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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화 Dec 28. 2017

파스텔 톤 모자이크 도시

에콰도르, 끼또: 올드 끼또 - 2015/07/22(수)

민박집주인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형주 안경을 맞추기 위해 안경집에 들렀다. 우리나라에 비해 열 배는 비싼 안경 값에 한번 놀라고 제작에 5일이나 걸린다는 말에 두 번 놀랐다. 별수 있나, 이것도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끼또의 한국 대사관에 들러서 여권 발행신청을 하는데, 페루에서 분실한 여권을 에콰도르에서 신청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아니면 원래 태도가 그런 사람이었던지, 대사관 직원의 태도가 불쾌하리만치 사무적이고 딱딱했다. 페루에 있는 한국 대사관의 박 사무관의 친절한 태도와 비교되어 더 불쾌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비협조적인 그녀의 태도에 힘입어 여권 발행신청을 마치고 대사관을 나오니 오후 1시가 넘어 있었다. 청주에 사는 언니에게 DHL예약을 부탁해두었으니 이제 5일 정도면 새 여권이 발급되어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올 것이다.

형주 안경 맞추는 일과 대사관에 여권 신청하는 일이 중요 일정이었던 터라 마땅히 다른 일정이 없었던 우리는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숙소 근처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끼또의 올드타운을 돌아보기로 했다. 

해발 2,850 미터에 잉카문명의 잔해 위에 건설된 유럽 양식의 건축물들은 1917년 대지진에도 불구하고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어서 올드 끼또 지역의 건축물들과 거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오후에 시티투어 버스에 올라탄 우리는 산프란시스꼬 수도원과 산또 도밍고 수도원, 라 콤빠냐 성당, 예수회 대학 등 올드 끼또의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유려산 건축물들을 다 돌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대표적인 두 곳만 방문하기로 했다.

첫 번째 방문지는 바실리까 대성당이다.

잉까인들이 만들었던 태양의 신전을 허물고 그 돌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이 성당은 토속 신앙을 무너뜨리고 승리한 가톨릭의 위대함을 표현하고자 함이었을까, 올드 끼또의 어디에서도 올려다 보이는 높은 지대에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첨탑은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되었는데, 성당의 지붕 내부에 아슬아슬하게 만들어진 좁다란 통로를 통과한 후 가파른 경사로 연결된 철재 사다리로 올라야만 했다. 첨탑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코스인 나선형의 계단이 아이들에겐 위험하겠기에 아이들을 안전한 반대편에 데려다 두고 혼자 올라갔다. 날씨가 흐렸지만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끼또의 오후 시가지 모습이 눈 앞에 시원하게 펼쳐졌다. 볼리비아의 라빠스만큼 험준한 산에 위태롭게 들어선 도시는 아니었으나, 고산 지대에 위치한 도시답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지형 위에 에콰도르 특유의 파스텔톤 집들이 아기자기하고 곱게 수놓아져 있었다.

성당의 내부는 외부에서 보이는 웅장함에 비하면 다소 소박하게 느껴질 만큼 어둡고 단조로웠는데, 그런 분위기는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창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높은 위치에 난 긴 창에 그려진 가톨릭 성인들의 모습은 창문으로 비쳐 드는 햇빛에 투과되어 화려하고 선명한 빛을 어두운 성당 내부로 쏟아부었다. 그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형주는 창문 하나하나를 사진에 모두 담으려고 성당 내부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바실리까 대성당의 외관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지붕의 내부 공간에 놓여진 좁은 나무 다리를 지나 가파른 철재 다리를 오른 후 성당 외부로 연결된 가파른 나선형 철재 계단을 올라야 대성당의 첨탑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성당의 첨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성당의 시계탑과 빠네시죠 언덕, 그리고 올드 끼또의 전경


다시 시티투어 버스에 올라 버스의 마지막 방문지인 빠네시죠 언덕으로 향했다. 

바실리카 대성당에서부터 빠네시죠 언덕까지 올드타운을 가로지르는 왕복 2차선의 도로와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은  식민지 시절의 모습 그대로 재연된 세트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깨끗하고 보존상태가 좋았다. 지금의 교통량과 차량의 크기를 감당하기엔 비좁아진 도로와 그 사이사이로 이어진 좁은 골목길들을 천천히 걸으며 밥도 먹고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시티투어로 스윽 보고 지나치기엔 아까운 풍경들이다. 

빠네시죠 언덕의 정상에는 몸에 비해 작은 날개를 단 천사상이 끼또 시내를 굽어보고 있었다. 칠레 산띠아고의 산따 루시아 언덕에 서 있는 새하얗고 부드러운, 사랑스러운 소녀 모습의 성모 마리아상과는 달리, 짙은 회색빛에 타일의 느낌을 내기 위해 네모 모양의 음각을 온몸에 새긴 차가운 느낌의 이 조각상은 지구 위의 뱀을 밟고 그 머리에 쇠사슬을 묶어 그 사슬을 잡고 서있다. 악을 벌하기 위해 악마적 힘을 가진 천사의 이면을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뱀의 지혜를 빌어 세상을 구하고자 함을 표현한 것인지, 어떤 심오한 의도를 가지고 제작한 것인지 작가의 의도를 알 수는 없으나, 잉까인들의 태양의 신전을 부수고 그 자리에 세워진 이 동상 속에 감춰진 승리자의 도취감과 이기심이 눈에 밟힌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빠네시죠 언덕의 가장 큰 볼거리는 천사상 보다는 그 아래로 펼쳐진 파스텔 톤 집들의 향연이었다. 뉴타운 쪽의 도시 풍경이야 여느 도시의 그것과 별다를 것 없었지만, 올드타운 쪽의 언덕에 위치한 낮은 집들은 통일감 없이 각자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모든 색들이 부드럽고 따듯한 파스텔의 범주 안에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자니 그 모든 것이 합쳐져 묘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모자이크 풍경을 만들어냈다. 누군가 도시계획을 파스텔 톤으로 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에콰도르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 닮아 있는 것일까? 언덕 아래 파노라마로 펼쳐진 파스텔 톤 모자이크의 도시 풍경은 도시 밖 산을 수놓은 모자이크식 경작지와 목초지와도 어딘가 닮은 느낌이었다. 카메라의 기능적 한계로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빠네시죠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올드 끼또의 시내 전경.
성당은 대부분 고딕이나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성당은 돔 모양의 지붕에 독특하고 세련된 모자이크 문양을 그려넣었다.
빠네시죠 언덕의 천사상
시티 투어 버스에서 바라본 빠네시죠 언덕의 전경. 언덕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더 압권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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