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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초밥 Aug 11. 2023

뉴베리 수상작,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Tae Keller, <When You Trap a Tiger>를 읽고

** 책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I can turn invisible.


2021년 Newbery 수상작인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구 또한 바로 이 첫 문장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첫 문장이 주는 느낌처럼 읽는 내내 신비로운 분위기로 독자를 압도한다.


주인공 릴리Lily는 ‘투명 인간이 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일컫어 초능력(superpower)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처럼 악당을 물리치고 누군가를 구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라고. 본인은 그저 ‘그냥 사라질 뿐’이라고.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자주 까먹는 것, 아이들이 함께 놀자고 하지 않는 것, 어느 날 같은 반 남자애가 “넌 어디서 나타났냐? 처음 보는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것 모두 자신의 ‘사라지는’ 초능력 때문이라고 여긴다.


주인공의 언니 Sam은 그런 건 신비한 능력 같은 게 아니라고, 그냥 수줍어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It’s not a real supersecret power – it’s just called being shy.


하지만 릴리는 ‘언니가 말을 못되게 하는 경향이 있지.’하고 생각하며 자신의 초능력이 때로는 매우 유용하다고 여긴다. 엄마와 언니가 투닥거리며 말싸움을 하는 순간이 오자 릴리는 마치 정말로 투명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주문을 외우듯 되뇐다. invisibleinvisibleinvisible.


엄마와 언니와 함께 할머니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릴리는 난데없이 호랑이를 본다. 언니와 엄마가 눈치채지 못한 듯 보이자 릴리는 소심하게 엄마를 부른다. 엄마는 듣지 못한다. 그래서 릴리는 생각한다.

Sometimes the problem with my invisibility is that it takes a little while to wear off. It takes a little while for people to see me and hear me and listen.
투명 인간이 되다 보면 가끔 불편한 점이 있는데, 투명 인간 상태에서 벗어나는 데 좀 오래 걸린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내 말에 ‘귀 기울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


소심한 성격으로 유년기를 보낸 내게는 주인공 릴리의 해석이, 작가의 상상력이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본인의 성격을 하나의 ‘능력’으로 묘사하는 것 자체가 그녀의 타고난 ‘능력’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위 내용은 모두 이 책의 극초반부인 첫 번째 챕터에 나오는 내용이다.


작가 Tae Keller는 외할머니가 한국인인, 1/4 한국인이다. 이 책은 어릴 적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한국 전래동화 이야기와 그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에 매료된 주인공이 할머니가 숨겨둔 이야기를 찾아내는 이야기이다. 책에서 주인공의 할머니는 ‘호랑이의 피를 물려받은 1/4 호랑이이지만 인간 세상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된’ 사람으로 묘사된다. 타국 땅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성장했을 작가의 개인적인 삶이 할머니라는 캐릭터에 판타지적으로 녹아든 것임을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호랑이를 마주하게 되고, 호랑이가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릴리는 QAG(Quiet Asian Girl)에서 벗어나 점차 스스로조차 놀랄만한 대담한 행동들을 하게 된다. 그중 하나는 할머니를 기분 나쁘게 묘사하는 친구들을 벌주기 위해 진흙을 섞은 초코푸딩을 건넨 것이었다. 일이 커지고 결국 친구들에게 사과하게 되면서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Is that going to be my reputation in school now?” I ask.
He tilts his head, thinking. “Well, yeah. But only until the next big thing.” (p. 234)     


나는 어려서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고, 성인이 되어서 청소년 문학을 읽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청소년 책에서 이렇게나 많은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또 다른 Newbery 수상작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추천해 준 북클럽의 랄라님께 감사한다.



The hero is just a regular person, until suddenly the world needs them. (p.236)
They save the world anyway, even though they’re not ready. And they get stronger, and they learn who they are as they go along. (p.237)



Even if things aren’t perfect, they can still be good.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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