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살인

8화:화이트 홀(white hole)로 가는 엘리베이터

by 김정걸

설마 하던 인협은 정신없이 방문을 뛰쳐나갔다. 헐떡거리며 이 층집 담장 앞에 선 그의 눈앞에 수많은 낙서 중에서 자신이 쓴 저주의 낙서가 뚜렷하게 들어왔다.

‘조중혼, 개새끼 죽어버려라!’

그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낙서는 낙서일 뿐이야 속으로 자신을 애써 위로하면서 시선을 돌리려던 그의 몸이 휘청했다.

‘트럭에 의해서!’

그 섬뜩한 낙서는 ‘조중혼, 개새끼 죽어버려라!’라는 낙서 바로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앞의 저주를 더욱 구체화한 낙서였다. 그의 낙서대로 조 사장은 오늘 아침 트럭과 충돌해서 사망했다.

“아니야, 이건 우연이야!”

인협은 미친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저 한때 흥분해서 마구 써 갈긴 낙서대로 조사장이 트럭과 충돌해서 덜컥 죽을 수가 없었다.

정말 우연이었을까.

그러나 우연으로 치부하기에 낙서의 내용은 너무나도 구체적이었다. 온몸을 덮치는 소름에 어쩔 줄을 모르던 인협은 문득 ‘트럭에 의해서’라는 글귀가 앞에 자신이 쓴 필체하고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 그의 첫 낙서에다 ‘트럭에 의해서!’라는 문구를 몰래 추가시킨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전부 내가 쓴 것 아니지.”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된 인협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쨌든 벽에 써진 낙서대로 조사장이 트럭과 충돌해서 죽어버린 불가사의한 현실에 그는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벽에 써진 낙서대로 실현되는 무서운 일을 이미 체험한 인협은 두근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유치한 그림들과 뒤섞여 있는 벽의 나머지 낙서를 하나씩 읽어 갔다.

‘xxx는 개새끼, X새끼, 순희야, 사랑해, 술 권하는 미친 세상, 돌아온 요괴 인간 뱀! 준이는 수희랑 거시기했대, 아수라여, 장기 매매 원하시는 분은 010-9998-0000으로 연락 바람, 영희를, 절대 동성 연애자 아님. 정화조 연락처. 데려 와라! 조종혼 사장, 개새끼 죽어버려라! 트럭에 의해서, 프레타, 내게로 와!’

인협은 자신이 썼던 낙서 ‘트럭에 의해서’에 이르러서는 이미 죽어버린 조사장을 한 번 더 죽이는 것 같아서 차마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점차 커지는 죄책감 때문에 담장을 떠나려던 인협이 멈칫하더니 다시 돌아서서 ‘영희’라는 단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영희?”

의구심이 생긴 인협은 자기가 읽어보았던 담장 위의 낙서를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 결과 낙서 중 ‘아수라여!’ ‘영희를’ ‘데려와라’ 그리고 ‘트럭에 의해서’라는 글자들이 똑같은 필체임이 드러났다.

그것을 한 줄로 나열해 보니 ‘아수라여, 영희를 데려와라! 트럭에 의해서’라는 문장이 만들어졌다. 물론 ‘트럭에 의해서’라는 말은 조중혼 사장 사망에 의해서 이미 사용되었으니 빼버렸다.

“아수라여, 영희를 데려와라? 영희를 납치하라는 거야? 이런, ”

낙서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한 인협은 화들짝 놀랐다. 조중혼 사장을 죽이기 위해서 ‘트럭에 의해서’라는 글귀를 추가한 누군가가 또 영희를 납치하라고 사주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어떤 자식이 이따위 무서운 짓을 하는 거야?”

인협은 어느덧 낙서의 저주를 100% 확신하는 듯 흥분하여 소리쳤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모양이 우스운지 멈칫했다.

“아니지, 흥분하기 전에 일단 영희에게 정말 일이 생겼는지부터 확인해 보자.”

그는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고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곧장 영희의 집으로 향했다.

부리나케 영희의 집으로 달려온 인협은 거의 중환자처럼 방에 누워있던 영희 할머니로부터 영희가 아침부터 안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맙소사!” 모든 것이 사실로 실현되었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영희의 집을 빠져나온 인협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영희의 행방불명을 영희 할머니는 아직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눈치였다.

그렇다면 인협이라도 대신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경찰에 신고하면 제일 먼저 의심을 받는 사람은 자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해골 인간 때문에 의심을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에 그건 자살 행위였다.

그렇다고 마냥 모른 체할 수 없었다. 결국은 신고를 받은 경찰이 수사를 하면 자기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할 확률이 높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가 영희를 납치한 범인을 경찰보다 먼저 찾아내는 것이 더 현명한 짓이었다.

그는 우선 아수라가 어떻게 생긴 놈인지 궁금했다.

인협은 황급히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는 컴퓨터를 켰다. 그러고는 유명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창에다 ‘아수라’라는 단어를 입력시켰다. 잠시 후 아수라에 대한 많은 자료가 떠올라왔다.

‘인도 신화에서 등장하는 종족. 데바족의 숙적인 악신 혹은 반신(反神)족이다.

다양한 얼굴과 힘, 팔을 가지고 있으며 얼굴이 다양한 만큼 인격 또한 다양한 편이며 베다 신족과 비교해도 싸우는 실력이 뛰어난 편이나 융통성이 없고 용서와 회유가 안 되는 성격적 결함이 있다.

대승 불교에서는 힌두교에서 불교로 귀의한 신 혹은 귀신을 칭한다. 위의 이미지처럼 흔히 알려진 머리 셋에 팔 여섯의 요괴가 불교의 아수라이다.

