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밤이에요
2015년 4월 말, 나고야에 갔다. 날씨가 너무 좋고 걱정과 달리 습도도 보통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라 잠은 많이 못 잤지만 기분은 좋았다.
도착해서 바로 히츠마부시(ひつまぶし: 3가지 방법으로 먹는 장어덮밥)로 유명한 이치비키(イチビキ)에 들렸다. 줄이 길어 1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맛있게 먹었다. 소문대로 나고야의 음식 간이 꽤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고야의 모드 학원 Spiral Towers는 멋있었다.
고급 스시 전문점인 스시노요시노(寿しの吉乃) 예약 실패. 노렌(暖簾: 가게 입구에 걸어 영업 중임을 나타내는 천 혹은 발)도 안 걸린 가게 문을 확 열고 들어가는 무례를 범했으나 셰프는 친절하게 이 날 저녁은 물론이고 다음 날도 예약이 꽉 찼다고 설명해 주었다. 출발 전에 한국에서 전화를 예약을 해 둘 걸. 후회해도 늦었다.
그런데... 이것은 절망의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으로 나고야성(名古屋城)을 구경했다. 내부가 금색으로 빛나는 혼마루고텐(本丸御殿)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곳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아들인 히데타다(徳川秀忠) 등이 기거했다 한다.
이동 중 우연히 만난 멋진 고양이들. 옆에 있던 캣맘과 이것저것 대화도 나눴다. 키우는 고양이가 열 마리라던 캣맘은 준비해 온 사료를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말투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길냥이를 강에 던지는 나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고양이들과 헤어진 후 너무 힘들어 호텔로 돌아가 살짝 쉬었다. 아침 8시 김포 출발 비행기에 맞춘 일정은 여러 모로 쉽지 않았다.
눈을 떠 보니 밤 8시가 넘었다. 망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서둘러 나섰다.
도테야키로 유명한 시마쇼(島正)에 갔더니 자리가 없댄다. 게다가 곧 문을 닫는다니 기다릴 수도 없었다.
이곳은 예약이 있는지 혼자 왔다고 하니 자리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이 날 세 번째의 실패. 짜증이 몰려온다.
간신히 찾은 술집 고미토리(伍味酉). 여기서도 20분을 기다려 자리를 얻었는데 외국인이라 그런지 카운터석이 아니라 완전 혼자 않는, 난생 처음 보는 위치의 1인용 테이블에 앉으라고 했다. 그래도 테바사키(手羽先: 닭 날개 구이)와 도테미소 쿠시카츠(どて味噌 串かつ: 나고야 특유의 진한 일본 된장 소스를 묻힌 돼지고기 튀김 꼬치)는 맛이 좋았다.
배를 채웠으니 바에 가고 싶어졌다.
나고야의 번화가라는 사카에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안 보인다. 그런데 막상 가게에 들어가면 자리가 없다. 후쿠오카에서 타카하시상과의 인연을 만들었듯이 나고야에서도 친구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아 보였다. 일단 가게에서 자리를 확보해야 누구랑 얘기를 하든 말든 하지.
Bar Barns. 타베로그 평가가 좋아 가 보았으나 역시 자리가 없다고 한다. 정식 복장을 갖춘 바텐더에게 오늘 가게마다 만석인 곳들이 많다고 했더니 정중히 설명하길 의사들의 학회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한국에서 온 내가 나고야에서 개최되는 학회 일정을 어찌 미리 알 수가 있겠나. 결국 네 번째의 실패. 짜증이 포기로 변해갔다.
마지막으로 Yoshino Bar에 갔다. 다행히 빈 자리는 많았으나 손님이 적고 정통 바라 그런지 분위기가 무겁다. 생글생글 소년 미소를 가진 젊은 바텐더의 추천으로 얼음 없는 하이볼을 마셨다. 뒤를 이은 하몽도 괜찮고 Old Fashioned도 마실 만했으나 도중 내가 한국인임을 눈치챘는지 바텐더의 말수가 적어졌다.
합리적인 가격에 술을 마실 수 있는 클래식 바를 찾아냈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기로 하고 마지막 잔을 비웠다.
터덜터덜 호텔로 돌아오는 길, 두 마리의 길냥이들을 만났다.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가긴 하는데 좀 거리를 두고 뭐 줄 게 없나 지켜보는 눈치.
미안, 챙겨 온 사료를 호텔에 두고 나왔어.
고양이들의 기운 빠진 표정이 내 기분과 닮아있다.
다음 이야기: 나고야의 유쾌한 아저씨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