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페루에서 인기 스타 되다.

페루, 꾸스꼬: 인띠우아나 신전, 오얀따이땀보- 2015/06/28(일)

by 민경화

내일이 대망의 마추삑추 입성의 날이다.

오늘은 계곡의 맨 아래 삐삭 마을과 그 위 험준한 산 위에 자리한 계단식 경작지 안데네스, 그리고 그 산 정상에 위치한 신전인 인띠우아따나에 들렀다가 또 다른 종교적 구조물이 있는 오얀따이땀보로 이동 후 거기서 기차를 타고 마추삑추로 이동할 예정이다. 삐삭(Pisaq)의 명물은 지금도 예전의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삐삭 원주민 시장이다. 오늘이 가장 큰 시장이 열리는 일요일이라서 삐삭 원주민 시장에 꼭 들러보고 싶었으나, 유명 유적지로의 편리한 이동성 때문에 단체 투어를 선택한 우리는 아쉽게도 삐삭 원주민 시장에 들러볼 수 없었다.

버스는 꾸스꼬 시내를 빠져나온 후 한 시간을 달려 성스러운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버스가 우루밤바 강의 건너편에서 인띠우아따나 신전이 있는 산을 바라보며 계곡 쪽으로 난 길을 달려 내려가자 건너편 산에 조각된 안데네스의 풍경이 눈 앞으로 다가오듯 펼쳐졌다.

버스는 계곡 아래로 흐르는 우루밤바 강을 건너 산 아래 마을 삐삭을 통과한 후 인띠우아따나 신전이 있는 산으로 난 꼬불꼬불한 산 길을 힘겹게 올라 산의 정상부에 도착했다. 인띠우아따나 신전은 태양과 달을 위한 신전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거의 파괴되고 흔적만이 남아 있어서 신전 자체는 그다지 볼만한 것이 없었다. 다만 산의 정상에서 아래로 펼쳐지는 계단식 안데네스와 산을 둘러싸고 있는 험준한 산들을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의 역할만이 남은 듯했다.


9966843359FAE8E60F1CFD 삐삭의 계단식 경작지. 온 산을 거의 다 뒤덮고 있다.
9935C33359FAE8EC283BEE 이 험준한 산들이 성스러운 계곡을 이루고 그 계곡 아래로 우루밤바 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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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E1183359FAE8EF04768F 인띠우아따나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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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우루밤바에서 잠시 쉬었다가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로 향했다.

우리가 삐삭과 오얀따이땀보이를 포함한 이 투어 상품을 선택했던 실질적인 이유는 마추삑추로 이동하는 여러 방법 중 가장 저렴한 방법이 이곳 오얀따이땀보에서 열차로 이동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비용적인 면에서나 시간적인 면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으나 정작 기대했던 삐삭 마을의 일요시장을 보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오얀따이땀보는 안데네스와 달리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는 거칠고 메마른 바위산의 한 쪽 면을 거대한 돌계단으로 만든 곳으로 농사보다는 마을을 지키는 요새나 종교적 의식을 치르는 구조물로 보인다. 돌로 만든 계단은 2Km 가까이 산을 향해 건설되어 있는데, 계단이 시작되는 맨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산이 온통 돌계단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다. 그 위로 깎아지른 듯 험준한 바위산 중턱에 성처럼 보이는 건축물이 서너 군데 있었는데, 그곳까지 올라가는 것만도 어려웠을 법한 위치에 건물을 지었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마추삑추행 열차의 출발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우리는 돌계단의 3분의 1 지점 까지만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야만 했다. 아쉬운 마음에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계단 아래의 유적 광장을 둘러봤다. 조각 중인 거대한 돌들이 작업장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거대한 계단 건축물은 미완성 상태에서 멈춘 모양이다. 현대의 계획도시처럼 구획별로 길과 집들이 모두 반듯하게 건축되었고 관개수로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문득 궁금증 하나가 떠올랐다. 잉까 문명이 멸망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현대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들이 계획했던 오얀따이땀보의 구조물이 완성되었을 테고 그 아래 마을에서는 잘 갖춰진 시설 안에서 주민들이 편리하게 생활하며 평화롭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발달된 건축 기술이 다른 나라에도 전파되어 인류는 지금의 주거문화 보다 더 아름답고 효율적인 집을 짓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잉까의 발달된 농업 기술로 더 다양하고 건강한 농작물이 전 세계인의 식탁을 지금보다 더 풍성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침략자가 정복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를 존중해 줄만한 아량을 가졌었더라면, 어쩌면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았을까.


