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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화 Dec 28. 2017

살사, 그 엄청난 에너지

콜롬비아, 깔리: 살사 음악 공연 -2015/07/30(목)

버스는 아침 7시에 깔리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햇살 속의 깔리는 깨끗하고 평화로웠다. 

깔리의 차들은 낡지 않았고 깨끗했으며 운전자들은 다행히도 이피알레스의 운전자들보다 점잖게 운전했다. 그러나 택시 운전사들의 주소를 잘못 찾겠다는 식의 뻔한 행태는 여전했다. 택시는 한 시간여를 헤맨 끝에 호스텔 뜨로삐까(Tropica)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하얀 단층 건물들이 예쁘게 늘어선 거리에 자리 잡은 호스텔은 집주인이 나비를 좋아하는지 새하얀 숙소의 곳곳이 예쁜 나비 문양으로 꾸며져 있었다. 호스텔의 여주인은 훤칠한 키에 굴곡진 몸매와 긴 갈색 곱슬머리를 가진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그녀의 귀여운 네 살 배기 아들과 제나는 서로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처음 본 순간부터 장난감과 과자를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짐도 풀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밤새 야간 버스에서 불편하게 웅크리고 자느라 굳었던 몸을 쭈욱 펴고 오전 내내 달게 잠을 잤다. 

아침도 못 먹은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며 흔들어 깨우는 통에 마지못해 억지로 일어나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식당을 찾아 호스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보았다. 까페촌처럼 깨끗하게 잘 꾸며진 골목을 지나 우리는 굳이 허름한 현지인 식당으로 들어갔다. 별다른 장식 없는 식당 벽에는 흑인 뮤지션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어둑한 실내에는 저녁 식사시간이 시작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었던지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호기심 가득한 젊은 웨이터는 에스파뇰에 어눌한 영어를 섞어가며 열심히 음식 주문을 도와주었고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자신의 어린 딸과 함께 제나에게 이런저런 주전부리와 장난감을 가져다주며 친근함을 표했다. 


깔리의 거리
현지인 식당
교핑센터로 건너가는 육교
쇼핑센터가 있는 거리
쇼핑센터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의 벽화
우리 트리오가 사랑했던 남미의 열대과일 패션프루트, 일명 개구리 알
콜롬비아 지폐 속 인물들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다소 위험하다고 소문난 깔리로 우리를 이끈 건 단 하나, ‘살사의 도시’라는 이 도시의 별명 때문이었다. 살사라고 하면 가볍고 빠른 라틴 음악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남녀가 요염한 의상을 입고 추는 경쾌한 춤을 떠올리기 쉽지만, 진정한 살사는 ‘음악’ 그 자체이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우리를 전율케 했던 땅고 음악의 매력에 도취되었던 우리는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살사가 어떤 감동으로 다가올 것인지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숙소의 관리인에게 좋은 살사 클럽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해서 당장 오늘 저녁에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밤 11시에 시작하는 공연이었으므로 어린 제나를 일찌감치 재우고 혹시 제나가 깨서 엄마를 찾으면 공연이 끝날 때까지만 잘 돌봐달라고 호스텔 관리인에게 부탁해 두고는 형주와 함께 들뜬 마음으로 살사 클럽으로 향했다.

