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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화 Dec 29. 2017

내 여행 동반자에게 쓰는 편지 2

여섯 살이었던 딸에게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우리의 남미 여행이 여섯 살의 너에게 무리였음은 분명했다. 리조트로 가는 가족여행도 아니었고 배낭 메고 험한 여행지를 누비는, 문자 그대로의 '배낭여행'이었으니까.

여행 중에 힘들다고 집에 가자고 벌렁 드러누워 버리면 어쩌지? 음식 잘못 먹고 배탈이 나거나 해충에게 물려 병이라도 나면 어쩌지?  위험한 곳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사람 많은 곳에서 손을 놓쳐서 헤어지기라도 하면? 귀여운 동양인 어린애라고 누가 데려가기라도 하면??? 너를 떠올리며 험한 곳으로의 장기여행을 생각하니 온갖 걱정거리가 끝도 없이 밀려들었었단다.

열여섯 살 오빠에게는 "너 여행 갈래? 한번 생각해봐. 네가 가기 싫다면 안 갈 거야."이렇게 묻기라도 했지만 너에게는 그런 의견조차 묻지 않았지. "여행 가자!"로 충분했으니까. 넌 워낙 엄마 껌딱지였거든. 잠깐 쓰레기봉투 버리러 1층에 내려가거나 집 앞 가게에 우유 한 병 사러 가더라도 꼭 엄마를 따라다녀야 했으니 그런 너를 떼어 두고 지구 반대편으로 갈 수는 없잖니. 그저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우리가 여행할 곳을 알려주고 갈라파고스 책을 읽어주면서 신기한 것도 많고 신나는 일들이 많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외에는 달리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단다. 

그런데 너에게는 나도 모르는 모험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일까? 하루가 꼬박 넘게 걸리는 장거리 비행에도, 다른 말을 쓰고 다른 피부색을 가진 낯선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음식에도, 불편한 잠자리에도, 장거리 야간 버스에서도, 혹한이나 혹서의 날씨에도 불평은커녕 세상이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라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이것저것 만져보고 물어보며 오빠와 엄마를 열심히 따라다녔단다. 사진을 찍자고 하면 네 오빠보다 더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했고, 무엇보다 엄마가 매일 아침 싸들고 다녔던 볶음밥 도시락이 질렸을 법도 했을 텐데 언제나 맛있게 먹곤 했지. 

오히려 너의 넘치는 호기심 때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단다. 칠레 아따까마 사막 달의 계곡에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진창에 발이 빠져서 그 모래와 소금이 엉겨 붙어 날카로운 사막 길을 신발도 못 신고 내내 양말 발로 걸어 다녀야 했고,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는 온통 새하얀 캔버스처럼 펼쳐진 고농축 소금물 위를 잘박거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넘어져서 온몸에 그 고통스러우리 만치 짠 소금물을 뒤집어썼고, 페루 꾸스꼬의 성스러운 계곡에서는 인디오 전통방식의 천연염색 시연을 구경하다가 먹어서는 안 되는 선인장 염료를 몰래 찍어 먹다가 들켜서 혼나기도 했지. 에콰도르 바뇨스에서는 절벽 끝에 매달아 놓은 '세상 끝 그네'를 타러 갔는데 쳐다보기에도 아찔한 절벽 끝에서 그네를 탄다며 좋다고 뛰어다니는 너를 잡아서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흘렸고, 콜롬비아 깔리에서는 광장에서 열리는 민속춤을 함께 추느라 혼이 쏙 빠져서 보고타로 가는 버스 시간에 늦을 뻔했던 적도 있었지.

그래서 힘들었냐고? 

아니. 

그때 말하진 못했지만 그렇게 마음을 활짝 열고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네가 정말 예쁘고 부러웠단다. 여행이 중반을 넘기면서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면 어김없이 "이제 다른 곳으로 가는 거야? 너무 아깝다."라고 말하며 여행지를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너를 보며, 우리 중 가장 제대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어쩌면 너 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단다.

