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은, 아직도 누군가의 호흡으로 움직인다.
서귀포 안덕 쪽 곶자왈은
지도에 표시된 탐방로만 벗어나도 금세 어두워진다.
낮에도 축축하고,
공기엔 흙냄새와 습한 풀냄새가 섞여 있다.
걸음을 멈추면,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날 우리는 ‘미기록 숨골’을 찾으러 들어갔다.
지질 연구소에서 위성 열지도에
이상한 온도 변동 구간이 포착됐다는 연락이 왔다.
쉽게 말하면, 땅속에서 열이 이상하게 움직이는 구간이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세 시쯤이었다.
습도 90%가 넘는 공기 속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작은 구멍 하나가 있었다.
손전등을 비추면, 아래쪽으로 김이 가라앉는 게 아니라 올라왔다.
“바람이 나오는 거네. 숨골 맞아요.”
조교가 말했다.
기온계를 집어넣었다.
표면은 23도,
30cm 아래는 17도.
열이 아니라, 차가운 공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숨골이라기보다, 숨 쉬는 사람 입 같네요.”
녹음 장비를 세우고, 온도 센서를 연결했다.
데이터는 정상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이크 수치가 튀었다.
“이상하네. 잡음 들어오는데요?”
귀를 가까이 대보니,
‘후..., 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바람 같았다.
그런데 그 리듬이 너무 일정했다.
정확히 1초 들이쉬고, 2초 멈추고, 1초 내쉬는 간격.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폐 리듬이었다.
“마이크 테스트 한 번 해봐.”
“지금 꺼져 있는데요.”
나는 숨골 입구 쪽을 봤다.
흙이 아주 미세하게,
누군가 안에서 내뿜는 공기에 밀려 흔들리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녹음 파일을 확인했다.
노이즈 사이로 분명한 숨소리가 들렸다.
‘후..., 후... 후...’
들으면 들을수록,
그건 바람이 아니라 사람의 호흡이었다.
파형 분석을 돌려보니
400Hz대의 사람 발성 주파수가 일정하게 찍혔다.
그리고 소리의 위치값이 바뀌었다.
파일의 마지막,
녹음기 좌표가 잠깐 끊기더니
3년 전 실종자 마지막 신호 좌표로 돌아가 있었다.
며칠 뒤,
그 구간은 ‘지질 불안정 구역’으로 지정돼 봉인됐다.
공식 문서에서도, 연구소 데이터에서도 사라졌다.
지금은 지도에서도 그 위치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그 근처를 지나본 사람들은 다 안다.
조용한 날엔,
풀잎이 움직이지 않아도
땅속에서 규칙적인 숨소리 같은 진동이 들린다는 걸.
귀를 가까이 대면,
정말로 느껴진다.
누군가,
지금도 그 아래서 천천히 숨을 쉬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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