대승 불교의 아수라 족은 팔부 중의 하나이며, 육도의 하나인 아수라도(阿修羅途)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혼란의 세계이다. 아수라장과도 관련이 있다.

아수라의 왕은 범천, 제석천과 싸워 정법을 망치려 하는 존재로 불린다. 출처 동시에 제석천 등처럼 불법의 수호신인 아수라들도 있다. 그보다는 전신(戰神)으로 자주 희자된다.’

아수라를 설명하는 사이트는 친절하게도 아수라의 상상도까지 덧붙여 놓았다.

거대한 체격에 도깨비처럼 무서운 형상을 한 세 개의 얼굴을 가진 아수라는 6개의 팔을 갖고 있었는데 첫 번째 손에는 화살촉을 여섯 번 손에는 활을 쥐고 있었다.

“몽타주 그대로군. 이 괴물이 영희를 잡아갔구나.”

놀라움에 혼잣말하던 인협의 시선이 불현듯 창문 너머 가로등 불빛 속에 잠든 이층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괴물을 뱉어내는 담장과 그 담장을 품고 있는 이층 집이라... 아무래도 뭔가 연관이 있어.”

인협은 왠지 이 모든 사건의 핵심에 이층 집이 버티고 있음을 조금씩 느꼈다.

“좋아, 여태까지 저 집은 한 번도 조사를 받은 적이 없어. 이참에 한번 털어보자!”

마침내 인협은 두렵기는 했지만, 수상한 이층 집을 직접 조사해 보기로 결심했다. 결단을 내리자 없던 용기도 생겨나는 듯했다. 그는 집을 나서 이층 집의 현관 위로 올라섰다.

“...!”

의외로 아치형 현관문은 쉽게 열렸다. 인협은 슬그머니 문을 열어 우선 집안의 동정을 살폈다. 캄캄한 집안에는 예상대로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방문자를 감지하는 자동 센서가 안에서 작동하는지 1층 거실에 빛이 생기면서 차츰 밝아졌다. 불빛은 매우 평온한 느낌을 주는 것이어서 인협은 두려움 없이 거실 안으로 들어섰다.

“...!”

그런데 인협이 거실 안을 살펴보면서 제일 놀란 것은 바깥 풍경이 훤히 내다보인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신나게 낙서하던 노란색의 담장은 사실은 거실에 앉아 바깥 동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끔 만든 특수 통유리였다.

그 효과로 인해 지금 인협은 집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골목길의 연장선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때마침 골목 끝에서 뒷집에 서는 철수 엄마가 나타났는데 그 여자는 자기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인협의 존재를 못 느끼는 듯 그냥 지나쳐 갔다.

(흠, 마치 마법의 유리성 같군)

마법의 성은 매우 특이했다.

천정은 2층까지 통째로 높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특별한 가구들이 없는 넓은 거실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기둥의 둘레에는 엘리베이터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그가 한 바퀴 둘러보며 세어보자, 엘리베이터는 정확히 열 개였다. 각각의 엘리베이터의 상층부에는 해독하게 힘들게끔 흘려 쓴 한자(漢字)들이 새겨져 있었고 모두 붉은 불빛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아니, 가정집에 웬 엘리베이터가 이리 많아?”

호기심에 그가 무심코 엘리베이터에 부착된 숫자를 눌러보려고 할 때였다.

“잠깐! 그것을 만지지 마시오!”

인협의 등 뒤에서 호통이 들려와 뒤돌아보니 그곳에 70대로 보이는 웬 노인이 이 험상궂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노인은 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엉거주춤 서 있는 정인협의 손을 엘리베이터로부터 매몰차게 떼어냈다. 비록 주인 허가 없이 들어왔다지만 소유천의 무례한 행동에 기분이 상한 인협은 얼굴을 찡그렸다.

“노인장은 누구십니까?”

“난 이 별장을 관리하는 소유천이요. 그런데 자네는 왜 무례하게 남의 집에 침범한 게요?”

“난 인명을 해치는 괴물들을 추적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괴물들?”

“네. 해골 인간 그리고 아수라는 괴물이요.”

단도직입적인 인협의 주장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소유천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소유천이 두 괴물들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음을 직감한 그는 소유천을 더욱 강하게 추궁했다.

“도대체 그것들은 이 집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

답변이 궁한지 소유천은 침묵을 지켰다.

“어르신은 진작부터 괴물의 정체를 알고 있었죠?”

“...”

인협의 날카로운 추궁에도 소유천은 쉽게 비밀을 털어낼 것 같지 않았다. 그것에 인협은 더 열받았다.

“혹시 어르신이 그 괴물을 조정하는 것은 아니오? 그렇다면 어르신도 살인 교사죄로 체포될 수 있어요”

“모르면 함부로 지껄이지 마!”

마침내 침묵을 깬 소유천의 음성에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응축되어 있었다.

“무고하다면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세요! 안 그러면 당장 경찰을 불러 이 집을 수색하게 할 테니까요. 아마 황금산 반장은 아주 매우 좋아하겠지.”

인협이 경찰 수색을 운운하며 협박하자 소유천은 체념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이 모든 문제는 당신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일어난 것인데 왜 엉뚱하게 이 집을 탓하는 거야?”

“좀 알아듣기 쉽게 말해 봐요”

“후, 이 별장은 평범한 집이 아니야.”

“건축 양식 하나는 매우 특이하더군요.”

“그런 것보다는 이 별장은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

“특별한 능력이요?”

“이 별장은 바로 화이트홀(white hole)로 통하는 통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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