누가 먼저 시작했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데, 힘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던질 때면 "수고했어, 오늘도."라고 말하며 서로의 고단함을 위로했었던 거 기억하니? 하루 종일 너를 안고 업고 다니느라 지쳐서 널브러져 있다가도 너의 그 작고 예쁜 위로의 말 한마디에 다시 기운을 차리곤 했던 그 날들이 내겐 우리 여행의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단다. 그렇게 다져진 우리의 동지애는 세상 끝날 까지도 절대 깨지지 않을 거야.  


물론, 어린 너와 함께여서 우리 여행이 제약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긴 해. 

네가 어리지만 않았다면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수에서 보트를 타고 너와 함께 폭포수 속을 통과해 볼 수도 있었겠고, 모레노 빙하 위를 걷는 빙하 트레킹도 할 수 있었을 테고, 남부 빠따고니아의 대자연에서 비박 트레킹을 하며 지상 최고의 위대한 대자연이 간직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도 있었겠지. 칠레 아따까마 사막에서 달의 계곡에 올라서서 사막에서의 일출 볼 수도 있었겠고, 볼리비아 라빠스의 데스 로드를 자전거로 달려 볼 수도 있었을 테고, 나무 카약을 타고 아마존에 들어가 아마존이 숨겨둔 보물들을 만날 수도 있었겠고, 콜롬비아의 깊은 밀림 속 커피 농장에 가서 커피 향 가득한 원시림 속에서 살아보는 경험도 할 수 있었겠지. 누굴 탓하겠어. 오빠보다 열 살 어리게 널 낳은 나 자신을 탓해야지. 하지만 여행 당시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기회들이 너무도 크게 느껴져서 아쉽기만 했단다. 

그런데 말이야, 이런 여행을 일생에 단 한 번이라고 단정 지을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그때 못했던 것들을 나중에 네가 오빠만큼 컸을 때 다시 가서 하면 되지 않겠어? 아쉬움을 새로운 꿈을 꾸는 원동력으로 삼으면 되니 그리 아쉬워할 필요 없겠다, 그렇지? 


여섯 살의 너를 데리고 배낭여행을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하나 같이 "어린애 데리고 여행가 봐야 애도 엄마도 고생스럽기만 하고 나중에 자라면 기억하지도 못 할 거야."라며 걱정을 했었단다. 여행 중에 만났던 누군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여행이냐고 걱정이 담긴 질책을 하기도 했고. 

나라고 그런 걱정이 없진 않았어. 인생에서의 고생은 그것이 무엇이든 고생한 만큼 값진 것이니 걱정스럽지 않았는데, 그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후에 자주 여행 이야기를 하고 사진첩도 같이 들여다보고 했지만, 네 기억을 붙잡아 두기엔 역부족이겠다 싶어 고민 끝에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내기로 했단다.

해외 파견 근무 중인 아빠를 대신해 혼자 이사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오빠와 초등학생이 된 너를 돌보며 틈틈이 여행기를 정리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막상 글을 쓰려니 부족한 내 글 솜씨 때문에 자꾸만 더뎌져서 여행을 다녀온 지 2년이 지나서야 마무리가 됐단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2년 동안 공들여 썼다면 좋았을 텐데, 살아가는 일에 우선순위가 밀려서 2년이 다 지나가는 시점이 되어 더 지체되면 안 된다는 다급한 마음에 벼락치기 공부하는 심정으로 쓰인 글이라 덜 다듬어지고 어설픈 글이겠지만, 우리가 함께한 순간들로 채워진 글이니 그것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글이 되리라 믿는다. 


제나야,

힘든 여행길에 함께 해줘서 고마웠다. 

엄마는 네 작고 고운 손을 잡고 그 넓은 세상을 누빌 수 있어서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행복했단다.

여행에서 여섯 살의 네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네 인생에서도 새로운 일 앞에 두려움 없이 담대하길 바란다. 네가 살고 있는 그 시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그 시간을 만끽하고 채우길,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고 지친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따듯한 사람으로 자라길 기도한다. 

나는, 너의 그 빛나는 인생 여행에 동반자로 네 옆에 서고 싶다. 그때의 우리처럼.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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