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 센트로 - 2015/04/22(수)
동양인의 거리
어젯밤의 소동으로 다소 의기소침한 기분이 되었지만, 괜히 아이들에게 그런 내 마음을 들킬까 봐 부러 씩씩하게 과일과 빵으로 아침을 먹고 가방에 간식과 물을 챙겨 넣고 센트로로 나섰다.
센트로에서 처음 들어선 곳은 '동양인의 거리'였다. 거리의 가로등이 동양의 청사초롱 모양이었고, 거리에서는 중국 상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과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동양인을 만났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했지만, 한국인만 빠진 상파울루의 동양인 거리를 걷는 기분이 썩 즐겁지만은 않았으니 이건 또 무슨 못난 자존심인지 모르겠다.
그동안 밥심으로 살아왔던 아이들이었기에 빵과 과일로 점심시간까지 버티기를 기대했던 건 무리였을까. 이제 오전 11시를 갓 넘겼을 뿐인데 아이들은 벌써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어를 모르는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음식 사진이 걸린 식당뿐이었다. 동양인의 거리에서 북쪽 센트로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는 길에 친절하게도 음식 사진이 걸린 식당이 있기에 안으로 들어서니 진한 눈 화장을 한 동양인 여주인이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종업원이 가져다준, 글씨와 숫자뿐인 메뉴판을 테이블에 두고 밖에 있는 음식 사진 중에서 메뉴를 고르고 있자니 그 여주인이 따라 나와 친절하게 '포르투갈어'로 음식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녀의 친절한 설명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알아듣지 못하는 티를 내기는 미안해서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다 듣고는 사진 중에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두 가지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곧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그중 가장 맛있어 보였던 감자튀김을 하나씩 입에 넣고 나서 우리 셋은 동시에 "와, 진짜 맛있다!"를 외쳤다. 그간 햄버거 체인점에서 먹어 본 감자튀김과는 차원이 달랐다. 뽀얗고 도톰한 모양에 따듯하고 적당히 바삭한 식감, 고소하고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게 퍼지는 풍미는 감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어서 소금이나 토마토케첩을 찍어서 그 고유의 맛을 훼손시키기 싫을 정도였다.
"감자의 고향이 남미의 안데스라더니, 확실히 원산지에서 자라는 감자 맛은 역시 다르구나."
우리가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지켜보던 여주인은 종업원을 시켜서 감자튀김만으로 가득 채운 접시를 하나 더 우리 테이블에 올려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 서자 여주인은 우리에게 "니뽕?"이라고 물었다. 형주가 "꼬레아"라고 대답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따듯하게 웃는 얼굴로 아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같은 동양인에 대한 반가움을 표했다. 한 동안 감자를 먹을 때마다 인심 좋은 그녀의 미소와 이 식당의 환상적인 감자튀김 맛이 생각날 듯하다.
대성당과 쎄 광장
동양인의 거리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대성당과 광장이 있는 본격적인 센트로가 시작된다. 햇빛에 바랜 에머럴드 색의 둥근 돔 지붕과 뾰족한 첨탑이 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평일 낮인데도 기도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성당 내부는 높은 대리석 벽면이 더 높은 천정의 측면에 뚫린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는데, 위에서 아래로 길게 수놓은 화려한 스테인글라스 창이 그 단조로움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대성당 바로 앞에 위치한 쎄 광장에는 키 큰 야자수들이 대성당을 가운데로 두고 양쪽으로 길게 도열해 있었다. 비 오는 날씨의 어두운 분위기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부랑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긴장된 발걸음으로 서둘러 걸어 나와야 했다.
11월 15일 거리, 썽 벤뚜 성당, 그리고 마르찌넬리 빌딩
쎄 광장에서 길을 건너면 11월 15일 거리로 이어진다.
거리 이름에 날짜라니, 낯선 작명법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전승일이나 독립 기념일, 정부 수립일이나 헌법 제정일 등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날을 따서 거리나 공원의 이름으로 부르는 이런 방식은 남미만의 고유한 지면 작명법인 듯하다.
