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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몰리션'

2016년 作

by NoKi


4년 전에 코로나 시작할 때 이 영화를 처음 보았다. 그 당시에는 영화 제목처럼 Demolish(헐다, 파괴하다)라고 얘기하여서 남자가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허무는 과정을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면서 이 남자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줄거리

데이비스는 아내와 줄리아와 같이 이동 중에 차 사고를 당하여 줄리아가 사망한다. 그러던 중 데이비스는 병원에서 자판기에서 초콜릿을 먹으려고 했으나, 기계오류로 인해 초콜릿이 나오지 않는다. 고객서비스센터 번호를 확인한 후 무작정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편지에 처음에는 자신이 겪은 사소한 이야기를 쓰고 이후에는 자신의 깊은 얘기를 뱉어내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서비스센터의 '카렌'이라는 직원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그의 편지를 읽었고 감동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데이비스는 자신의 이야기에 솔직하게 뱉어내게 될 줄 알고 카렌은 데이비스에게 영향을 받아 솔직해지는 법을 배워간다.



원숭이의 털갈이

영화 종종 원숭이들이 서로에게 털을 고르는 것을 보는 컷이 있다. 원숭이는 서로에게 호감이 있을 때 털갈이를 해준다고 한다. 털에 붙은 소금결정체, 먼지 등을 골라주면서 서로 교감한다. 즉, Communication의 과정이다. 정신과 심리적인 교감이며 서로 믿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신뢰를 얻기 위한 애정표현인 것이다.


"I hate that word. Monkey's groom"
(전 그 단어가 싫어요, 원숭이 털갈이)


데이비스는 교감 등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또한 영화 초반이 그는 주위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아니다. 무신경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 원숭이 털갈이 영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침대 뒤의 거울에 반사되어서 나타난다.

이후 영화가 진행이 되면서 데이비스가 솔직해지고 자신에 대한 정의가 확립되어 가면서 털갈이 영상이 작았다가 마지막에는 클로즈업이 되면서 데이비스가 결국은 교감하고 주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줄 아는 상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내의 죽음 직후 침대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장면


분해

아내의 사망 후 데이비스는 세상에 평소에 인식하지 못한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평소라면 무시했을 화장실 문의 소음, 냉장고의 물 새는 소리 등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순간을 인식하게 된다. 인식한 그것이 거슬리기 시작하면서 장인이 했던 조언이 기억이 나면서 분해하기 시작한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해



분해에 집착한다. 분해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감정상태를 정확하게 알아내고자 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그렇게 분해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이상하게 여기던 느낌의 원인을 찾는다.


문에서 끼이이익 소리가 나는 것을 인식하는 장면
화장실 문을 분해
데이비스의 사무실 컴퓨터와 모니터를 분해
냉장고에 물이 새는 것을 참지 못하고 분해
아내가 주문한 커피머신을 분해
장모님 화장실 전구를 분해
장인어른의 괘종시계를 분해하고 싶어 하는 장면
크리스와 함께 집을 분해하기 시작하는 장면


아내가 죽은 후 아내 앞으로 나오는 보험금으로 장인은 장학재단을 만들어서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데이비스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 내내 데이비스는 서류에 서명하기를 꺼려하는 데, 그 이유를 집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된다. 아내의 서랍장에서 임신을 했다는 서류와 그 사실을 숨겼던 것을 알았으며,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이다.


분해의 연속성은 데이비스가 놓쳤던 부분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살면서 관계를 맺는 과정 중에 무엇이 시발되어 마음에 거리감이 생기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이 분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단에 서명을 머뭇거리는 장면
아내의 서랍을 부수는 장면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
장모님이 사실을 얘기해 주는 장면



바다


물은 지구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원질료인 프리마 마테리아(prima materia)이다. 그중 바다는 더 깊은 무의식으로서의 물을 의미한다. 바다의 거대한 물 표면 아래에서는 무의식이 담겨 있기에, 바다라는 공간은 무의식의 가능성과 정신적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된다.


카렌이 대마를 구하러 갔다가 옆에 바닷가에서 노는 장면


데이비스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는 장면이 나오는 데, 바다에서 카렌과 어린아이처럼 놀고 물어본다.

You miss her(보고 싶어요)?


영화에서 처음으로 데이비스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다. 장인은 아내가 죽었으니 우리라도 서로 의지를 해야 한다고 하고, 친부모님은 데이비스의 집에 와서 가사 일을 도와주면서 You Okay? 데이비스 또는 자신(Self)을 중심으로 물어보았지. 그가 허물어지게 된 아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않는다.


그녀의 그 질문에 처음으로 데이비스가 울게 되면서 가슴이 감각이 없어졌다고 느낀다. 사실은 감각이 없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가슴이 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마음이 너무 아프면 심장이 뜯겨 나간 것 같다고 말을 하는 데, 데이비스는 아직 완벽하게 자신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자신의 상상 속에서 매미나방이 뜯어먹었다고 표현한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아내의 환상이 거울에 비치는 장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장면


영화에서 카렌또한 자신의 아들 크리스와의 관계가 서먹해진 상태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처음으로 글로 적어서 표현하는 공간 또한 바다에서이다. 데이비스의 무의식과의 만남을 통해 솔직해지기 시작하면서 카렌또한 솔직해지는 것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해마&조개

해마는 일부일처제를 하는 해양생물이다. 그렇기에 사랑과 연민을 나타내고 죽은 선원들의 영혼을 지하로 안내한다는 속설이 있다.

