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 바른 할머니표 김밥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바릴로체로 이동-2015/05/07(목)

by 민경화

한국에서 온 배낭여행자들은 대부분 콜롬비아나 페루에서 시작해서 남미 대륙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여행한다. 그래서 숙소에 머무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남미 여행의 일정을 거의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북미대륙, 혹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들과 반대방향으로 브라질에서 출발해서 시계방향으로 여행을 시작했으니 남미 각지를 여행한 사람들로부터 앞으로 여행할 곳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바릴로체로의 여행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당시 인터넷상에 떠도는 바릴로체 근처의 화산 폭발에 대한 이야기였다. 화산이 폭발로 인해 그 화산 먼지 때문에 공항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바릴로체에서 올라온 여행자들에게 물어보니 공항도 정상적으로 이용 가능하고 여행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했다. 에스파뇰을 하지 못해 현지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는 아주 소중한 정보들이었다.

겨우 엿새를 머물렀을 뿐인데 아이들은 숙소의 할머니와 정이 듬뿍 들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주셨던 외할머니와 지낸 기억이 있어서였는지 아이들은 어디에서든 연세 드신 할머니를 만나면 유난히 잘 따랐다. 숙소의 할머니도 한국에 두고 온 손주들 생각에 우리 아이들을 각별히 예뻐해 주셨다. 헤어지는 게 아쉽다며 바릴로체로 떠나는 우리를 위해 배고플 때 먹으라고 흰쌀밥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해 김으로 둘둘만 김밥을 싸주셨다. 그 따듯한 마음에 감사드리며 타국에서 부디 건강하시고 한국에 돌아오시면 꼭 뵈러 할머니의 고향인 영주로 가겠다고 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다.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해 티켓팅을 마치고 탑승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라플라타 강이 흐르는 풍경이 보이는 창에 앉아 할머니가 싸주신 김밥을 나눠먹었다. 공항 창으로 비쳐 드는 햇살과 아카시아 나무 그늘이 예뻐서 우리는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구석 창가 쪽에 아예 자리를 잡았다. 제나는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어제 서점에서 산 색칠공부 책에 색연필로 색칠을 하고, 형주는 해가 드는 따듯한 창가에 배낭을 베고 누워 눈을 가리고 낮잠을 청했고, 나는 아이들 곁에서 햇빛에 반사하며 흐르는 흙빛 강물과 강바람에 잎사귀를 흔들며 서 있는 강가의 아카시아 나무를 바라보며 느긋한 한때를 보냈다.


9918A33359F2974E0F8AD4 할머니의 정의 듬뿍 담긴 김밥을 나눠먹는 남매
99A1D13359F297500951F5 부에노스아리레스 공항 탑승 대기실 창가 풍경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떠난 비행기는 두 시간 만에 바릴로체(Carlos de Bariloche)에 도착했다.

바릴로체 공항은 바릴로체 시내와 거리가 멀어서 택시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해가 있었는데 가을로 들어서서 해가 짧아진 탓이었는지 바릴로체 시내에 도착하니 하늘이 노을의 끝자락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바릴로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숙소는 1004 호스텔이다. 여행 가이드북은 물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만났던 여행자들도 대부분 이 숙소를 강력히 추천했다. 바릴로체로 떠나기 3일 전에 미리 예약해두었기 때문에 별 걱정 없이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숙소를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방을 배정받아 짐을 풀고 있는데 관리인이 들어와서는 호스텔 규정상 아이들을 받을 수 없으니 오늘 밤만 머물고 내일 아침에 다른 숙소를 구해서 나가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서 무슨 그런 규정이 있냐며 반박도 해보고, 아이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먹이려고 호스텔에 들어왔으니 이해해달라고 사정도 해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숙소에서 쫓겨나는 꼴이라니... 신세 참 처량하다.

990AC33359F29A991C49EE 우리 방 창 밖으로 보이는 바릴로체의 저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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