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는 닫히지 않았다.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장마가 막 끝나가던 7월 주말.
성산항엔 습기가 잔뜩 깔려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데도 바닷내음은 유난히 진했고,
짠내에 섞인 철 비린내가 코를 시큰거리게 만들었다.
“야, 이런 날씨는 기회다. 시야 확 트일 거야.”
민수가 오리발을 들고 웃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묘하게 불편했다.
바다가 잔잔한 게 오히려 이상했다.
표면은 기름칠한 것처럼 번들거렸고,
바람도 없는데 파도마저 힘을 잃은 듯했다.
우린 일곱 명이었다.
다이빙 동호회라 매주 나오던 멤버들.
장비를 확인한 뒤 차례차례 바다로 몸을 던졌다.
물속에 잠기는 순간, 귀에서 웅... 하는 낮은 울림이 시작됐다.
처음엔 수압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호흡기를 고쳐 물어도,
깊이를 달리해도 그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어딘가 큰 공간에서 울려오는 소리 같았다.
“컨디션 좋다. 물도 맑네.”
박 실장의 목소리가 무전을 타고 들어왔다.
시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햇살이 수면을 뚫고 들어와 모래밭 위를 은빛으로 흔들었다.
우리는 모래를 따라 더 깊이 들어갔다.
그러다 민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야! 이거 뭐냐, 이쪽 봐라.”
모래밭 한가운데, 바위와는 전혀 다른 덩어리가 있었다.
표면은 시멘트, 깨진 틈마다 따개비와 해초가 엉겨 붙어 있었다.
녹슨 철근 자국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한쪽엔
사각형으로 뚫린 검은 입구가 있었다.
부유물이 안개처럼 흩날리며
안쪽을 완전히 가렸다.
“이게 뭐야... 지도엔 없었잖아.”
“물속 지형은 원래 제대로 안 찍히지.
옛날에 뭘 만들다 만 거 같은데.”
박 실장이 플래시를 켜고 말했다.
“잠깐만 보고 오자. 금방 나온다.”
나는 급히 말렸다.
“형, 라인도 안 묶었는데 그냥 들어가면 위험해.”
“괜찮아. 다섯 분 안에 나온다.”
민수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겁먹지 마라. 사진만 찍고 바로 나올게.”
네 개의 불빛이 동시에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린 입구 앞에 남아 기다렸다.
처음 1분은 아무 일 없었다.
2분이 지나자,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무전에서 잡음이 섞였다.
민수: “여기... 벽이... 치지직... 틈이 있어.”
다른 동료: “잠깐, 이거... 이상한데”
박 실장: “조용히 해봐. 무슨 소리 안 들려?”
순간, 우리 귀에도 들렸다.
쿵. 쿵.
철판을 두드리는 듯한 둔탁한 소리.
바람도, 조류도 없던 날이었다.
착각일 수가 없었다.
무전이 다시 울렸다.
민수: “야... 저기... 움직인다. ...팔 같... 아니, 더 많아”
뚝.
신호가 끊겼다.
불빛도, 목소리도 모두 사라졌다.
입구 앞은 다시 검은 침묵뿐이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무언가 스치듯 지나갔다.
길쭉하고,
사람보다 크고,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그림자.
숨이 막혔다.
산소는 충분했는데도 가슴이 답답했다.
오리발은 덜덜 떨렸다.
물 자체가 우리를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올라가자. 지금 당장.”
우린 도망치듯 수면 위로 올라왔다.
마스크를 벗자마자 모두가 동시에 외쳤다.
“애들이 안 나와! 아직 안 나왔다고!”
해경이 출동했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터널 공사 기록은 없습니다.
구조물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보았다.
모래밭 한가운데, 입처럼 벌어진 그 구멍을.
사흘 뒤, 성산 해안가.
젖은 운동화 한 짝이 떠밀려왔다.
모래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치 누가 방금 벗어둔 듯.
신발 끈은 엉켜 있었고,
끝에는 해저 잔해에서 뜯겨나온 듯한
얇은 녹슨 철사가 매듭처럼 걸려 있었다.
끈에는 녹물이 번져 붉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이후 구조대가 다시 들어갔지만,
그들 역시 귀에서 이상한 울림을 들었다고 했다.
쿵, 쿵.
그 소리가 들린 순간,
더 깊이 들어가길 포기하고 나왔다는 게 공식 보고였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물빛을 잊지 못한다.
잔잔했던 바다,
지도엔 없던 입구.
그리고 귓속을 울리던 그 소리.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다 생물이
벽 너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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