99D52E3359FB011326A7FB 오얀따이땀보 마을의 전경
994D763359FB011534D2B4 돌계단 위 험준한 바위산. 그 중턱에 성들이 건설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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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34B3359FB011D221976 돌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9941323359FB012004F903 잉까의 돌계단 축재 방식은 보고 또 봐도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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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E3BD3359FB01251E71A6 유적 광장. 조각 중인 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건설 중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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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B1593359FB08350CB615 수로가 마을 전체로 이어져 관통하고 있다.
995AF43359FB0837148A15 오얀따이땀보 마을 전경
99B0AB3359FB0839242E4E 기차역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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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촉박하게 열차에 올라탔다. 기차에서 주는 간식을 먹으며 창밖 풍경을 바라보니 목적지인 아구아깔리엔떼스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산세가 점점 더 험준해졌다. 그럴수록 마추삑추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기차가 아구아깔리엔떼스에 도착했을 때 산 아래 마을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볼리비아 태양의 섬에서 만났던 분이 이곳의 호텔에 실수로 두고 왔다던 여행 가이드 책(Lonely planet, Peru)을 찾아 쓰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일단 그 호텔에 들러 그분의 책을 찾아 받아 들고는 그 책에서 추천하는 숙소로 찾아가 방을 잡았다.

부실했던 점심 이후로 주렸던 배를 채우기 위해 온 동네를 기웃거리다가 현지 아이들로 꽉 들어찬 식당이 있기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치껏 주문을 하고 음식을 먹고 있는데 무슨 운동회를 끝내고 단체로 온 아이들 손님으로 보이는 열두어 살 정도의 어린 여자 아이들의 수다가 식당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끊임없이 우리 쪽으로 시선을 던지더니 이내 한 아이가 내게로 와서 제나랑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제스처를 했다. 그러라고 하자 그쪽 테이블에 앉았던 아이들 열댓 명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줄을 서서 제나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갑자기 한류스타 급으로 인기가 급상승한 제나는 그 아이들과 일일이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식당에서의 유쾌한 소동이 끝나고 동네 산책을 할 겸 내일 아침거리도 준비하기 위해 숙소가 있는 골목으로 걸어 올라갔다. 작은 규모의 인조 잔디 구장에서 가족들이 아이들과 함께 공놀이를 하며 주말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그 앞에 주전부리를 파는 가판대가 있어서 빵과 음료수를 주문해 먹었는데 비닐봉지에 빨대를 꽂아 파는 빨간 음료수의 식감이 독특했다. 달큰하고 미지근한데 뭔가 끈적하면서 미끌미끌한 건더기가 씹히는 느낌이 재미있어서 아이들과 셋이서 서로 번갈아 맛을 보았다. 우리가 묘한 표정을 짓자 우리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가판대 아줌마가 한 국자 더 퍼 담아주셨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온통 캄캄해서 거대한 산의 검은 실루엣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추삑추 바로 아래 마을에서 잠을 자려고 누우니 숙소 바로 앞으로 흐르는 계곡물소리만이 조용한 산마을을 채웠다. 촌스럽게도 속리산 아래 마을에 와 있는 기분이다.


9947753359FB1067223216 아구아깔리엔떼행 기차
99FCBD3359FB106A2955BB 기차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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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D833359FB1181085809 아구아깔리엔떼 마을의 현지인 식당. 야채 국수와 닭고기 요리를 주문했다.
992EC03359FB1186257B21 제나랑 사진 찍겠다고 몰려든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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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F7473359FB2AAD07DE70 페루에서만 맛볼수 있는 잉까 콜라
99FAE63359FB2AB031FDAD 아구아깔리엔떼의 메인 광장
9916D53359FB118D105BFC 노점에서 파는 오묘한 맛의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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