그런데 살사 클럽의 문 앞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클럽에서 주류를 팔기 때문에 나이가 어린 형주는 입장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엄마와 함께 왔는데 무슨 문제인가?’, ‘살사 공연을 보러 지구 반대편에서 머나먼 콜롬비아까지 왔는데 나이 때문에 그냥 돌아가야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하다’... 등등 온갖 이유를 들며 설득해 보았지만 클럽 매니저까지 나와서 강경한 태도로 형주의 입장을 거부하니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까지 강경하게 입장을 거부하는 건 공연 내용 상 미성년자에게 부적합한 선정적인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나도 형주랑 함께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이런저런 고민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 형주가 자기 혼자 숙소로 돌아갈 테니 엄마라도 혼자 공연을 보고 오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위험한 도시인데 밤에 형주 혼자 택시를 타고 가는 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고, 공연이 끝난 늦은 시각에 나 혼자 숙소로 돌아가는 것도 걱정스러워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려니, 클럽 매니저가 직접 형주에게 숙소로 가는 택시를 잡아주었다. 공연 후에도 나를 위해 안전한 택시를 잡아 주겠다고 약속해 주기에 그를 믿고 형주를 숙소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살사 공연을 보기를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대한 땅고 쇼 공연장과 달리 깔리의 살사 클럽은 그야말로 시내 맥주집(pub) 분위기였다. 넓지 않은 무대의 바로 앞에 작은 원형 테이블과 의자들이 촘촘히 채워져 있었고 벽면에는 오랜 세월 동안 이 클럽에서 활동했던 뮤지션들의 사진들이 빼곡하게 걸려있었다. 드디어 타악기를 연주하는 뮤지션이 무대에 등장해서 악기를 조율하기 시작하자 건반악기 연주자와 현악기 연주자가 무대로 들어섰고 1.5층 정도 높이의 무대에 세 명의 브라스밴드가  들어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한 사람은 회사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다 온 듯 평범한 복장에 배낭을 둘러멘 땅딸막한 남자였는데, 배낭을 무대 뒤편에 내려놓고 바로 마이크를 부여잡고는 조약돌처럼 꽉 들어찬 옹골지고 강렬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외모의 평범함은 자메이카 풍의 두건을 맨 타악기 연주자를 제외한 모든 연주자들의 공통점이었다. 몸에 그 흔한 문신 하나 없는 평범한 외모를 가진 중년의 연주자들은 겉멋을 완전히 배제해내고 오로지 음악에 대한 순수한 진지함과 경외만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대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의 음악... 아, 그것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음악처럼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적인 비구체물을 글로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악을 몇 자의 글로 감히 표현해 본다면,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만 같았다. 그들의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내 몸 전체가 순식간에 고막으로 변신하기라도 한 듯이 소리의 강렬한 진동이 회오리바람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휩쓸어 감쌌다. 밴드의 리더인 건반악기 연주자는 마치 연구소에서 비커에 화학물을 섞으며 실험이라도 하다가 막 나온 듯 한 학자풍의 50대 남성이었는데 관객들과 호흡하며 즉흥적으로 밴드를 이끌었다. 타악기와 현악기, 건반악기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한 음악에 1.5층에 자리한 세 명의 브라스밴드의 연주가 더 해지면 그 강렬함은 열 배 이상으로 증폭되었다. 공연이 중반으로 흐르면서 콜롬비아 전통의상을 입은 중후함과 애절한 목소리를 가진 50대 남성 가수가 합세하면서 밴드는 더 애절하고 깊이 있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강렬한 음악에 매료된 관객들은 꽉 들어찬 좌석의 좁은 틈에서 기쁨에 겨운 표정으로 상대의 눈을 응시하며 때로는 손을 잡고 또 때로는 허리를 휘감으며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두 시간 반의 공연이 그렇게 순식간에 끝난 후 그토록 강렬한 목소리로 관객을 압도했던 가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메고 왔던 배낭을 다시 둘러메고 클럽 밖에서 평온한 얼굴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말 멋진 공연이었다. 덕분에 살사 음악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고맙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음악가들이 음악에 집중하는 진지한 태도 보다도 그들의 음악을 들으러 온 관객들의 태도였다. 두 시간 반 동안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술에 취해 잡음을 내거나 소동을 피우는 사람 없이 모두 살사 음악과 흠뻑 사랑에 빠졌다가 나온 듯 상기된 얼굴들이었다. 진짜 살사는 이런 것이었다. 관능미를 뽐내는 몸짓도 적당히 술에 취해 흥청거리는 유희도 아닌, 순수하고 진지한 열정.

콜롬비아는 내게 마약과의 전쟁이니 불안한 치안이니 하는 뉴스 용어 보다, 가슴을 울리는 강렬한 음악과 사랑의 눈빛으로 상대를 응시하며 추는 멋진 춤을 가진 나라로 각인될 것이다. 오늘 밤 이후로. 

공연전 클럽 풍경
벽에 걸린 가수들과 그 아래 나이가 지긋한 살사 음악 애호가들
공연 전 튜닝 중
살사밴드 포스터
처음 마셔보는 콜롬비아 맥주
밴드의 공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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