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ince Aug 02. 2015

나고야의 유쾌한 아저씨들 (2)

서서 먹고 마시는 왁자지껄 한 밤

이전 이야기: 나고야의 유쾌한 아저씨들 (1)



낮 - 시작


나고야에서의 두 번째 날. 늦잠을 자서 거의 11시쯤 호텔에서 나왔다. 오늘도 날씨가 매우 좋다. 생각해 보니 여행지에서 이처럼 계속 쨍한 날씨를 경험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고야의 명물인 세카이노야마짱(世界の山ちゃん)이 보인다. 일본 전역에 점포를 보유하고 있는 테바사키 전문 이자카야인데 간장 소스와 후추를 뿌린 테바사키(手羽先: 닭 날개 튀김)가 유명하다. 이 요리는 첫째 날 고미토리에서 먹어봤으니 아쉽지만 패스.



걷다가 만난 시카라와 공원(白川公園). 가만히 보면 일본에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참 많다.



뭔가 사진이 영...

뭔가 대칭이 되는 건물이나 물체가 있으면 사진을 찍곤 하는데 대개 위의 사진처럼 결과물이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전히 사진은 어렵다.



나고야에는 유명한 먹거리가 많은데,  그중 하나인 팥 토스트(あんトースト)를 맛보기 위해 커피 모카(珈琲の店 モカ)에 들렸다. 절묘하게 구운 식빵 사이에 팥소가 왕창 들어가 있는 음식팥 토스트. 예상대로 많이 달았지만 오늘도 많이 움직여야 하니 당 보충에 제격이다. 오른쪽 음료는 믹스드 쥬스인데 다른 과일보다 바나나 맛이 강했다.


이 가게에서는 터줏대감 분위기의 노인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왜 그랬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카메라의 셔터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내 위치 선정이 별로였던 걸까. 다행히 그는 담배를 좀 피우더니 신문에 집중했다.



식사를 마치고 오스칸논(大須観音)을 구경했다. 이 절은 팥 토스트를 먹었던 커피숍 모카가 있는 상점가 바로 옆에 있다. 이곳에는 비둘기가 참 많은데, 비둘기들이 모이를 좇아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살짝 무서웠다. 그런데 사람들은 왠지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아츠타 진구(熱田神宮)에 가기 위해 지하철에 타기로 했다. 이후에도 지하철을 계속 탈  듯하여 토/일요일, 공휴일, 매월 8일(환경 보전의 날)일 경우 하루 동안 시내 지하철과 버스를 마음껏 탈 수 있는 도니치 에코 티켓(ドニチエコ きっぷ)을 구입했다.


그런데 지금도 후회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오른쪽 사진의 이츠닷테 네코덴(いつだって猫展: 언제든 고양이 전시회)에 가지 않은 것. 일본에서는 지금도 그렇지만 에도시대에도 인기가 많았던 고양이를 소재로 한 다양한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였는데 왜 가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다. 도니치 에코 티켓이 있으면 전시회 입장료 할인도 되는데. 아, 아쉽다.




여유 있게 돌아본 아츠타 진구에는 멋진 목조 건물과 술이 들어있는 나무 통(樽: 타루)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보물관에는 엄청나게 큰 일본도가 있었다. 아츠타 진구는 일본의 3대 신궁(神宮) 중 하나라 하는데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미야 키시멘. 맛있다.

미야 키시멘(宮きしめん). 칼국수 면을 닮은 널찍하고 평평한 면과 가츠오부시가 제대로 우러난 국물은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었다. 보통 식사 시간에 맞춰 관광지에 오면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메뉴들과 달라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을 가면 대표적인 관광지를 다 돌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나고야 테레비 탑에도 올라가 보기로 했다. 이럴 때면 "아 거기? 나 평생 안 가도 돼"하고 그냥 넘길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아무래도 나고야에서의 3박 일정을 하루 줄인 탓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여기저기 다 보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테레비 탑에 는 길에 히사야오도오리 공원(久屋大通公園)을 거쳤는데 중간중간 미국이나 멕시코 등지에서 기증한 독수리상이나 조각 등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종종 맥주 축제나 춤 축제 등 각종 이벤트가 개최된다고 한다.