이 거리는 차가 없는 보행자 거리로 거리의 양옆에 현대식 고층건물들과 100년 이상 되어 보이는 오래된 건물들이 함께 늘어서 있다. 다국적 기업들이 들어선 이 거리의 1층 입구에는 건물을 지키는 체격이 건장한 경호원들이 검은 양복을 입고 서 있었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화이트칼라들과, 낡은 옷차림에 위축된 표정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는 사람들이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11월 15일 거리에서 동쪽으로 걸어가면 썽 벤뚜 성당이 나온다. 대성당보다 규모는 작지만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고 더 엄숙한 분위기다. 성당의 입구에는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앞두고 그의 방문을 환영하는 대자보가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남미인들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성당 바로 앞에 주전부리를 파는 가판대가 있어서 초콜릿을 듬뿍 바른 츄러스를 사 먹으러 썽 벤뚜역 앞을 지나가는데, 역 입구에 앉아 있던 부랑자 할머니가 다가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츄러스를 건네자 그녀는 그걸 받아 들고 역으로 들어갔다. 부랑자를 만나면 그저 두려울 뿐인 새 가슴 여행자인 우리에게도 할머니의 그런 행동은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앞섰다.
다시 11월 15일 거리로 돌아와 서쪽으로 걸어가 마르찌넬리 빌딩으로 향했다. 1927년 부유한 이탈리아 이민자인 조세프 마르찌넬리가 지었다는 이 건물은 건축 당시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고층 건물인 동시에 남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이 건물의 옥상에 오르면 상파울루라는 거대한 도시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해서 1층의 방문자 목록에 이름을 올린 후 제복 차림의 안내원이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검은 비구름에 뒤덮인 도시의 풍경은 다만 어둡고 황량했다. 여느 대도시와 다를 바 없이.
부딴딴 독사 박물관
센트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센트로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부딴딴 독사 연구소로 향했다. 4시에 연구소 입구에 도착해 거기서 내려 서둘러 전시관으로 향했는데, 연구소가 워낙 넓어서 4시 반경에야 전시관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매표소 직원이 우리를 막아섰다. 5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들여보내 줄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왜 못 들어가게 하느냐.",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먼 길을 왔는데 상파울루 일정상 부딴딴에 다시 올 수는 없다.", "아이들이 정말 오고 싶다고 해서 왔는데 이렇게 돌아가면 아이들이 많이 실망할 것이다."라며 한참을 설득했지만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온 한 청년이 우리 사정을 전시관의 상관에게 보고하고는 다른 직원들의 퇴근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자신이 직접 우리를 데리고 전시관을 돌겠다고 나서 주었다. 그는 미구엘이라는 이름의, 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는데, 전시관을 돌며 뱀의 종류와 특징, 번식 방법 등에 대해 영어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연구소에는 뱀뿐만 아니라 전갈, 독거미 등 독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과 온갖 종류의 파충류가 전시되고 있었는데 시간 관계상 연구소 내의 모든 건물을 다 돌아보지는 못했다. 미구엘의 설명에 따르면 독을 이용해 치료약을 개발하는 혈청 전문 연구소와 병원도 있는 이곳은 세계 최대의 독 관련 전문 연구기관인 셈이다. (형주가 어렸을 때 읽었던 마블사의 만화책 '헐크'에서, 주인공이 감마선에 노출되어 괴물로 변한 후에 해독제를 구하러 브라질로 간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아마 이곳 부딴딴 독사연구소를 염두에 두고 했던 대사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의 사정을 듣고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민 미구엘이 아니었다면 괜한 헛걸음을 했다며 관람시간을 고무줄로 운영하는 브라질 공무원의 행태에 대해 지탄하며 씁쓸하게 발길을 되돌려야 했을 것이다. 그의 친절과 배려 덕분에 하루를 구했다.
역시 어디서나 사람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