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끼또에서 콜롬비아로 이동 - 2015/07/29(수)
우리는 오늘 에콰도르를 떠나 콜롬비아로 이동한다.
이별을 하루 앞둔 어젯밤에 민박집 안주인은 자신의 아이들이 어릴 때 쓰던 장난감이라며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보물 상자를 열어 제나가 가지고 놀만한 장난감을 이별 선물로 주더니, 떠나는 날 아침에는 이동하는 버스에서 먹으라며 정성스럽게 비빔밥을 만들어서 손에 들려주었다. 끼또에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카카오 농장과 바뇨스 등 여기저기 다녀오느라고 3일밖에 함께 지내지 못했는데도 부실한 엄마와 여행하느라 고생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을 많이 써주고 도와주려고 애썼던 주인 내외에게 고마웠던 마음은 여행에서 돌아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큰 도전이자 모험임에 분명한 그들의 이민 생활이 무탈하게 지속되길 바란다는 인사를 남기고 숙소를 나섰다.
(남미 여행에서 돌아온 후 7개월이 지난 2016년 4월, 에콰도르에 큰 지진이 나서 7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하고 4,600여 명이 부상당했다는 뉴스를 접하자 퍼뜩 끼또에 있는 그 가족이 떠올랐다. 그들이 걱정되어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더니 다행히 안전하다는 소식을 전해와 마음을 놓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7년 4월에는 볼리비아 라빠스에서 물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우리가 여행하면서 방문했던 장소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늘 그립고 염려스러운 내 친구들이다. 부디 모두들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안녕하고 강건하길 항상 기도한다.)
오따발로와 카카오 농장으로 여행 갈 때 두 번이나 이용했기 때문에 이젠 익숙해진 까르셀렌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에콰도르의 국경도시 뚤깐으로 이동했다.
3시간 30여분을 달리는 동안 버스 창밖으로 펼쳐진 에콰도르의 풍경은 아무리 여러 번 보아도 감탄이 절로 흘러나올 만큼 아름답다. 낮은 산에 모자이크 모양으로 단정하게 가꿔진 초록색 농경지와 목축지,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소박한 인디오 마을의 이 아름다운 모습은 에콰도르인들의 핏속에 흐르는 예술적 영감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과야사민에게 그러했듯이.
뚤깐에 도착하니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에콰도르 국경 사무소까지 이동해서 거기서 새로 발급받은 빳빳한 여권에 당당히 첫 출국 도장을 받았다.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새 여권에 찍힌 도장을 보고 있자니 출입국 직원이 웃는 얼굴로 아이들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에콰도르에서의 추억을 잊지 말라고 인사했다. 관광국 소속인 듯한 한 청년은 서둘러 국경을 넘어야 하는 우리 트리오를 붙잡고 에콰도르에서의 여행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겠다며 찰싹 들러붙어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부었다.
처음 라틴 아메리카 여행을 계획할 때에는 온통 관심사가 갈라파고스에만 쏠려있어서 에콰도르라는 나라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페루에서 여권을 도난당하며 여권 재발급을 위해 예상치 않게 일주일 동안(갈라파고스에서의 2주를 합하면, 에콰도르에서 3주를 머문 셈이다.) 머물며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니 의외로 많은 매력을 가진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생활과 의식 수준은 높은 편인데 물가는 쌌다. 대중교통도 편리하고 치안 상태도 좋은 편이어서 여행 중에 큰 제약을 받지도 않았다. 볼리비아와 마찬가지로 인디오 원주민들의 문화를 보존하려 애쓰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보존이 잘돼 있어서 여행하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페루에서의 사고가 에콰도르에서의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셈이니 전화위복이라고 여기련다. 이제 우리는 자연이 만든 최고의 보물섬 갈라파고스와, 산과 도시와 사람을 파스텔 톤 모자이크로 물들인 아름다운 미술 혼을 가진 나라 에콰도르를 떠나 콜롬비아로 간다.
