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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화 Dec 28. 2017

다시 못 올 멋진 순간

에콰도르, 바뇨스: 캐노피, 캐녀닝 - 2015/07/27(월)

아침부터 이슬비가 내렸다. 강한 비가 아닌 것에 그나마 감사하며 오전 10시에 캐노피를 하러 출발했다. 

캐노피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산등성이에 고정된 쇠줄에 몸을 고리로 연결하고 양 쪽 산등성이의 높이 차이를 이용해서 빠른 속도로 날아 계곡을 건너가는 레포츠이다. 어젯밤에 여행사에서 캐노피 동영상을 봤던 형주는 예약한 순간부터 무서울 것 같다며 벌벌 떨기 시작했다. 어제 자느라고 캐노피 동영상을 보지 못했던 제나는 제 오빠의 호들갑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채 서 있다가 덩달아 무섭다고 내 다리에 매달렸다. 우리와 함께 온 젊은 남녀 커플은 아이들이 무섭다고 난리를 치는데도 굳이 먼저 타라며 우리 등을 떠밀었다. 두 녀석의 호들갑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나는 제일 먼저 쇠줄에 한일(一)자로 대롱대롱 매달렸고 제가는 내 아래에 매달려 2단 소시지로 변신했다. 형주는 우리 2단 소시지가 매달린 옆줄에 매달렸는데 쇠줄에 매달리는 내내 무섭다고 호들갑을 떨어 우리 모두를 긴장시켰다. 그렇게 셋이 동시에 출발했다.

매달리는 순간이 제일 두려웠을 뿐 날아서 계곡을 건너가며 느껴지는 것은 스릴보다는 시원함이었다. 눈 아래로 힘차게 계곡물이 흘러가고 건너편의 산풍경이 다가오고, 그렇게 순식간에 건너편 산에 닿았다. 건너편에서 우리가 안전하게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은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건너갈 때 조금 낮은 곳에서 출발할지 더 높은 곳에서 출발할지를 물었는데 캐노피의 스릴에 도취된 형주는 더 높은 곳에서 출발하겠다고 호기롭게 대답했다. 산길을 걸어 올라가 높은 곳에서 줄에 매달려 계곡을 날아 출발지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더 높고 더 긴 비행이었다. 빗방울이 얼굴을 따갑게 때리고 건너편 산등성이에서 토사가 섞인 폭포수가 콸콸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바라보며 슈퍼맨처럼 오른팔을 뻗고 우렁차게 소리 지르며 날아서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캐노피를 마치고 장비를 벗으며 형주가 상기된 표정으로 내 귀에 속삭였다.

“순식간에 끝나서 너무 아쉬워. 그런데, 다시 못 올 멋진 순간이었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코끝이 찡했다. 

‘엄마는 이번 여행의 모든 순간이 그랬단다. 너희들과 하는 인생이라는 여행도 그렇게 순식에 끝나 버려 아쉬울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지만, 다시 못 올 멋진 순간들이니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캐노피 출발 전 긴장한 소년


오후에 있을 캐녀닝을 앞두고 식당을 찾아 읍내 여기저기를 찾아 헤매다가 터미널 근처의 간이식당에서 인디오 아낙이 만들어주는 값싸고 소박한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비가 그치길 바랐으나 가는 비가 추적추적 하염없이 내렸다. 우리가 점심을 먹는 동안 터미널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간이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었다. 비 오는 풍경 속 그들의 모습이 참 정겹다.

캐녀닝은 계곡 위에서 레펠로 계곡을 내려가는 레포츠이다. 여행사에서 웻수트(wet suit)로 갈아입고 산악용 장비를 주렁주렁 단 채 계곡으로 향했다. 제나한테 맞는 신발이 없자 여행사 사장은 신발가게에 가서 제일 작은 사이즈로 사다가 작은 제나 발에 신기며 제나를 향해 연신 아빠 미소를 지었다. 

차로 산 중턱까지 올라간 후 거기서 계곡이 있는 지점까지 좁고 험한 산길을 걸어서 가야 했는데 비 탓에 진흙길로 변한 산길과 돌계단이 미끄러워서 내가 제나를 업고 올라가야 했다. 원래 코스는 계곡의 가장 위에서 시작해야 했으나 비가 와서 계곡물이 너무 많아 아이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며 첫 번째 계곡은 패스하고 두 번째 계곡부터 시작했다. 

힘차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에 압도된 형주가 가이드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으니 시범조교로 내가 나서야 했다. 계곡 아래로 늘어뜨린 안전 줄에 내 안전 고리를 걸고 계곡의 돌을 디디며 10미터 높이의 계곡을 한발 한발 내려왔다. 쏟아져 내리는 계곡물 탓에 발 디딜 돌을 찾는 게 쉽지 않아서 물속의 숨은 돌에 무릎을 부딪혀 아프기도 했지만, 겁먹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에 무사히 다 내려가서는 재미있으니 어서 내려오라며 아이들을 독려했다. 엄마의 응원에 힘 입어 형주가 조심조심 내려오고 마지막으로 가이드가 제나를 안고 스파이더맨처럼 내려왔다.

두 번째 계곡에서는 계곡을 등지고 미끄럼을 타며 10미터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시범 조교인 내가 맨 처음 내려오고 다음으로 형주가 제나를 안고 쪼르륵 내려왔다. 순식간의 일이었지만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두려운 상황에서 제 동생을 안고 계곡을 내려오는 형주를 아래에서 지켜보자니 대견하고 뿌듯했다. 

마지막 구간은 캐녀닝의 하이라이트로 20미터 높이의 계곡에서 발을 디디지 않고 줄에 매달려 한 번에 내려가는 코스다. 이번에는 내가 제나를 안고 실감 나지 않는 높이의 계곡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계곡 아래에 고인 물이 깊어서 자칫 중심을 잃고 다칠 뻔했으나 형주가 위에서 방향지시를 해준 덕분에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캐노피처럼 신나는 일일 거라고 생각했던 제나는 거센 계곡물을 맞으며 계곡 아래로 내려오느라 무섭고 추웠는지 캐녀닝을 하는 내내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몸을 바르르 떨었다. 질퍽이는 산길을 다시 올라 숲 속의 한 농가에서 옷을 갈아입고 돌아갈 차를 기다리는데 빗 줄기가 점점 더 굵어졌다. 우리를 태우러 오던 차는 비 때문에 길에 떨어진 낙석에 길이 막혀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차가 서 있는 산 중턱까지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했으나 신나는 모험을 마친 우리 트리오의 발걸음은 하늘을 날 듯 가벼웠다.

다소 험난했던 캐녀닝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니 한국인 여행자 서넛이 우리를 반겼다. 아이들은 그들에게서 라면도 몇 젓가락 얻어먹고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도 나누며 남은 오후를 보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형주에게 근처 시장에 가서 상추쌈 대용으로 먹을 만한 잎채소를 사 오라고 했더니 김치를 담가 먹어도 좋을 만큼 뻣뻣한 잎채소를 한 다발이나 사 왔다. 잘 접어지지도 않는 새파란 잎채소 위에 밥을 얹고 그 위에 구운 소시지를 얹어서 고추장을 찍어 입에 욱여넣고 먹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영락없이 우적우적 풀을 씹어 먹는 두 마리의 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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