나고야 테레비 탑은 생각보다 높았다. 여기서도 도니치 에코 티켓을 써서 할인을 받았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눈에 들어오는 화창한 날씨의 나고야 조망도 멋졌지만 내 눈길을 끈 것은 한편에 있던 수많은 금속판들이었다. 이 타워의 4층에는 결혼식이나 파티 등을 열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금속판은 그곳에서 결혼한 커플들이 독특한 디자인과 글귀로 자신들만의 기분을 표현하여 남긴 흔적이다. 별 의미 없는 자물쇠 걸기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결국 테레비 탑 근처에 있는 오아시스21까지 구경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낮술이나 마실 걸 왜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보시다시피 날씨는 최고였다.





나고야에서의 마지막 저녁이라 생각하니 여러 종류의 음식을 먹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한 마음에 저녁 6시가 되기 전에 하치요쿠로규(八千代黒牛)라는 흑우(黒牛) 고기를 취급한다는 시이나보꾸죠우(椎名牧場)에 들어갔다.




이곳은 소고기를 부위 별로 한 장 단위씩 판매하는, 서서 먹는 식당이다. 소의 부위는 우리나라 말로도 잘 모르는데 일본어로 적혀 있으니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명칭만 다른 것이 아니라 부위의 위치가 1:1로 매치가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5가지 부위가 함께 나오는 세트와 함께 소 막창(ギアラ: 기아라)을 함께 주문해서 먹었다. 공부를 좀 하고 다시 가 봤으면 좋겠다.




밤 - 반전(反轉)





두 번째 가게로는 다이진 혼텐(大甚 本店)을 골랐다. 후시미역(伏見駅) 바로 옆에 있는 다이진은 10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고야의 대표적인 대중 주점이다. 이 가게는 독특한 운영 방침을 가지고 있다. 일단 널찍한 테이블에서 타인들과 동석해야 하고 주방 옆에 있는 안주 코너에서 마음에 드는 요리를 골라 자기 자리로 가져와 먹으면 된다. 술은 별도 주문이 필요하다.




시간이 갈수록 인기 있는 안주가 사라지기 때문에 주방에서 새 요리가 등장하면 여러 명이 동시에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눈치 작전이 벌어지곤 했다. 안주 코너에 마음에 드는 안주가 없어 슬쩍 보니 주방 쪽에 사시미가 있어 한 접시 가져와 먹었다.


이곳에서는 앞에 앉은 젊은 부부가 내 카메라를 보고 말을 걸어 줘서 한참 얘기를 했다. 대화 도중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은 이웃이니 더 이상 다투거나 사이가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부가 떠난 뒤 자리를 채운 것은 중년의 도쿄 아저씨였는데, 홀로 술을 마시는 모습이 외로워 보여 이번에는 내가 말을 붙였다. 그는 부모님을 나고야의 요양 시설에 모신 뒤 혼자 여행을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살짝 어색해하는 모습이 왠지 도쿄 사람 답다고 생각했다.


주판으로 계산을 해 주신다.


적당히 시간이 흐른 뒤 배도 부르고 술이 올라와 다른 가게에 가 보고  싶어졌다. 도쿄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주 한 잔, 아츠캉(熱燗: 도꾸리 병에 든 따뜻한 니혼슈) 하나, 그리고 안주를 세 가지 먹었고 3,000엔 정도가 나왔다. 연세가 지긋하신 사장님이 주판을 들고 와서 계산을 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카랑카랑한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끝으로 다이고쿠(大黒)라는 타치노미야(立ち飲み屋)에 갔다. 타치노미야란 서서 술을 먹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지만 일본의 경우 공간 활용도와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식당이나 술집에서 종종 채택하는 방식이다.


