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돌하르방 아래의 눈

그 눈은, 아직 젖어 있다.

by 피터팬


제주시 구좌읍, 오래된 마을 입구에

사람 키만 한 돌하르방이 하나 서 있다.


돌결은 거칠고, 이끼가 반쯤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눈만은 유난히 매끄럽고 반짝였다.


햇빛이 없어도,

그 눈동자엔 늘 빛이 고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릴 때부터 이상했다.

비 오는 날이면 하르방 눈이 젖은 것처럼 반짝였고,

맑은 날엔 유리처럼 빛났다.


아무도 닦지 않는데, 먼지가 쌓인 적이 없었다.


할머니들은 그걸 “물길의 눈”이라 불렀다.

“하르방이 물길을 본다.

물이 도는 걸 막으면 안 돼.”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어른들의 미신쯤으로 여겼다.


작년 여름, 장마가 한창이던 날이었다.


회관 앞 도랑이 넘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물이 빠지지 않아 원인을 찾던 중,

한 어르신이 말했다.


“이번엔 하르방 밑으로 샌 거 같아.”


나는 삽을 들고 따라갔다.

비에 젖은 흙이 무겁게 발끝에 붙었다.


돌하르방 아래쪽에 물이 새고 있었다.


손전등을 비추자,

하단 받침돌 틈으로 진흙물이 스며나오고 있었다.


노인이 낮게 중얼거렸다.

“여긴 손대면 안 되는데...”


나는 대답 대신 흙을 조금 걷어냈다.


진흙 속에서 무언가 번쩍였다.

작은 유리 구슬처럼 보였다.


손가락으로 닿는 순간,

차가운 감촉이 손끝을 때렸다.


그 밑에는,

두 개의 동그란 구멍이 나 있었다.


물은 그 구멍으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노인이 내 팔을 거칠게 잡았다.

“그만 해라. 거긴 건드리면 안 돼.”


“이거... 눈 아니에요?”


내가 묻자,

노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낮게 말했다.


“옛날에 저 하르방 만든 놈이 있었지.

그놈이 마지막에,

사람 눈으로 눈을 만들었다더라.”


그날 이후,

그 돌하르방은 조금씩 변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눈에 물이 고였고,

밤마다 차로 지나가면

헤드라이트 불빛이 그 눈에 반사되어 번쩍였다.


빛은 멈추지 않았다.

누가 지나가든,

그 눈은 늘 같은 속도로 깜빡였다.


마치,

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책에 수록될 괴담은 독자 여러분의 실제 경험,

전해들은 이야기, 혹은 오래된 전설 등

다양한 형태로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만의 괴담이 있다면 아래 주소로 보내주세요.

이메일: love1cm@hanmail.net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