조개는 치유와 구원의 상징을 갖는다. 또한 조개는 외부로부터 들어온 이물질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오랜 시간 품어 진주를 만들어내기에 인내의 상징도 가진다.


영화 마지막에는 데이비스에게 해마와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분해를 하여서 아내의 외도를 알아도 결국은 자신은 아내를 정말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세상에 없는 그녀를 분해해도 결국은 무의미하며, 결국은 데이비스가 자신의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으로 기억에 새긴다.


해마숟가락을 받는 장면


역으로 조개는 아내가 남긴 흔적에서 나온다. 집에서 샤워할 때 사용하는 비누, 초콜릿 등으로 하여 데이비스의 근처에 서성거렸다. 데이비스가 자신에게 무관심한 시절을 인내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사랑하던 데이비스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결국은 그녀가 바랬던 대로 돌아왔다. 데이비스는 그녀의 흔적에 울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녀를 기리기 되었으니 말이다.


집에서 샤워 중 보인 조개 비누
책상에 있는 조개초콜릿



오버랩(Overlap)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오버랩이 많다는 것이다.

오버랩은 회상이나, 캐릭터의 심리적 내면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데이비스가 감정적으로 격렬해지거나 또는 기폭제가 될만한 상황이 생기면 어김없이 아내가 나와서 데이비스의 감정을 건드린다.

오버랩될 때는 현재는 밝은 톤의 색감이거나 조리개 값(빛이 들어오는 양)을 높게 하여 이루어진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반대로 아내와의 기억 또는 자신의 망상이 나올 때는 색온도를 낮추거나 조리개 값을 줄여서 다운된 톤의 색감으로 영상이 나온다.


마치 햇빛이 있고 없음의 차이가 나는 영상인 것 같다.




데이비스의 과거 회상 장면


마지막에 아내에 대한 감정의 정리와 데이비스 자신이 놓쳤던 그 순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서 오버랩된 두 장면이 합쳐진 것 같이 시간은 현재지만 색감과 조리개 값은 과거순간으로 적용이 되면서 데이비스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얻었음을 표현했다.




회전목마(Merry-go-round)


내 마음속의 말들이 돌고 도는 게 꼭 마치 회전목마 같다.
회전목마 안에는 크고 작은 말들과 마차가 있지. 내 마음속도 딱 그렇다.
네가 타기만 하면 한 바퀴 빙 돌아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
끝없는 감정들과 이어지는 여러 말들이 네게 좋은 추억을 남겨줬으면 좋겠다.
'merry'는 '즐거운'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
꿈과 희망이 있는 이곳에 즐겁게 말을 타는 멋진 주인공이 되어봐.

(볼 빨간 사춘기 미니앨범 9집 음반 소개 글)


회전목마는 추억과 가장 관련 깊은 상징적인 물건이라고 본다. 어릴 적에 우리가 탔던 회전목마는 지금도 타면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과거로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또한 회전하면서 그 자연스러운 원동력과 함께 시간의 순환도 상징한다.


데이비스는 아내를 생각하는 시간과 아내와의 추억 그리고 그 시간이 흘러서 이별까지 하게 되는 시간의 흐름도 나타난다. 아내의 죽음으로 잠시 멈춘 데이비스의 시계가 마지막에는 흘려보내주면서 아내를 마음에서 놓아준다. 그리고 데이비스는 회전목마에서 내려서 이제는 멀리서 관람한다.


역으로 장인과 장모는 계속해서 회전목마에 남아있음으로써 자신의 딸을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대비되기도 한다. 장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도 1초라도 자신의 딸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딸을 사랑하고 간절히 다시 살았기를 바라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데이비스는 회전목마에서 내렸지만 장인 장모는 내리지 않고 계속 타고 있다



끝을 맺으며...


만남과 이별이 아주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만남은 어려우나 이별은 쉽다는 말이 있을 만큼 이별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해보지는 않는다. 특히 이혼도 많아짐이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누군가와 관계의 매듭이 끊어지면 인지하지 못하고 많은 상처를 입는다. 결국은 그 상처들이 곪기도 하고 겁쟁이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부분들 덕분에 더더욱 이 영화가 깊은 울림을 준다고 생각한다.


If it's rainy, You won't see me.
(비 오면, 나를 보지 못할 거야)

If it's sunny, You'll think of me.
(날씨가 화창할 때, 나를 생각해 줘)

쪽지를 보면서 데이비스는 햇빛에 눈물을 쏟고 만다.

차에 있는 아내의 쪽지를 읽는 장면
햇빛을 보고 데이비스는 오열한다.


데이비스에게는 이제 햇빛은 아내를 생각나게 하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를 회상하던 순간에는 아내에게 홀대했던 자신의 모습이기에 햇빛이 없었고, 현재는 아내로 인해 자신의 순간이 멈췄기에 햇빛이 가득했던 모습이었던 것이다.

데이비스가 진심을 다해서 그녀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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