박카스 비슷한 음료가 들어간 하이볼.


이 가게는 하이볼, 야끼도리 등 가볍게 한 잔 하고 갈 수 있는 꽤 저렴한 주류와 안주를 갖추고 있는데, 술과 먹거리를 주문하고 다행히 카운터에 빈 곳이 있어 자리를 잡았다. 카메라를 카운터에 내려놓자마자 옆의 남자가 말을 걸어 왔다.

"좋은 카메라네요."
"카메라는 괜찮은데 제 실력이..."
"저는 예전에 카메라맨이었어요."
"오오 그러세요? 그럼 사진을 잘 찍으시겠네요."

야끼도리. 무슨 메뉴였는지는 기억이...


이렇게 시작된 대화가 거의 1시간은 이어졌던 것 같다. 그 남자는 자신이 나고야에서 좀 떨어진 미카와(三河)에서 왔고 이 술집에서 오후 3시부터 마시는 중인데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사람들이 좋아 종종 이곳에 들린다고 했다. 지금은 유명한 일본 자동차 회사의 하청회사 밑에 있는 하청회사에서 식당을 관리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데, 위생 관련 규칙 때문에 외국에 가기가 어려워서 해외에 자주 나가는 사람이 부럽다고 했다.


도중 잠깐 노동 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이 가게의 점원들이 힘들어 보인다고 하니 그는 아마 일정 시간 근무 후에는 휴식을 해야 하는데 손님들이 많아 쉬지 못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어디든 아르바이트는 쉽지 않은가보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양복을 입은 젊은 청년이 지나가면서 다른 손님들과 한 명씩 악수를 하는 모습을 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청년은 오늘이 자기 생일이라면서 축하해달라고 했다. 나도 덩달아 악수를 나누며 축하해 줬다. 이쯤 되면 느끼셨겠지만 이곳에서는 막 그냥 다 그냥 서로 친구인 분위기였다. 누구나 다 밝게, 행복하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뭐 이런 술집이 다 있어? 전부 서로 아는 사람들인가??


이렇게 생각하다가 내 옆에 있던 식당 매니저에게 친구들과 온 것이냐고 물어봤다. 아니랜다. 몇 명씩 그룹으로, 아니면 혼자 온 사람들이고 다들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그냥 함께 술을 먹으며 친해지는 중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나고야에서의 첫째 날에 경험한 좌절과 외로움이 한 방에 날아갔다. 이야, 나고야는 괜찮은 곳이구나.

안주와 술이 모두 매우 저렴했다.


미카와 출신의 남자가 자리를 뜬 후 오른쪽을 보니 가냘픈 중년 여성과 목소리가 아주 큰 남자, 그리고 보통 성량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 두 남자는 회사의 동료인  듯했다. 갑자기 성량 좋은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어??"
"네."

그는 후쿠오카에서 나와 처음 만났을 때의 타카하시상처럼 씨익 웃으며 나에게 간을 살짝 굽고 참기름과 소금을 뿌린 야끼도리를 하나 줬다. 이 사람이 이토상. 우리는 엄청 떠들었다. 이토상 옆에 있던 얌전한 미조구치상도 합세했다. 이토상은 목소리가 너무 커서 점원에게 조용히 해 달라는 주의를 받기도 했다.

하이볼의 경우 자꾸 마시면 할인까지 해 준다.


내 바로 옆에 있던 중년 여성도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갑자기 관심을 보였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녀는 EXO와 빅뱅, 동방신기, JYJ 등의 한국 남성 그룹들을 매우 좋아해서 종종 콘서트나 쇼를 보러 간다고 했다. 나는 그런 아티스트들에 대해 잘 몰라 얘기해 줄 정보가 없어 좀 미안했지만(사실 그녀가 나보다 훨씬 더 잘 알 것이다) 한류 스타들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여성은 도중에 한 번 가게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는데 이토상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랬는지, 아니면 나와 한류 스타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서 돌아왔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콜라가 들어간 하이볼.

