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도대체 왜?

페루, 마추삑추 - 2015/06/29(월)

by 민경화

남미 하면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르는 하나의 이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잉까 제국의 찬란한 석조 기술의 정수, 산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인 공중도시 등등 마추삑추를 수식하는 이름은 정말 많다. 드디어 오늘 그 신비한 잉까 제국의 숨겨진 도시로 입성한다.

올라갈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을 깨웠다. 언제나 밤이 되면 아이들은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이 숙면을 취했지만 일정이 있는 날 아침에는 잠에서 깨자마자 신속하게 준비하는 것이 이제 습관이 되었다.

아침으로 사과와 빵을 먹고 마추삑추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 버스 타는 곳으로 향했다. 대기줄이 벌써 길었으나 다행히 배차 간격이 좁아서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차 한 대도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산길을 꼬불꼬불 올라 매표소에 도착하니 서너 명이 가이드를 하겠다고 달려들었다. 그중 침착해 보이는 여성 가이드에게 가이드를 부탁하고 미국에 거주하는 젊고 지적인 인도 커플과 일행이 되어 마추삑추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안데네스(계단식 경작지)와 식량 저장소였다. 그곳에서 위로 올라가 망지기의 집을 지나니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왔다. 안데네스 건너편으로 미니어처처럼 작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던 석조 도시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더니 이내 성벽이 되고, 집이 되고, 신전이 되고, 천문 관측소가 되고, 광장이 되고, 수로가 되고, 그 모든 것들을 잇는 계단이 되었다.

해발 2,400미터에 위치한 공중 도시라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서 알아지는 것과는 천지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자칫 떨어지면 시신도 못 찾을 만큼 까마득히 깎아지른 절벽 같은 산 위,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인 곳에 그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돌들을 가져다 깎고 맞춰서 이렇게 반듯하고 균형 잡힌 도시를 건설했다니, 잉까 제국의 왕이 얼마나 대단한 절대적 힘을 가졌는지를 가늠조차 할 수 없다.

145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한 시기이고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들고 동로마제국이 멸망하던 시기이다. 사실 잉까 제국이라고 하면 기원전부터 존재해왔기 때문에 마추삑추도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전, 기원전 언제쯤 건설되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미에 상륙한 1530년대로부터 불과 80년 정도 전에 건설되었다고 하니, 어쩌면 잉까 제국의 건축기술이 총망라된 마지막 건축물이 아니었을까.

한 번 돌아보고 돌아가기가 아쉬워서 더 돌아보고 싶었으나 더운 날씨에 돌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지친 제나를 등에 업고 다니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자니 체력이 금세 바닥나서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였다. 우리는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망지기의 집으로 올라가 거기 앉아서 발아래로 아찔하게 펼쳐진 잉까의 숨겨진 공중도시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도대체 잉까인들은 왜 이 높은 곳에 돌로 도시를 건설했을까? 선택받은 자들이 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한 것일까? 백성들의 풍년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려고? 아니면 적과의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2010년대를 사는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현실적이고 비경제적이고 비논리적이다.


991D753359FB19B62B1A63 마추삑추 초입
99474D3359FB19B91392E0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공중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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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D03C3359FB19BB05E1A2 도시 옆의 계단식 경작지 안데네스
99CBC43359FB19CA321A74 반대편 산. 사방 어디로 보아도 올라오기에 더 수월해 보이는 곳은 없다.
99A11C3359FB1DD5132CD5 도시로 들어가는 문
9998443359FB1DDB14DBBC 집 위를 덮었던 지붕의 나무 뼈대와 지푸라기는 유실되고 돌로 된 벽체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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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43D03359FB222A17896A 지붕을 복원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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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구아깔리엔떼스로 내려와 늦은 점심을 먹고 광장에서 오얀따이땀보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이날 저녁에는 칠레와 페루의 축구시합이 있었는데 광장 근처의 모든 식당과 까페에서 경기를 보며 페루를 응원하느라 온 마을이 들떠 있어서 여행자들이 소외되는 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역시 남미의 축구에 대한 사랑은 뜨겁다.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기차에서 자리 잡고 앉으니 올 때 근처에 앉았던 눈에 익은 사람들이 우리 일행을 발견하고는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네왔다. 어떤 청년은 우리를 뽀또시에서 봤었다며 다시 만나 반갑다고 아이들과의 여행은 어떤지 안부를 물었다. 형주는 옆에 앉은 이스라엘 여성과 함께 가족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잠든 제나를 토닥이다 보니 기차는 어느새 오얀따이땀보 역에 도착했다. 거기서 버스로 갈아타고 꾸스꼬의 숙소에 들어와 보니 벌써 한밤중이 되어 있었다.

이불속으로 파고들며 여행지에서 스쳐 지나가는 짧지만 따듯했던 사람들과의 인연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지금쯤 어느 지붕 아래에서 지친 몸을 누이고 있을 그들의 여행에도 행운과 놀라운 발견들이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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