에콰도르의 출국 사무소에서 나와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걸어서 넘어가니 바로 콜롬비아의 국경의 입국 사무소가 나왔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 두 나라의 풍경과 사람들의 분위기는 완연하게 달랐다. 에콰도르가 동글동글하고 아기자기하면서 단정하고 다정한 느낌이라면 콜롬비아는 거칠고 좀 더 투박하다. 사람들의 태도 또한 그렇다. 콜롬비아 입국 사무소의 직원은 앞뒤로 배낭을 메고 양손에 아이들을 대동한 내가 보따리 상인으로 보였던지 꽤나 고압적인 자세로 ‘입국의 목적이 뭐냐’고 물었고, 택시 기사들도 손님인 우리를 달가워하지 않는 태도로 자신들의 대화에만 집중했다. 어렵사리 버스 터미널이 있는 이피알레스로 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이동하는데, 택시의 상태도 안전이 염려될 만큼 심각하게 낡았다. 굳이 도로 위 차량이 낡은 상태를 기준으로 남미 국가별 순위를 매긴다면 쿠바가 1등, 콜롬비아가 2등, 볼리비아가 3등이고, 운전자들의 운전방식을 위험한 순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콜롬비아가 단연 1등이다. 물론 도시별 표준편차가 다소 있긴 하지만 우리가 여행했던 도시들에서 이용했던 택시를 기준으로 봤을 때 콜롬비아, 특히 이피알레스에서의 승차 불안감이 가장 컸다.
이피알레스 터미널에서 깔리 행 야간 버스 티켓을 끊고 나니 버스 출발 시간까지 두 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있어서 근교에 위치한 라스라하스 성당에 다녀오기로 했다.
비가 내려서 날은 더 일찍 저물었다. 캄캄한 저녁시간에 택시로 편도 30분 거리의 길을 다녀오다가 버스 시간에 늦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여행하는 도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보는 것이 여행자의 본분이라고 믿었기에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이동했다.
라스라하스 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깊은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져 있었다. 어스름 녁 비에 젖어 한층 더 짙어진 초록색 산자락이 만들어내는 서늘한 풍경 속에 간간이 자리 잡은 민가의 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가 시처럼 서정적이다.
성당이 있는 마을의 초입에서 하차해 거기서부터 돌길을 따라 20여분 걸어 내려가니 끝도 없이 깊은 협곡 아래로 힘차게 흘러가는 계곡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약 100 미터 깊이의 까마득한 협곡에 지어진 이 성당은 1754년 성모 마리아의 현신과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라 그것을 기리기 위해 1949년 현신의 장소 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협곡의 중간부까지 다리를 세우고 그 위에 성당을 지었는데 성당 내부의 한 벽면은 성모 마리아가 현신했던 협곡면을 보여주기 위해 협곡면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건축되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무 늦은 시각에 도착했고 비가 오락가락해서 날이 빨리 어두워졌기 때문에 성당의 외부를 자세히 보기도 전에 모든 실루엣이 어둠에 잠겨버렸다. 아주 잠깐이라도 볼 수 있었으니 그나마 운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고 애써 스스로를 위안하며 돌아서려는데, 성당 내부에서 불이 켜지면서 아름다운 색으로 그려진 성당 창문의 스테인 글라스가 성당 외부로 빛을 발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에콰도르 끼또의 바실리까 대성당에서 낮의 햇빛이 성당 내부로 쏟아져 들어오던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이곳 콜롬비아의 라스라하스 성당에서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성당의 내부에서 외부로 밝게 쏟아내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다.
버스 출발 시각까지 1 시간 20분을 남겨두었으니 이제 깔리 행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이피알레스로 돌아가야 했다. 아까 협곡을 따라 내려왔던 돌길을 반대로 걸어서 올라가는데 20분, 택시로 이동하는데 30분을 예상했으나 예상은 늘 빗나가게 마련이다. 지친 제나를 등에 업고 계속 오르막인 돌길을 걸어 올라가는데 40분이 걸렸고, 택시 타는 곳에 대기 중인 택시가 없어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20분이 넘게 걸렸으니, 이제 20분 안에 터미널에 가지 못하면 우리는 버스를 놓치고 터미널에서 노숙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때 기적처럼 저 앞에서 다른 길로 가려는 택시를 형주가 뛰어가서 잡아왔다. 20분 안에 터미널까지 갈 수 있냐고 묻자 택시 기사는 자신에 찬 눈빛으로 페달을 밟았다. 그러고는 낮에 30분이 걸려 왔던 구불구불한 계곡 길을 칠흑처럼 캄캄한 밤에 내 달려 15분 만에 터미널에 도착시켰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분노의 질주였다. 버스 출발시간에 늦지 않은 건 다행한 일이었으나 그렇다고 버스 출발시간을 맞추기 위해 목숨까지 걸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택시에서 제나를 품에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손잡이를 어찌나 세게 잡고 있었던지 택시에서 내리자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배어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깔리 행 버스에 올라탄 우리는 긴장이 풀려서 그랬던지 기절하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보니 혹시 추울까 싶어서 꺼냈던 침낭 두 개 중에 하나가 사라지고 없었다. 품에 안고 있는 것도 빼앗기는 판국인데 손에서 놓친 것을 다시 찾기는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부터 콜롬비아로의 여행이다. 더 바짝 긴장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