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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화 Dec 28. 2017

시골 장터 구경

에콰도르, 끼또: 오따발로 - 2015/07/23(목)

고산지대에 위치한 끼또는 일 년 내내 초가을 날씨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고 낮엔 조금 더운데, 더운 낮에도 습하지 않으니 견딜만하다.

오늘은 남미 최대 원주민 수공예 시장인 오따발로에 다녀올 것이다.

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Terminal Carcelen)로 가는 길, 도로 위에서 우리나라 브랜드의 차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이 형주 눈에도 반갑고 자랑스러웠던지 자동차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있다. 산유국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생활수준이 높아서 그런지 끼또의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대부분 깨끗하고 상태가 좋았다. 낡은 차 일색인 다른 남미 국가들의 도로 풍경처럼 매연을 내뿜고 다니는 차들도 별로 없고 운전자들의 운전 태도도 여유 있고 점잖다. 

그러나 택시 기사들의 바가지요금 행태는 다른 나라와 다를 바 없다. 터미널까지 30분이면 갈 거리를 돌고 돌아 한 시간 넘게 걸려 도착했다. 어쨌든 터미널에 도착했으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지만, 돈 보다 더 귀한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시외버스가 끼또 시내를 벗어나자 차창 밖으로 에콰도르의 대자연이 펼쳐졌다. 깎아지른 듯 깊이 파인 협곡들, 높은 산의 측면에 펼쳐진 모자이크 경작지와 목초지,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 마을들은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버스를 오르내리는 원주민 여인들의 화려한 의상과 독특한 머리 모양을 보는 즐거움에 버스를 타고 가는 두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도로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를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까르셀렌 터미널
저 멀리 모자이크 경작지가 보인다.


오따발로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배고프다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트럭에서 파는 컵 수박을 사서 아이들 입에 수박 조각을 하나 씩 물리고는 아기자기한 인디오 수공예품을 구경할 기대에 부풀어부지런히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원주민들이 장신구부터 전통악기, 그림, 장난감, 인형, 과일과 야채, 옷, 가방, 신발 등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그중에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곳은 그림을 파는 가게였다. 농사짓는 원주민의 모습과 에콰도르의 자연을 아름답게 그린 그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아이들과 한참을 구경했다.  

시장을 돌면서 원주민 풍의 옷을 각각 한 벌씩 사고, 도난당한 배낭을 대체할만한 배낭과 제나 손가방, 선물용 팔찌, 자석이 달린 작은 그림 두어 개를 사고 나자 형주가 과소비라며 더 사지 못하게 뜯어말렸다. 하긴, 더 사도 배낭에 들어갈 자리도 없으니 아들의 말을 듣는 게 옳겠다 싶다.

돌아 나오는 길에 야마 털로 만든 인형과 신발을 파는 가게가 있어 물건들을 살펴보다가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입고 계신 원주민 전통의상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외투에 가려 그 고운 옷이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꽃무늬가 단정하게 수놓아진 하얀 블라우스에 짙은 남색 치마를 입고 목에 여러 겹의 금색 목걸이를 두른 모습이 참 단아했다. 에콰도르 사람 특유의 동그란 얼굴에 숱이 많은 긴 머리를 뒤로 묶어 늘어뜨린 그 모습에 반해 물건을 살 것도 아니면서 괜히 그녀의 가게 앞을 서성였다. 천방지축 아들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가는 원주민 여인에게서도 그들의 옷차림과 자세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단정함과 고매함이 있었다. 자신들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그 끈을 놓지 않고 단단히 붙잡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버스 터미널의 수박 트럭
오따발로 시장으로 가는 길. 아들의 손을 잡고 가는 원주민 여인. 옷과 머리 매무새, 그리고 자세가 단정하고 참 곱다.
거리의 가로수도 참 단정하다. 오따발로 사람들의 몸가짐과 어딘가 닮았다.
원주민 여인들이 여러 겹으로 두껍게 목에 거는 목걸이와 장신구를 파는 가게
야마 털 제품을 파는 가게. 파는 물건보다 가게 주인 아주머니에게 더 눈길이 갔다.
그림 가게. 작은 미술관이나 다름없다.
소년의 등에 걸린 예쁜 배낭도 오따발로에서 샀다.
원주민 아가씨가 염소젓으로 직접 만들어 파는 수제 아이스크림. 손잡이가 삐딱하게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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