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은, 아직 젖어 있다.
제주시 구좌읍, 오래된 마을 입구에
사람 키만 한 돌하르방이 하나 서 있다.
돌결은 거칠고, 이끼가 반쯤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눈만은 유난히 매끄럽고 반짝였다.
햇빛이 없어도,
그 눈동자엔 늘 빛이 고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릴 때부터 이상했다.
비 오는 날이면 하르방 눈이 젖은 것처럼 반짝였고,
맑은 날엔 유리처럼 빛났다.
아무도 닦지 않는데, 먼지가 쌓인 적이 없었다.
할머니들은 그걸 “물길의 눈”이라 불렀다.
“하르방이 물길을 본다.
물이 도는 걸 막으면 안 돼.”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어른들의 미신쯤으로 여겼다.
작년 여름, 장마가 한창이던 날이었다.
회관 앞 도랑이 넘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물이 빠지지 않아 원인을 찾던 중,
한 어르신이 말했다.
“이번엔 하르방 밑으로 샌 거 같아.”
나는 삽을 들고 따라갔다.
비에 젖은 흙이 무겁게 발끝에 붙었다.
돌하르방 아래쪽에 물이 새고 있었다.
손전등을 비추자,
하단 받침돌 틈으로 진흙물이 스며나오고 있었다.
노인이 낮게 중얼거렸다.
“여긴 손대면 안 되는데...”
나는 대답 대신 흙을 조금 걷어냈다.
진흙 속에서 무언가 번쩍였다.
작은 유리 구슬처럼 보였다.
손가락으로 닿는 순간,
차가운 감촉이 손끝을 때렸다.
그 밑에는,
두 개의 동그란 구멍이 나 있었다.
물은 그 구멍으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노인이 내 팔을 거칠게 잡았다.
“그만 해라. 거긴 건드리면 안 돼.”
“이거... 눈 아니에요?”
내가 묻자,
노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낮게 말했다.
“옛날에 저 하르방 만든 놈이 있었지.
그놈이 마지막에,
사람 눈으로 눈을 만들었다더라.”
그날 이후,
그 돌하르방은 조금씩 변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눈에 물이 고였고,
밤마다 차로 지나가면
헤드라이트 불빛이 그 눈에 반사되어 번쩍였다.
빛은 멈추지 않았다.
누가 지나가든,
그 눈은 늘 같은 속도로 깜빡였다.
마치,
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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