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멈췄는데, 물결만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7월의 제주 바다는 낮에도 음울했다.
장마가 끝났다고들 했지만, 그건 서울 얘기였다.
제주는 여전히 비를 품은 듯 눅눅했고,
파도는 잔잔한데 이상하게 물빛이 무거웠다.
나는 스쿠버 동호회 ‘마레’의 일원이었다.
그날은 서울에서 내려온 부부 한 쌍이 처음 참가한 날이었다.
남편은 영상감독이라며 방수 카메라를 가져왔고,
아내는 초보라서 물에 오래 못 있을 거라고 했다.
표선 앞바다는 수심이 완만하다.
해안에서 50미터만 나가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푸르지만,
그 밑은 모래가 아니라 부드러운 펄층이다.
발끝이 닿을 때마다 미묘한 진동이 전해지는 느낌.
그날 우리는 3m 구간에서 중성부력 연습을 했다.
시야가 탁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부부 중 아내가 자꾸 위로 떠올랐다.
남편이 옆에서 손을 잡고 다독이는 모습이 물결 사이로 보였다.
마치 위로하듯, 손바닥을 한참 붙잡은 채로.
오후 3시쯤, 비가 내렸다.
물이 차가워지자 다들 서둘러 올라왔다.
장비를 정리하던 중, 남편이 말했다.
“혹시 방수 카메라 봤어요? 제가 물속에 놔두고 온 것 같은데.”
우린 잠깐 다시 들어갔다.
그러나 시야는 이미 1m도 안 됐다.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그날은 그냥 철수했다.
이틀 뒤, 다른 회원이 수중 촬영 도중 그 카메라를 발견했다.
바닥 모래에 반쯤 박혀 있었고,
표면엔 얇은 해조류가 붙어 있었다.
렌즈에 금이 갔지만 전원은 들어왔다.
나는 호기심에 그걸 틀어봤다.
화면엔 탁한 물빛과 버블 소리,
그리고 여자의 손등이 스쳐갔다.
잠시 후 화면이 안정되고,
수심 데이터가 ‘3.2m’를 가리켰다.
그 속에서
남편이 카메라를 들고 아내를 향해 손을 흔든다.
아내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 그제야 물속으로 천천히 내려간다.
그 뒤로 화면이 약간 흔들리더니,
남편이 카메라를 돌려 자기 얼굴을 찍는다.
그는 입모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돌려준다.”
그 순간, 화면이 멈췄다.
다시 재생을 시도하면
바닷물 흐름 대신,
숨소리 같은 음이 반복되었다.
가늘고 일정한 리듬으로.
나는 곧바로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그 부부는 그날 이후 동호회에 나오지 않았다.
숙소에도, 렌터카 회사에도 기록이 없었다.
며칠 뒤, 표선 해안가에
낡은 웨딩사진 한 장이 밀려왔다.
사진 속에서 남편은 똑같이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들고 있는 건
손바닥만 한 검은 카메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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