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바뇨스: 세상 끝 그네 - 2015/07/26(일)
바뇨스는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레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에콰도르 최고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2박 3일 일정으로 끼또에서 편도 3시간 30분 거리의 바뇨스에 다녀오기로 했다.
끼또의 대중교통은 깨끗할 뿐만 아니라 전용도로가 있어서 빠르고 무엇보다 저렴하다. 숙소 근처에서 뜨롤레(Trole: 버스 위의 전선줄에 접지하여 전기로 가는 버스)을 타고 엘 히도(El Jido) 역에서 한번 갈아타고 바뇨스 행 버스가 출발하는 끼뚬베(Quitumbe)역까지 총 1시간가량 걸리는 거리를 이동하는데 버스요금이 0.25달러(약 300원)이다. 버스에 앉아 버스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도 보고 시티투어 버스에서 보지 못했던 끼또 시내의 다른 구역을 구경하며 가다 보니 버스는 금세 끼뚬베 역에 도착했다. 끼뚬베 역은 오따발로나 뿌에르또 끼또(카카오 농장)으로 가기 위해 이용했던 까르 셀렌 터미널보다 훨씬 크고 현대적이었다.
바뇨스로 가는 내내 차창 밖으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인 눈 덮인 꼬또빡시(Cotopaxi)산이 보였다. 이 산은 에콰도르 사람들에게 신성한 의미를 지닌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 어떤 풍경에라도 뽀또빡시가 배경이 되면 한 폭의 멋진 그림이 되곤 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바뇨스는 공기가 선선했고 산자락에 늘 흘러가는 구름이 걸려있었다.
여행 중 만났던 배낭족들이 한 목소리로 추천했던 호스텔 디마띠아스(D'matias)에 들렀더니 남는 방이 없다며 시장 근처에 위치한 호스텔 마리아 공주(Princesa Maria)를 추천해 주었다. 볼 살이 처져서 놀부처럼 생긴 주인 할아버지는 중후한 목소리를 가진 점잖은 분이었는데 숙소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투숙객에게는 무서운 할아버지로 변신하곤 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벌써 오후 3시였다. 산 마을이라서 일찍 해가 질 테니 한 군데라도 들리려면 서둘러야만 했다.
산 정상에 있는 '세상 끝 그네'로 가기 위해 차량편을 알아보니 일요일에는 산으로 가는 버스가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렵게 잡아 탄 택시는 시내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세상 끝 그네가 있는 곳에 우리를 내려주고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산 아래 시내로 데려다주었다.
언젠가 인터넷 신문에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중 9위를 차지했던 이 ‘세상 끝 그네’의 아찔한 사진을 보면서 ‘저런 그네를 타다니... 죽으려고 아주 환장들을 했군.’하며 혀를 끌끌 찼던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 당황스럽게도 그때의 내 생각이 꼭 맞았다. 발아래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깎아지른 절벽에 그리 굵지 않은 앙상한 나무가 위태롭게 서있있었고 그 나무에 얼기설기 나무판자로 집으로 지어놓고 그 나뭇가지에 그네를 매달아 둔 것이다. 그 외양의 단출함과 그 위치의 무모함을 마주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까딱 한 발짝만 잘못 디디면 미끄러지며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아찔한 곳에서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한껏 기분이 좋아진 제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아무 곳에나 매달려서 내 애간장을 녹였다. 일단 줄을 서서 탈까 말까 망설이다 보니 어느새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는 그네에 앉아서 제나를 무릎에 앉히고 한 손으로 그네 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제나를 안고 그네를 타려니, 제나가 내 무릎에서 미끄러져 내려서 문자 그대로 ‘세상의 끝’으로 날아가 버릴까 봐 도저히 마음껏 높이 탈 수가 없었다. 앞뒤로 서너 번 왔다 갔다 하다가 금방 내려왔다. 반면에 형주는 그네에 앉아 힘차게 다리를 굴러서 제 몸을 공중으로 쏘아 올리며 ‘세상의 저 끝’으로 날아오르는 스릴을 만끽했다. 우기라서 늘 비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의 정상에서 위태로운 나무에 줄을 매단 그네를 타고 구름 속으로 날아가며 환호성을 지르는 열여섯 살 소년의 모습은 환상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환상의 세계에서 다시 현실 세계로 내려온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폭포 아래 노천온천’으로 향했다. 2006년 화산이 폭발하면서 많은 희생자를 냈던 이곳의 화산들은 아직 활화산이다. 그 활발한 화산활동 덕분에 바뇨스는 온천여행지로도 유명하다.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온천탕이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영업한다기에 여유 있게 5시에 출발했다. 길거리에서 파는 주전부리들을 사 먹으면서 동네 구경을 하며 천천히 걸어 온천탕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6시에 개장과 동시에 서로 먼저 입장하려고 아우성인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간신히 탈의실을 찾아들어갔는데 시설의 열악함은 이미 예상했던 바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미끄러운 바닥과 오물 냄새에 찌든 탈의실에서 허둥지둥 아이들 옷을 갈아입히고 노천탕으로 향하니 탕 안은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온천탕 입구에서부터 현지인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았던 제나는 부끄러워하며 아기 침팬지처럼 내 목에 매달렸고 좁은 탕 안에서 몸을 움직이기가 불편했던 형주는 엄마에게 물을 끼얹으며 장난을 쳤다. 노천탕에서 피어오르는 뿌연 수증기와 바로 옆 계곡에서 시원스레 떨어지는 폭포수, 까만 하늘에 휘영청 떠오른 달, 그 주위로 수증기가 올라가며 달무리를 만들었다 풀기를 반복하는 풍경, 그리고 내 아이들의 물에 젖은 사랑스러운 얼굴들... 그 모든 것들이 따듯하고 노곤 하고 행복한 느낌의 그림으로 선명하게 기억된다.
8시경 온천탕에서 나와 숙소로 향하는 길에 시내의 여행사에 들러 내일의 액티비티를 두 가지 예약하고 돌아오려니 시각은 벌써 9시 반이다. 피곤했던 제나는 내 등에서 벌써 잠들었는데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출출했던 형주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 어귀의 포장마차 앞에 늘어선 현지인들 틈에 줄을 서서 그걸 먹어야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제법 맛있어 보이는 그 음식의 정체를 묻자 현지인들은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웃었다. 뭐라고 얘길 해줬는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닭고기이긴 한 것 같은데 왜 웃지?’ 포장마차 주인이 웃으며 맛보라고 작은 조각을 건네주기에 받아먹어보니 쫄깃한 게 익숙한 맛이다. 그 음식의 정체는 바로 ‘닭똥집’ 양념구이였는데 기막히게 맛있었다. 2인분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자는 제나까지 흔들어 깨워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내일은 4인분 어치 사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