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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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하시상과 만난 다음 날부터 나는 쿠마모토(熊本), 나가사키(長崎) 등 큐슈(九州) 각지를 홀로 여행하며 어디를 가서 무얼 보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타카하시상에게 간단히 보고(?)했다. 타카하시상은 현지인이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음식점 등 각종 정보를 알려줬다. 홀홀단신 여행 중인 나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며칠 후 저녁, 우리는 후쿠오카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타카하시상은 약속대로 부부동반으로 나왔고 우린 번화가인 텐진(天神)의 야끼도리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술과 안주를 즐겼다. 파리에서 만난 도쿄 청년 O군 이야기도 나왔는데 타카하시상은 아마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연락이 끊긴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나도 돌아보면 여행 중 우연히 만나 연락을 지속하는 사람은 타카하시상이 유일하니...
그때 나눈 대화의 주제가 꽤 다양해서 하나하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타카하시상의 와이프분이 나보다 우리나라 드라마, 특히 대장금, 이산 등의 대하/역사 드라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어 놀랐다. 생각해 보니 대체로 30대 이상의 일본 여성 중에 한류 드라마나 한류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고 드라마의 촬영지나 콘서트에 직접 가 본 이들도 있였다. 게다가 보트 레이싱 매니아인 타카하시상은 미사리에 있는 조정경기장에서 매주 수요일에만 경기가 열린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지금 확인해 보니 수요일 외에 목요일에도 경기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어떻게 그들보다 일본 TV 프로그램이나 개그맨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냐며 신기해 했다. 이렇게 양국의 문화 교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타카하시상이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같이 온천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온천. 으음. 온천?! 생각해 보니 성인이 된 후에는 가족이나 친척, 아주 친한 친구 외엔 함께 목욕탕에 가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잘은 모르나 뭔가 위험(?)할 수도 있다며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약속한 날이 되었고 타카하시상은 와이프와 함께 차를 몰고 왔다. 우리는 온천, 삿뽀로 맥주 공장, 히타 야끼소바 등으로 유명한 히타(日田)로 이동해서 마메다마치(豆田町) 상점가를 구경한 후 소우하치(草八)라는 식당에서 소바 세트를 먹었다. 그리고 대망의 온천에도 갔다.
그 온천은 인당 500엔을 내고 들어가는 노천탕 위주의 코토히라온센(琴ひら温泉)이었는데 차가 없이는 가기 힘든 위치에 있어 외국인이 찾아오기가 정말 쉽지 않은 곳이었다. 노천탕은 계곡 혹은 강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고 아주 멀리 있는 건물이나 다리가 보일 정도로 은근히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노천탕에 가 본 적이 있긴 한데, 여러 가지 면에서 이날 갔던 온천만큼 생생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겨울(큐슈는 위도가 제주도와 비슷하거나 더 남쪽이라 꽤 따뜻하다)이었지만 30분 정도 몸을 담그니 땀이 주르륵 흘렀다. 타카하시상에게 식사 후에 좀 있다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일반적인지 물어보니 보통 저녁에는 목욕 후 식사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반대로 할 경우도 있다고 했다. (좀 알아보니 목욕은 식사 전에 하는 것이 위장에 부담을 줄여준다고 한다.)
타카하시상은 온천욕을 끝내고 나를 후쿠오카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다. 우리나라에 돌아온 후 나는 커다란 상자에 한국 김을 포함해서 타카하시상 부부가 좋아할 만한 여러 가지 선물을 잔뜩 넣어 소포로 보냈다. 나는 그 뒤로도 3번 정도 후쿠오카에 갔고 매번 타카하시상과 만났다. 특히 제작년 겨울에는 일 때문에 바쁘다면서도 혼자 간 나를 위해 5일 연속 시간을 내 주셔서 눈물나게 고마웠다.
사실 타카하시상은 큐슈 출신의 남자라 그런지 말수가 적은 편이다. 우리나라에 부산 싸나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에서는 큐슈 남자를 큐슈단지라 부르는데, 큐슈단지라 하면 대체로 남자답고 의리/인정이 있으며 술을 좋아하는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우리 둘은 취미나 좋아하는 분야가 별로 겹치지 않지만 다행히도 둘 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좋아해서 만나면 보통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지인의 소개가 없으면 입장이 불가한 정통 바 등에 가서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타카하시상을 통해 알게 된 일본인 지인들이 몇 명 더 생겼다.
사실 지금도 난 2012년 12월의 어느 날, 후쿠오카의 포장마차에서 술을 먹던 3명 중 한 명이 왜 나에게 뜬금없이 질문을 했는지, 그리고 그 옆에 있던 타카하시상이 왜 나를 마음에 들어 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한국인이 혼자 후쿠오카의 포장마차(관광객이 자주 가는 곳은 아닌 듯 하다)에 앉아 있다는 게 신기하게 보였을 수도 있고, 와이프분이 한국을 좋아하니 알아 두면 뭔가 좋지 않을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막상 둘이 만나면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는데, 보통 타카하시상은 고맙게도 나와 얘기가 통할 만한 지인을 한두 명 데리고 나오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인의 삶과 생각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어 좋다. 이 역시 나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반갑고 좋은 인연이 생겼으니 앞으로도 계속 맛있는 음식과 술을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고마운 타카하시상을 한국에 초대하고 싶어서 3년 째 꼬시고 있지만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어서 오시기가 쉽지 않은 듯 하다. 어쨌든 한국에서 만날 기회가 생기면 그간 확인해 둔 여러 맛있는 음식점들을 도는 고급진 개인 투어를 제공할 계획이다. 냠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