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상파울루 도착 - 2015/04/21 (화)
브라질의 상파울루행 비행기로 환승하기 위해 미국 LA에 내렸다가 3일 동안 LA에 사는 친구 집에 머물렀다.
친구 부부의 배려로 태평양을 넘어오는 비행으로 인한 피로도 풀고 배낭도 다시 풀어서 불필요한 짐은 덜어내고, 꼭 필요한데 미처 챙겨 오지 못한 짐들을 챙겨 넣으며 앞으로의 길고 험난한 여행을 위해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졌다.
출발하면서 인천공항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해 들은 친구 부부는, 그렇게 칠칠치 못한 엄마가 아이들 데리고 어떻게 그 험한 여행지를 5개월 동안 여행하려고 그러냐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괜찮아. 난 실전에 강하니까 걱정할 것 없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듯 씩씩하게 말했지만 실은 나도 긴장되고 떨렸다.
그들의 따듯한 배웅을 뒤로하고 우리는 상파울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 서부 도시 LA에서 전날 오전에 출발한 비행기는 12시간을 넘게 날아 다음날 정오경에 남미 대륙의 동부에 위치한 브라질의 상파울루 공항에 도착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서에서 동으로 대각선을 그리며 횡단 비행한 셈이다.
여행하면서 현지인의 집에 머물며 현지와 현지인에 대해 더 많이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에서 미리 카우치 서핑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두었었는데, 처음으로 내 요청에 답하며 우리의 호스트가 된 사람은 우리의 첫 여행지인 브라질 상파울루에 사는 올디마(Oldimar)였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그의 집으로 이동하는 동안 오랜 비행에 지친 아이들은 택시에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 들었고, 나는 홀로 깨어 설레는 마음으로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도시 외곽의 짙푸른 열대 숲, 뜨거운 공기, 도심의 메마른 강, 이국적인 집과 나무들,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 과감한 옷차림의 여성들, 담벼락에 그려진 강렬한 그림과 성난 듯한 글씨들... 그런 풍경을 한 시간 정도 달려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올디마의 집에 도착했다.
"올라, 올디마!"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올디마는 우리의 인사에 함박웃음으로 답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과 침실 옆에 있는 손님방으로 우리를 안내해줬는데 2인용 침대가 놓여 있고 창문 밖으로 잘 가꿔진 가로수와 단정한 주택가가 올려다 보이는 쾌적한 방이었다. 우리가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쇼핑몰에 가방을 사러 갈 예정이라며 원한다면 함께 가자고 하기에 그를 따라나섰다.
사람들로 붐비는 쇼핑몰은 우리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조언을 반영해 가방을 골랐고, 우리는 그의 도움으로 브라질에서 쓸 휴대전화용 유심칩을 샀다.(이 유심칩은 포르투갈어로만 사용법을 안내하는 외국인에게 불친절한 서비스 때문에 사용법을 알 길이 없어서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쇼핑 후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푸드 코트에 있는 작은 뷔페에 들렀다. 우리는 옆 사람 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흘끗거리며 입맛에 맞을 만한 음식들로 골라 담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것은 인원 수나 나이, 음식의 종류에 따라 값을 정하는 우리네 뷔페와 달리, 음식을 담은 접시를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잰 다음 그 무게에 따라 값을 정하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원하는 음식을 위주로 골라먹을 수도 있고 먹을 만큼만 담아서 먹을 테니 음식 낭비를 없애는 합리적인 방식인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디마에게 집 근처의 동네 식료품 가게에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마트에서 아이들 간식거리와 아침식사 거리를 사서 양손에 가득 들고 올디마의 집으로 돌아오는데, 좀 전에 설명을 들었을 때는 알 것만 같았던 길인데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 걸으면 걸을수록 자꾸만 낯선 길이 나타났다.
낭패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불한당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저쪽 건너편에 키 작은 중년 여성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기에 달려가서 도움을 청했더니 영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다급한 표정과 내 손에 들려있는 주소를 보고는 우리가 길을 찾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우리를 이끌고 가로등이 밝게 켜진 가판대 서점으로 들어가 그곳의 할아버지에게 주소를 내보이며 도움을 청했다. 할아버지도 잘 모르겠다며 그 옆 가게 아저씨를 불러다 물어보신 후 그 세 사람이 내린 결론은, 이 근처임에는 분명한데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겠으니 위치를 아는 택시를 타고 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실은 아무 택시나 잡아탔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택시도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분들이 우리 마음을 알아차리셨던지 친히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나가서 택시를 잡은 후 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물어봐 주고는 안전하게 태워다 주라며 부탁까지 해주셨다. 도착하고 보니 올디마의 집은 택시로 겨우 네 블록 거리에 있었다.
거리에서 만났던 그분들의 친절한 도움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늦은 밤 어두운 거리에서 두려움에 떨며 상파울루의 밤거리를 하염없이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여행의 첫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