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고통을 이겨내는 법

슈퍼 리파운더가 되는 길

내가 가는 헬스장 입구에는 붉은 큰 글씨로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


개인 사물함에도 크게 인쇄되어 있다. 운동을 하다 보면 근육을 만들기 위해 벤치 프레스나 덤벨 운동을 하는 사람을 목격한다. 그들을 관찰하면 도저히 더 이상 반복할 수 없을 때까지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계가 온 지점에서 다시 한번 힘을 짜내 들어 올리는 순간 엄청난 고통에 기압을 내지른다.


읏~~ 으쌰!


근육은 그 순간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신체적 근육은 신체적 고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산물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의 근육은 어떨까? 나는 신체적 근육을 만드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못 먹어도 고우! 인생 어차피 고다”


평소에 제가 즐겨 찾는 절이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즐겨 찾던 곳이라 항상 그곳에 계셨으면 하는 마음에 위패를 모신 곳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왜 즐겨 찾으셨냐 하면 어머니와 주지 스님과는 친분이 꽤 두터우셨기 때이다. 이혼하고 마음 둘 때 없어 찾아갔던 곳이니 친분이 두터울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다녔고, 결혼 후 두 딸아이의 이름을 스님께서 지어주셨으니 나하고의 관계도 아주 깊다.

아! ‘세기’라는 법명도 지어 주셨다. ‘너의 재주로 세상을 살아라.’라는 뜻이란다.

항상 불공을 드린 어머니는 주지 스님과 차담과 함께 고스톱을 즐겨 치셨다. 스님은 패가 좋으면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못 먹어도 고우! 인생은 어차피 고다. 그래서 난 무조건 고다.!


불교에서는 인생고해(人生苦海) 다는 말이 있다. ‘태어남도 고통이요, 늙음도 고통이요, 죽음도 고통이니 인생 고통 그 자체다’는 말이다. 영국의 시인 프랜시스 톰슨도 이런 말도 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인생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을 강변한 말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생은 고통(苦)이 맞다. 그런 점에서 “못 먹어도 고우! 인생은 어차피 고다. 그래서 난 무조건 고다.” 이 말의 담긴 뜻은

인생은 어차피 고통스러운 것이니 영생에 집착하여 온갖 고통에 빠져 있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라.

라는 스님의 말이었다. 인생 만만치 않다. 아픔과 상처도 많다. 고통은 숙명처럼 따라다닌다. 실패에 대한 고통은 더 하다. 그래서 고통을 없애기 위해 애쓴다. 헤쳐 나가는 방법도 터득해 보지만 부질없다. 고비 없이 무난하게 산 사람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행복한 삶에도 어려움과 아픔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고통은 삶의 본질이다. 해가 뜨고 지듯이 자연스러운 거다. 평생 안고 살아야 하니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택배 일을 할 때 물류창고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등산객이다. 등산로 중간에 물류 작업장이 있고, 약수터가 있어 쉬어가는 등산객이 많았다. 산을 오른 사람 중에 유독 시선이 가는 사람이 있었다. 목발을 짚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등산하니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어 한동안 환상지통에 고생한 사람이었다.


환상지통(흔히 환상통이라 해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신체에서 느끼는 통증이란다. 이 통증은 신체 중 일부를 잃게 되었을 때 없어진 신체부위에서 통증을 느끼는 이상감각이라고도 한다.)에 시달렸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의족 속에 감춰진 다리에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통증이 없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며 물었는데 그는 이렇게 답 했다.

통증이 없으니 살 것 같았지만 날이 갈수록 불안했습니다. 통증에 시달릴 때는
통을 없애기 위해 몸도 움직이고 했었는데, 아픈 것이 사라지니 오히려 무기력해졌습니다. 고통보다 힘든 건 의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의욕 없는 생활은 제게는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산을 오르게 된 건 그런 의욕을 불어넣기 위해서였습니다. 불편한 다리로 산을 오르고 나면 숨이 턱 끝까지 차서 고통스럽습니다. 그때든 생각이 ‘아! 내가 살아있구나’였습니다.


실패한 사람들은 움직임이 적다고 한다. 꼼짝하지 않고, 한자리에서 자책과 원망만 쏟아내는 사람도 있다. 술로 달래 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그럴수록 고통은 배로 늘어나기도 한다.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움직여야 한다. 나는 실패한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


‘정적파’와 ‘동적파’다. 동적 파는 실패의 고통을 정면 대결을 통해 해결할 방법을 찾지만, 정적 파는 실패의 고통을 세상과 벽을 쌓고 스스로 고립을 택하는 특징이 있다.


나 역시 실패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은 열여덟 시간 이상 강도 높은 노동이었다. 물론 장시간의 노동은 나의 육체를 망가트렸지만, 고통은 줄어들었다.


심리학자인 조던 피터슨 말이다.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는 일을 뭐라도 해라!”


고통을 줄이는 데는 이만한 처방은 없다. 실패의 고통의 크기를 줄이려면 움직이어야 한다. 고통을 어떻게 마주 하느냐에 따라 실패를 잘 견뎌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실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자리에선 항상 첫마디는 이렇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실패의 고통이 절반은 줄어들었을 겁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실패를 정적파가 되어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동적파로 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슈퍼 리파운더는 모두 동적 파다. 그래서 난 말한다.


실패한 이들이여! 움직여라! 동적파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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