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끼또: 적도 박물관 - 2015/07/25(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우리 셋과 어제 늦게 합류한 미국 청년들 열댓 명이 모두 모여 반지 만들기 삼매경에 빠졌다. 단단한 코코넛 껍질을 갈아 각자의 손가락에 맞게 반지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유난히 반지 욕심이 많은 형주는 빨리 반지를 끼고 싶은 마음에 대충 갈아서 손가락에 끼웠다가 나중에 빠지지 않아서 한참을 고생했다.
반지 만들기로 카카오 농장에서의 우리 일정은 끝났다. 짐을 챙겨 들고 나와 마당 앞에 서니 하루 만에 정이 들었던지 육 남매가 모두 나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제나를 특히 예뻐했던 다섯째 마리아는 제나를 꼭 껴안고 울먹이기까지 했다. 서로 말은 없었으나 눈빛으로만 속마음을 나눴던 둘째 에릭과 형주도 쑥스러운 듯 짧은 눈빛을 교환하며 작별의 아쉬움을 나누었다. 여행이 계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으나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놀았던 적이 없었던 어린 제나와 사춘기 형주에게 카카오 농장에서 함께 지냈던 육 남매와의 기억은 더욱 특별한 인연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버스정류장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끼또로 출발하는 버스를 간신히 잡아타고 자리에 앉았는데 10분쯤 지나자 제나가 쉬가 마렵다고 보채기 시작했다. 험한 길을 달리는 버스 기사에게 차마 잠깐 세워달라는 말은 못 하고 안절부절못하다가 다급한 대로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소변을 해결했다. 남자아이도 아닌 여자아이가 시골길을 달리느라 심하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궁색하게 볼일을 해결하자니 엄마 마음은 안쓰러웠으나 어린 제나에게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나 보다. 건너편에 앉은 제 오빠에게 검은 봉지를 흔들어 보여주며 자기 ‘쉬’라고 자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말을 못 알아들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누군가 알아듣기라도 했다면 쉬 봉지를 든 채 버스에서 쫓겨나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쉬’ 소동이 끝나고 평화롭게 차창밖 풍경을 구경하며 가고 있는데 우리보다 나중에 올라탄 소녀가 뒷자리에 앉아있다가 손에 수첩을 쥐고는 내게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나는 발레리아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어디에서 왔습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안녕히 가세요.”
시골에서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던 소녀가 버스에서 외국인인 우리를 발견하고는 영어로 말할 기회로 여기고 용기 있게 다가와 말을 걸어보는 것이었다. 시골에서 자랐던 나는 중학교에 입학해서야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외국인을 만나면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 볼까 하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부끄러워서 돌아서곤 했었는데, 이 아이는 용감하게 다가와 수첩에 준비한 말을 다 해보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딱 그때의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이 당돌한 소녀의 행동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귀엽던지 그 아이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주고는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 손에 쥐어주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만나서 반가웠고 너의 삶에 행운이 가득하길 빈다고. 그리고 너의 용기를 응원한다고.
우리는 끼또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적도 기념비 근처에서 내렸다.
그곳에는 프랑스 과학자들이 1735년에 세운 적도 기념비가 있고 그곳으로부터 300미터 거리에 원주민들이 태양의 길이라고 부르던 곳에 지어진 적도 박물관(Museo de Inti Nan)이 있다. 현대의 첨단 기술로 측정한 결과 적도 기념비보다는 적도 박물관이 적도와 가깝다고 하니 잉까인들은 서양의 과학보다 앞선 어떤 힘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입장료에 가이드 비용을 내면 대여섯 명을 한 그룹으로 묶어 박물관 투어를 할 수 있었다. 적도 박물관이라 적도에 관련된 것들만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원주민과 관련한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과거에 에콰도르에 살았거나 현재에도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지켜가며 살고 있는 인디오들의 생활방식과 주거공간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인디오 박물관에는 인디오의 사냥법이나 용맹함을 보여주는 사냥용품이나 주술 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 아이들을 놀라게 했던 것은 적의 머리에서 해골을 빼낸 후 약품에 담가 쪼그라들게 만들어(shruncken head) 목걸이로 걸로 다닌다는 부족의 이야기와, 강에 소변을 보면 그 소변 냄새를 맡고 성기 속으로 들어가 사람을 물어 죽인다는 물고기에 관한 얘기였다. 다양한 인디오 부족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박물관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다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위도 0도 라인이 있는 진짜 ‘적도' 박물관이었다.
국명 에콰도르를 영어 ‘equator(적도)’에서 따왔을 만큼 이 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큰 특징은 ‘적도’이다. 이곳 적도 박물관에서는 위도 0도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일들을 해볼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실험은 위도 0도 라인을 중심으로 싱크대에 물을 받았다가 물을 빼는 실험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위도 0도 라인에서 한 발짝 북쪽에서 물을 빼면 물이 북쪽으로 소용돌이치면서 내려갔고 한 발짝 남쪽에서 물을 빼면 물이 남쪽으로 돌면서 내려갔다. 다음 실험은 위도 0도 라인을 따라 눈을 감고 걷기였다. 위도 0도 라인에서는 중심을 잡으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균형이 잘 잡혔는데 신기하게도 적도선을 조금만이라도 벗어나면 금방 균형이 흐트러졌다.
적도 박물관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달걀 세우기 체험하는 곳이다. 어떤 사람은 도전하자마자 달걀을 못 위에 세워 환호성을 부르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참 공을 들여도 성공하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물론 후자에 속했다. 형주는 성공할 때까지 세워보겠다며 고집을 피웠고 실험대에 키가 닿지 않는 제나는 자기도 해보겠다며 안아 올려달라고 떼를 썼지만, 맨질 맨질 하게 닳은 둥근못 머리에 달걀은 세운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아무리 적도 위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적도 박물관에서 나와 끼또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어렵사리 잡아타고 보니 버스는 만석이라 발 디디고 설 틈조차 없었다. 내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제나를 추스르고 달래 가며 30여분을 달린 끝에 버스는 어제 출발했던 까르셀렌 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시 보는 끼또의 오후 거리 풍경과 길 위의 사람들이 이제는 반갑고 익숙하게 느껴진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밥을 먹고 나니 긴장이 풀어져서 그랬을까. 카카오 농장에서 짧은 바지를 입고 풀 섶에 앉아 있다가 카카오 농장에서 지내는 동안 이름 모를 벌레에게 물린 상처가 빨갛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세어보니 족히 50군데 가까이 되었다. 아이들은 긴바지를 입어서 화를 면했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이런저런 약을 발라봤으나 가려움을 가라앉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려움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