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미술관 외 - 2015/05/06(수)

by 민경화

어젯밤의 탱고 공연으로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제 이곳은 그저 그런 회색도시도, 맥 빠진 사람들이 하루하루 피곤한 삶을 연명하는 도시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유럽을 흉내 낸 도시도 아닌, 자신만의 색채를 가진 매혹적인 예술의 도시가 되어있었다.

이 멋진 도시에서의 마지막 하루는 미술관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숩떼 D선의 Scalabrini Ortiz역에서 내려 40분을 걸어 미술관에 도착했다. MALBA라는 애칭을 가진 라틴아메리카 미술관은 2001년 아르헨티나의 한 재벌이 중남미의 현대 미술을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해 설립한 곳으로 그의 개인 소장품과 멕시코 벽화미술과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 그의 연인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작품과 그 밖의 중남미 미술계의 굵직한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술관에서 우리의 눈길의 사로잡았던 것은 3층에서 전시되고 있는 설치미술과 행위예술이었다.

첫 번째 작품은 세평 남짓한 방의 한가운데에 한 사람이 사방으로부터 연결된 수십 개의 투명한 줄을 몸에 매달고 서 있는 것이었다. 그 줄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매달려 있었는데 그 사람이 10초에 한 번씩 몸을 움직이노라면 그 줄에 매달린 온갖 물건들이 떨그렁 대며 소리를 내고 기름칠이 덜된 기계가 삐걱대며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바깥 공간으로 끄집어내어 표현하고자 했던 것도 같기도 하고, 사람이 기계나 로봇처럼 자기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의지에 의해 조종당하고 사는 현대 사회를 사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다음 전시관에는 여러 가지 매끄러운 조형 작품과 흑백의 선으로 표현된 단순한 회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 여성이 30초에 한 번씩 천사처럼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그 공간을 소리로 채웠다. 대여섯 소절 되는 단순한 노래였는데 노래가 끝나면 그 노랫말을 시처럼 읊조렸다. 가사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공간의 회화작품과 조형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음성과 함께 조합해내고자 하는 시도가 참신하고 인상적이었다.

다른 공간에서는 스무 명 남짓한 젊은이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시계의 시침과 분침 초침처럼 하나의 구심점을 기준으로 대형을 바꾸거나 동작을 바꾸면서 계속 돌았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돌다가 그중 한 팀이 돌아서서 반대방향으로 돌기도 하고, 발을 구르며 똑같이 걷기도 하고, 머리와 팔, 다리로 반복된 동작을 하며 제자리를 걷기도 하고, 다른 팀은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손뼉을 치기도 하고, 모두 동그랗게 손을 잡고 돌기도 하고, 똑딱똑딱 시계처럼 계속 발소리나 손뼉으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시간이란 개념을 시간과 공간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일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에 대해 아이들과 얘기하며 재미있게 관람했다.

9905683359EF068A34C8E6 미술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미술관에서 나와 우리가 향한 곳은 레콜레타 묘역이었다.

부자들의 묘지 가운데 자리 잡은 에비따(Maria Eva de Peron)의 무덤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는데, 택시 기사가 레콜레타 묘지가 아닌 에비따의 동상이 있는 곳에 잘못 내려준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 근처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레콜레타 묘지 안에 있는 그녀의 무덤에는 가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99C0C63359EF076B2E83D1 철제 울타리 안으로 보이는 에비타의 동상과 추모비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할리우드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에비타의 파란만장했던 일생은 극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시골 사생아 출신이었던 그녀는 도시로 가출해서 삼류배우가 되기까지 그녀의 성공에 도움이 될 만한 남성들의 품을 전전했다. 이후 후안 페론의 부인으로서 공산주의적 성향을 띤 페론주의와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사회적으로 소외한 빈민들과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남편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정권을 잡은 후 9년 동안 가난한 국민을 위해 내걸었던 약속은 저버리고 극에 달한 사치와, 수많은 비리와, 그녀와 페론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을 숙청하는 등 온갖 정치적 독재를 저지르다가 병에 걸려 34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사후에도 그녀에 대한 민중의 비이성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후안 페론과 그의 새 부인까지 대통령으로 당선될 만큼 그녀는 사회적 약자 계층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그녀의 악행이 밝혀진 지금까지도 그녀를 성녀로 추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현상은 민중이 우매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과 같은 처지였던 성공한 권력자로부터 받았던 작은 관심과 이해와 그로 인해 가져보았던 미래에 대한 희망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하고 간절했는지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마지막 방문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명물 중 하나인 102년 된 오페라 극장을 서점으로 사용하고 있는 El Ateneo였다.

원래 오페라 극장이었다는 이 건물은 1층의 중앙부에 위치했을 무대를 2층과 3층에서도 볼 수 있도록 가운데가 둥그렇게 빈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천정에 멋진 샹들리에가 길게 드리워지고,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서 책을 고르고, 2층과 3층의 난간에서 1층의 책 읽는 사람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서점은, 밤이 되면 오페라의 유령이 나와 책을 읽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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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제나의 색칠공부 책을 하나 사서 밖으로 나오니 거리에는 벌써 퇴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숩떼 타는 곳으로 가는 길바닥에는 탱고 스텝이 그려져 있었다. 사람 가득한 그 거리에서 탱고 스텝을 밟아 보겠다고 깡총거리는 형주와 제나의 손을 잡아끌고 숩떼에 몸을 실었다. 대도시의 퇴근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여행자로 존재하는 우리의 모습은 아직도 낯설다.


993F053359EF09CC0BA1C8 거리에 그려진 탱고 스텝
995FA03359EF09CE08D6AD 지하철 역 통로에 그려진 만화 캐릭터. 눈에 익숙한데, 아르헨티나 만화가의 작품이었나?...
9950973359EF09D0379650 어젯밤 탱고쇼를 관람했던 레스토랑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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