지가 너를 위로해 주려고 거짓말한 거야.”

“아니에요!”

영희는 의외로 강경하게 반박했다.

“하여튼 낙서는 안 돼.”

인협은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영희 손에서 백묵을 강제로 빼냈다. 영희는 매우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인협을 쏘아보다가 그의 엄한 기세에 눌린 듯 이내 고개를 숙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그 모습이 너무 처량하게 보여서 인협은 자기가 너무 심했나 하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그때 그의 휴대폰에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며칠 전에 본 취업 면접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때라 그는 부리나케 폴더를 열고 문자 수신함을 확인했다.

“아, 이런!”

그러나 문자 메시지를 열어본 인협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비참한 낙방이었다. 너무도 화가 난 인협은 하마터면 죄 없는 휴대폰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칠 뻔했다. 가슴속에서 폭발하는 분노와 다리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극심한 좌절감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것들은 그의 심장 속에서 거대한 용암이 되어 마구 소용돌이쳤다. 그것을 내뱉지 않고서는 당장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

분노가 솟구친 그의 시선에 영희가 쓰다가 버리고 간 백묵 하나가 들어왔다.

인협은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그의 가슴에서 소용돌이치던 붉고 뜨거운 용암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했다. 방출된 용암은 순식간에 담장을 태우면서 이리저리 굵고 깊은 계곡을 담장 0위에 새겨놓았다.

“...!”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인협의 시야 속에 그가 무의식적으로 내갈긴 저주의 낙서가 가득 들어왔다.

‘조종혼 사장, 개새끼 죽어버려라!’

조종혼은 인협이 지난번 면접 볼 때 면접관으로 들어와 그에게 따스한 미소로 격려해 주던 회사 사장이었다.

그날 오후 인협에게 지난번 면접을 같이 보았던 대학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매우 흥분되어 있었다.

“야, 소식 들었냐?”

“뭐?”

“지난번에 우리가 면접 보았던 회사말이야.”

“그런데.”

“그 회사 조사장이 오늘 죽었단다,”

“뭐? 아니 왜?”

누워서 심드렁하게 전화를 받던 인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교통사고로 죽었대. 동남아시아 출장을 마치고 오늘 아침 공항에서 돌아오다 중앙분리대를 벗어난 트럭하고 정면으로 충돌했단다.”

“저런,”

비록 한때 자신을 낙방시킨 회사의 사장이라 자신도 모르게 저주의 낙서까지 했지만, 막상 불의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안된 마음이 들었다.

“....!”

그때 그의 뇌리에 영희가 중얼거렸던 말이 뜬금없이 청천벽력처럼 들려왔다.

“여기에 쓴 대로 다 이루어진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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