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리우: 예수상, 빵지아수까르, 마라카냥 경기장 -15/04/28
꼬르꼬바두 언덕의 예수상
리우는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풋풋한 미소년이던 시절 주연했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96)의 배경이 되는 도시다. 웅장하고 긴박한 오케스트라 연주에 합창이 더해진 OST(Craig Armstrom; O verona)와 함께 카메라가 하늘 위에서 리우 시내 전체와 바닷가 풍경과 예수상이 서있는 언덕을 속도감 있게 빙글빙글 돌며 보여주다가 예수상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어떤 사건이 곧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으로 시작되는 영화의 도입부가 내게 특히 강렬하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클로즈업됐던 예수상의 얼굴 표정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죄를 심판하는 듯한 음악과 함께 화면을 가득 채운 예수상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무표정했다. 보통 성당이나 교회에 걸린 예수의 모습은 십자가에 못 박힌 고통스러운 모습이거나 사람들의 가운데 서서 온화하고 평화로운 얼굴로 사랑을 전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는데, 영화 속 리우의 예수상은 기존에 갖고 있던 그런 이미지와 달랐다.
오늘 그 예수상을 보러 간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오후 시간을 피해 아침에 방문하기 위해 여느 도시처럼 분주한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의 리우 풍경을 보며 꼬르꼬바두 언덕(690 미터)으로 향했다. 다행히 월요일 아침이라서 케이블카의 대기 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30분을 올라간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예수상은 구름에 상반신이 가린 채 하반신만 보였다. 그 얼굴 표정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에 '이대로 얼굴을 못 보고 내려가야 하나' 하고 조바심을 냈으나 곧이어 구름이 걷히고 곧이어 예수상의 전신이 드러났다.
음푹 들어간 눈, 살짝 도드라진 광대뼈, 꼭 다문 입술, 딱 달라붙은 긴 머리카락... 분명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양옆으로 펼친 두 팔과 부드럽게 흘러내린 옷자락은 그 누구라도 사랑으로 품어 줄 듯 넉넉하고 푸근한 느낌이다. 조각가는 왜 이렇게 전혀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하나의 예수상에 담았을까. 모두를 사랑으로 품어주겠으나 죄에 대한 심판은 엄격한 예수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런지. 부디 언덕 아래 빈민촌 파벨라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사랑과 용서를,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않고 오히려 차별하는 부자들의 죄에는 엄격한 심판을 내려주시길 기도하는 마음이다.
예수상이 서 있는 꼬르꼬바두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리우의 전경 또한 예수상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햇살에 빛나는 호수, 그 위에 떠 있는 하얀 요트들, 호수 주면을 빼곡히 채운 도시의 건물들, 그 건너로 보이는 이빠네마 해변과 빵 지 아수까르산, 그리고 저 멀리로 보이는 대서양, 그 모든 것들이 리우를 세계적인 미항으로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빵 지 아수까르
브라질에 와서 새로 알았다. 한국말인 줄로 알았던 '빵'이라는 말이 포르투갈어에서 왔다는 것을.
빵 지 아수까르라는 산의 이름은 설탕가루를 쌓은 모양의 빵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단다. 입구에서 방문객들을 돕는 젊은 경비원은 우리를 보더니 대뜸 어눌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 왔다. 꼬르꼬바두에서도 대부분의 동양인은 모두 중국인들뿐이었는데, 그는 어떻게 한눈에 우리가 한국인인 걸 알아봤을까.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우리 셋은 차례로 그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매표소를 들어갔다.
케이블카는 매표소에서 중간지점인 우르까 언덕(212 미터)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정상(369 미터)으로 가는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정상까지 올라간다. 이곳의 바위산은 여러 결로 쪼개지거나 여러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우리네 산과 달리 산 하나가 거대한 하나의 바위였다. 높고 낮은 두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으니 두 개의 거대한 바위가 나란히 붙어 있는 셈이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두 개의 거대한 바위가 차례로 눈앞으로 다가오는 풍경을 보는 것은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풍경이다.
정상에 오르니 꼬빠까바나 해변과 이빠네마 해변이 가까이에서 보이고 멀리 예수상도 볼 수 있었다. 해변과 바다를 더 가까이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점이 꼬르꼬바두에서의 전경과 다른 점이다. 리우를 방문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예수상이 있는 꼬르꼬바두와 빵 지 아수까르 중 어느 곳이 더 아름다운지에 대해 얘기하곤 하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도시 전경은 도심 안쪽에 위치한 꼬르꼬바두가 더 아름답고 자연경관은 바다에 면한 빵 지 아수까르가 더 아름다운 듯하다. 분명한 것은 두 곳 모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전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라까냥 월드컵 경기장
리우에서의 마지막 방문지로는 축구를 좋아하는 형주를 위해 2014 브라질 월드컵의 폐막 경기가 열렸던 마라까냥 경기장을 선택했다. 메트로 2호선 보타포고(Botafogo) 역에서 마라까냥(Maracana)역까지 대략 40분 정도 걸렸다. 특이한 점은 매 역마다 역 이름 표지판 옆에 역의 특색을 아이콘으로 나타낸 그림들이 붙어있는 것이었는데 아마 문맹자들을 위한 배려인 듯하다.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온 구간을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은 세계적인 휴양지인 해변지역에서 멀어질수록 눈에 띄게 허름해졌다.
마라까냥 역에 도착해서 메트로와 연결된 육교를 건너니 바로 경기장이 보였다.
경기가 없는 날이어서 경기장 내부와 선수들이 대기하며 몸을 푸는 워밍업 룸과 마사지 룸을 볼 수 있고 선수 입장 통로를 통해 경기장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다. 형주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곳은 1층에 마련된 브라질 축구 역사와 관련된 사진들이 전시된 곳이었다. 축구 영웅들의 발도장이 찍힌 곳에서는 자신의 발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가상으로 슛을 하는 모션 게임 화면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킥을 날리기도 했다. 이런 정도가 전부였다. 축구에 문외한인 내게는 그저 그런 심심한 방문지였지만, 아이의 눈높이에서는 삼바축구를 느낄 수 있어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 된 듯했다.
퇴근시간을 피하려고 했건만 숙소로 돌아오는 방향의 메트로는 벌써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안내방송도 잘 들리지 않고 사람들에 가려 역 이름도 확인하기 어려워서 옆에 서 있는 여성승객에게 이빠네마로 간다고 하니 다행히 같은 역에서 내린다고 했다. 보타포고 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오쏘히오(Osorio) 역에서 내렸는데 역이 생각보다 넓어서 어느 출구로 나와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다가 밖으로 나오니 캄캄한 저녁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리우의 밤거리에는 경쾌하고 감미로운 보사노바와 불안한 치안의 위험이 공존한다. 그래서 매혹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