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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긴 곶자왈 오솔길

우린 둘이었지만, 물 위엔 셋이 있었다.

by 피터팬


비가 그친 건 오후 세 시쯤이었다.


장마비는 낮 내내 퍼붓다 갑자기 멎었고,

공기는 곧바로 눅눅해졌다.

숨이 막힐 정도로 푹푹 찌는 습기.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와 나는

이때다 싶어 곶자왈 숲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확 달라졌다.


짙은 풀냄새, 젖은 흙내음,

돌 틈에서 스며 나오는 축축한 냄새.

빗방울이 잎사귀 끝에서 흘러내리며

어깨와 팔목을 연신 적셨다.


“야, 대박이다. 이 냄새... 서울에선 못 맡지.”

친구는 들뜬 목소리로 셔터를 눌렀다.


나는 배낭 끈을 고쳐 매며

발밑만 바라보고 있었다.

길이 너무 미끄러워 방심할 수 없었다.


곶자왈은 숲이면서도 숲 같지 않았다.

나무와 바위, 덩굴이 얽혀 길을 막고

그 사이 좁은 오솔길이 이어졌다.


멀리서 까마귀가 울고,

발밑에선 달팽이가 바위를 기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얼마쯤 들어갔을까.

앞길이 갑자기 막혔다.


빗물이 길을 완전히 잠가

작은 연못처럼 되어 있었다.


바닥은 보이지 않았고,

물 위에는 나무와 하늘이 거울처럼 비쳤다.


“못 건너겠다. 돌아가자.”

내가 말했을 때, 친구가 팔을 잡았다.


“야... 그림자 봐.”


나는 무심코 물 위를 내려다봤다.


우리 둘의 그림자 옆에,

분명히 또 다른 사람 그림자 하나가 서 있었다.


머리에 모자를 눌러쓴 듯한 형체.

구부정하게 드러난 어깨.

흔들리는 물결 속에서도 또렷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숲길은 우리가 걸어온 대로 곧게 뻗어 있었다.

바람조차 없어 풀잎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빗방울이 뚝뚝 흘러내리는 소리뿐.


“누구... 온 거 아냐?”

친구는 낮게 속삭였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숲은 고요했다.

매미 소리, 까마귀 소리도 멈춘 듯했다.


다시 웅덩이를 보았을 때,

그림자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남은 건 우리 둘의 그림자뿐이었다.


돌아오는 길,

자꾸 등 뒤가 따가웠다.


풀잎 하나 스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지만,

보이는 건 젖은 길과 우리의 발자국뿐.


그날 밤, 숙소에서 사진을 정리하던 친구가 말했다.


“야, 이거 좀 봐.”


웅덩이 위를 찍은 사진 속.


거기엔 분명 우리 둘뿐인데,

물 위에 비친 그림자는 세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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