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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자전거 도로

그 신호는, 나보다 먼저 멈췄다.

by 피터팬


제주 애월 바닷길은 새벽 네 시가 가장 조용하다.

가로등이 띄엄띄엄 켜져 있고,

도로 끝에는 늘 바람이 밀려온다.


그날도 평소처럼 혼자 자전거를 탔다.

서울에서 내려와 혼자 산 지 반년,

습관처럼 새벽마다 달리며 머리를 비웠다.


핸드폰 GPS를 켜두고 출발했다.

길은 익숙했다.

왼쪽으로 바다가, 오른쪽으로 돌담과 얕은 밭이 이어졌다.


해안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누군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아

고개를 한 번 돌려봤다.

가로등 불빛 아래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바람 소리 사이로

‘찰칵, 찰칵’ 체인이 돌아가는 소리가 내 뒤에서 났다.

누군가 페달을 밟는 소리였다.


“누구지...?”


속도를 조금 올렸다.

뒤를 볼 때마다,

가로등 그림자 너머로

누군가 따라붙는 듯한 느낌이 스쳤다.


10분쯤 달렸을까.

갑자기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시야에 누군가의 어깨가 스쳤다.

흰 조명 아래 반짝였던 반사띠 하나.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나보다 앞서가더니

다음 가로등 아래에서 멈췄다.


나는 숨을 고르며 말을 걸려 했다.

그런데 그때,

앞의 가로등이 깜박이며 꺼졌다.


불빛이 다시 켜졌을 때,

그 사람은 없었다.

자전거 소리도, 체인 소리도,

아무것도.


그저 파도 소리만

도로 위로 기어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핸드폰 GPS 화면을 확인했다.
기록엔 두 개의 신호가 찍혀 있었다.


하나는 나,

그리고 또 하나는
내 바로 옆, 같은 속도로 달리다 그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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