중간에 한 번 2층에 있는 화장실에 들렸는데 갑자기 10명 정도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어 깜짝 놀랐다.  그중에 한 명이 마치 점원인 듯한 분위기로 안내해 주길래 점원이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2층에는 테이블이 몇 개 있었는데 거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서로 고등학교 동창들이랜다. 여기서도 살짝 얘길 해 봤는데 1층과 마찬가지로 분위기가 좋았다. 따뜻했다.

맨 오른쪽에 있는 아저씨가 이토상. 카운터에 앉아 있던 여성은 점원을 붙잡고 집에 데려가고 싶다고 귀엽게 떼를 썼다.


그렇게 두 시간 넘게 신나게 떠들던 나, 이토상, 미조구치상은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인 12시가 되어 밖으로 나왔다.  그때 알게 되었는데 내가 가려던 가게는 사실 다이고쿠의 왼쪽에 있던 우오츠바키(魚椿)였다. 아마 내가 처음 왔을 때 우오츠바키에 자리가 없어서 별 생각 없이 옆 가게에 들어간 듯한데, 그 덕에 매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셈이다.


참고로 이 가게에서 나는 3시간 동안 2,000엔을 썼다. 그에 비해 이토상은 무려 10,000엔 이상을 사용했다. 이토상과 미조구치상이 언제 이 가게에 왔는지 모르고 두 명이 함께 마신 가격이라 해도 술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타치노미야에서 이 정도의 금액은 나오기가 쉽지 않다. 이토상... 여러 모로 대단한 사람이다.


원래 가려고 했던 우오츠바키. 가운데 있는 것이 점장이다.


이토상의 기분 좋은 샤우팅은 가게 밖에 나와서도 이어졌다. 점원을 붙잡고 왜 가게를 지금 닫느냐, 손님들이 있으니 조금만 더 영업을 하자는 등의 얘기를 하며 계속 버티다가 결국 원래 가려던 옆 가게, 우오츠바키의 점장을 붙잡고 비슷한 설득을 계속했다. 그 점장은 짜증 한 번 내는 일 없이 웃는 얼굴로 다음에 잘 모시겠다고 했다. 내가 개그맨과 탤런트 등이 나고야의 술집을 소개하는 일본 TV 프로그램(へべれけ: 헤베레케)에 이 가게가 나온 것을 봤다고 하니 그런 적이 있었다고 확인도 해 줬다.


그런데 우오츠바키에 있던 손님들의 구성이 좀 특이했다. 일단 밖에 있어 눈에 잘 보이는 테이블을 보니 여자와 남자의 성비가 반반인데 옷은 모두 여성복이었다. 그 일행 중에 오네에(オネエ: 남자이지만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혹은 이미 수술 등을 마친 사람)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중에 유재석을 닮은 한 명은 이토상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문을 닫고 있는 다이고쿠.


가게 앞에서 30분 정도 대화를 나눈 후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악수를 했다. 그렇게 나고야의 흥겨운 밤은 끝이 났다. 앞서 말했지만 나고야에서의 3일 숙박 일정을 이틀로 바꿨는데 이토상 등과 얘기하며 지낸 시간이 너무 재미있어서 일정을 하루만 연장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일본에는 이렇게 다양한 가게가 들어선 좁은 골목이 많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술집이 잔뜩 모여있는 요꼬쵸(横丁: 골목)를 발견했다. 잠깐 들려 볼까 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 단념했다.


그렇게 나고야에서의 밤은 끝이 났다.


내일은 신칸센을 타고 후쿠오카에 간다. 그곳에 가면 반가운 얼굴들이 있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나고야의 유쾌한 아저씨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