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부초밥 Aug 10. 2023

옆집 살던 한국인 가족이 귀국했다.

튜터링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빈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데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졌다. 이 시간에는 항상 빈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오늘이라고 특별할 게 뭐야? 오늘은 옆집이 이사를 나간 날이다.


옆집에는 한국인 가족이 살았다. 이사 온 지 며칠 뒤, 복도에서 한국말처럼 들리던 대화 소리가 정말 한국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한두 번은 함께 커피를 마셨다. 가끔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두 살 배기 아들을 향해 어찌나 환하게 웃어주시는지 아들이 그 집으로 따라 들어가려 한 적도 있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다며 복도에서 배를 깔고 드러누워 농성을 피울 때 옆집 아저씨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르르 웃으며 냉큼 엘리베이터를 따라 타기를 몇 번이었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옆집 부부는 고맙게도 그렇게 고집부리는 아들을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타일러(?)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부부에게는 6살 난 딸이 있었다. 7살 난 사촌 누나를 한창 좋아하고 따라다니던 그 시기에 미국에 오게 되었는데, 옆집 누나를 보더니 사촌 누나를 따르듯 했다. 아이가 아파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한 어느 날에는 옆집에 코로나 자가진단키트를 빌려달라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 아파서 장 보러도 못 가시죠? 저 지금 장 보러 왔는데 혹시 필요한 거 있으시면 사다 드릴게요~’라고 메시지를 보내던 따뜻한 분이었다.


9월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7월쯤부터 짐을 싸시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시는 모습도 보았다. 따님이 쓰던 장난감과 책들 중에 더 이상 연령대에 적합하지 않은 것들은 우리 집 아들내미를 위해 물려주셨다.


“혹시 매트리스 필요하신가요? 얼마 사용하지 않은 건데 버리긴 좀 아깝고 혹시 아들 필요할까 해서 여쭤봐요~”

“어머, 주시면 감사하죠.” 시간을 조율하면서 내가 물었다. “출국이 언제세요?”

“10시쯤 출발할 것 같아요.”


사실 출국 날짜를 물은 것이었는데, 시간으로 대답이 왔다. 그래서 알았다. 출국이 임박했음을, 그리고 그게 바로 당장 내일 오전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내가 튜터링을 하고 있을 때 옆집은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몇 개월 짧은 시간 동안 몇 번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고 차를 마시고 바쁜 순간에 몇 번 도움을 주고받은 게 전부인데, 튜터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진 의외의 허전함에 놀랐다. (개별난방인 아파트지만) 그동안 느껴왔던 옆집의 온기가 사라진 것이 정말 느껴졌다.


관계를 맺기를 항상 터부시 해 온 나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렇게나 소소한 관계였지만, 참 중요한 관계였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관계는 지나고 나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 했다. 이렇게 작은 관계에서도 지나고 나서 느껴지는 소중함이 있다는 사실이, 다른 관계에서 느낄 소중함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요즘 최애 장난감, 누나가 물려준 기차놀이를 하고 있을 때 아들에게도 살짝 말해줘야겠다.

“아들아, 누나는 비행기 타고 슈웅~ 한국에 갔어.”



작가의 이전글 엄마도 아기였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