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나스까 - 2015/07/02(목)
밤 버스를 타고 꾸스꼬에서 나스까로 가는 길. 이 험한 길에 대한 명성은 워낙 들어왔던 터라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지만 세상에는 마음의 각오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제법 많다.
밤새 달리던 버스가 아침 일찍 사막이 시작되는 구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승객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줬다. ‘멀미에 대비해서 먹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하고 잠깐 고민했지만 엄연히 차비에 포함된 도시락을 먹지 않는 것은 가난한 배낭 여행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되어 잘 넘어가지도 않는 도시락을 억지로 열심히 먹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버스가 밥을 준 후 그렇게 구불구불하고 험한 길을 오전 내내 달려가리라고는.
버스는 사방이 메마르고 거친 사막지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길 위를 곡예하듯이 빙글빙글 돌며 빠른 속도로 내달렸고, 하필 2층에 몸을 실은 우리 셋은 짐짝처럼 전후좌우로 몸을 부림 당했다. 우리 셋 중 가장 먼저 멀미의 신호가 온 사람은 제나였다. 멀미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제나 손을 잡고 버스 손잡이에 매달리다시피 하며 어렵사리 1층의 화장실로 내려가니 우리보다 먼저 멀미를 시작한 사람이 화장실을 차지하고 열심히 구토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던 제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복도 바닥에 토했고 그 토사물을 치우다가 나도 그만 그 위에 토하고 말았다. 먼저 화장실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 지친 몰골로 나오고 나서 그제야 화장실을 차지한 제나와 나는 번갈아가며 토하고 더 토할 것이 남지 않을 만큼 다 토해낸 후에도 계속 구역질을 했다. 2층 좌석과 1층의 화장실을 오르내릴 기운조차 모두 소진한 우리 둘은 화장실 앞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있다가 신호가 올 때마다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러기를 서너 시간 반복하며 체력이 다 고갈될 즈음 버스가 드디어 나스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여행사 호객꾼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으나 우리는 일단 땅에 발을 딛고 좀 걷고 싶었다. 걷다 쉬기를 반복하며 정신을 차릴 즈음 우리 셋을 향해 미소 짓는 한 중년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반백의 머리를 뒤로 땋아 내린 중년 여인은 여행사를 운영하는 분이었다. 유창한 영어실력과 점잖고 우아한 태도를 지닌 그녀가 설득력 있는 톤으로 차분하게 경비행기 상품을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니 적어도 바가지를 씌우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이 생겨 그곳에서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어딘가 모르게 친숙한 외모는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온듯했다. 구순이 넘은 그녀의 어머니는 손수 마떼차와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따님을 찾아오셨는데 그녀가 직접 허브 풀을 말려 끓여준 마떼차는 지금까지 마셔온 티백 타입의 마떼차와는 그 맛의 깊이가 달랐다. 밤부터 아침까지 멀미로 엉망이 된 속을 편안히 가라앉혀주는 듯했다.
버스 멀미의 후유증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제나는 나스까 라인을 보는 경비행기를 태우지 않기로 하고 나와 형주가 번갈아 경비행기를 타며 제나를 돌보기로 했다. 나도 버스 멀미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상태였지만 형주에게 회복할 시간을 좀 더 주기 위해 내가 먼저 경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형주와 제나를 투어 여행사에 남겨두고 나 혼자 경비행기 이착륙장으로 이동해서 도착하자마자 바로 뜨는 경비행기에 올라탔다. 경비행기에 함께 탄 일행은 콜롬비아에서 온 4인 가족과 캐나다에서 온 청년과 나 이렇게 여섯이었다. 비행기는 이륙하자마자 나스까라는 거대한 모래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들을 찾는 숨은 그림 찾기를 시작했다.
고래(63 미터), 외계인(32 미터), 원숭이(110 미터), 개(51 미터), 벌새(96 미터), 콘도르(136 미터), 거미(46 미터), 알카트라즈 새(300 미터), 앵무새(200 미터), 나무(70 미터), 손(45 미터). 11개의 그림 외에도 삼각형과 화살표, 직사각형 등 다양한 기하학적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림들은 수백 미터 크기였음에도 직선 부분에서는 자를 대고 그린 듯 정확했고 좌우 대칭이 분명했으며 각 대상물의 특징을 재치 있게 과장하여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1,500년이 지난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도 전혀 촌스럽거나 구닥다리처럼 느껴지지 않는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그중 형주와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동그란 머리에 긴 팔다리와 돌돌 말린 긴 꼬리를 가진 원숭이와, 완벽한 좌우대칭에 특징을 잘 잡아낸 벌새와 콘도르, 거미, 알카트라즈 새, 나무 그림이었다. 나는 나와 나란히 앉은 캐나다 청년과 협력하여 서로 먼저 찾은 그림을 알려주며 11개의 라인 중 10개를 찾아냈다.
어릴 적 국민학교 도서관의 과학 잡지에서 봤었던 나스까 라인의 신비에 대한 여러 가지 설들 중에서 가장 논란의 대상이었던 것은 바로 외계인이었다. 기원후 1~7세기경에 그려진 그림에 외계인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나스까 라인이 그려질 당시에는 외계인과 지구인 간에 교류가 있었다든가, 외계인의 지배를 받아 외계인의 지시로 나스까 라인을 그렸다든가 하는 그런 류의 억측들도 있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다른 그림들에 비해 외계인은 좀 어설프게 그려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선의 굵기도 일정치 않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덜 잡힌 듯하다. 다른 그림들이 그려진 시기와 달리 한참 후 현대에 들어와서 누군가 세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려 넣은 게 아닐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심이 살짝 고개를 쳐든다.
그렇게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동안 경비행기가 좌우로 심하게 선회하며 비행을 하니 버스 멀미에서 헤어나지 못한 몸은 금세 다시 뒤집히기 시작했다. 내가 멀미의 고통으로 앞좌석을 부여잡고 버티려고 애쓰는 동안 내 옆의 캐나다 청년은 나보다 먼저 구토 봉투를 입에 대고 비행기의 착륙을 고대하기 시작했으나 비행기는 예정된 것을 다 보여 준 후에야 출발했던 이착륙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대기실에서 제나와 함께 엄마를 기다리던 형주가 바통을 이어받아 경비행기를 타러 가고, 나는 제나와 함께 나스까 라인에 대한 BBC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메마른 사막에서 물을 기원할 목적으로 50~300미터 크기의 그림을 그렸을 당시 사람들의 절박함과 고된 노동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흐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림들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놓기도 하고 나스까 라인을 흉내 낸 조악한 그림과 글씨들로 선조들의 유산을 파괴하는 무지한 후손들의 행태를 그 그림들을 선물 받은 하늘 위의 어떤 존재가 지켜보고 있다면 ‘끌끌’ 혀를 찰 노릇이겠다.
우리는 나스까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이까로 향했다.
오후에 출발한 버스는 해지는 사막 풍경 속을 4시간 달려 저녁 늦은 시간에 이까에 도착했고, 우리는 거기서 택시를 타고 인공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 와까치나로 갔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바나나 호스텔에 묵으려고 했으나 아이들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그 옆의 조금 허름한 숙소에서 머물기로 했다. 허름한 곳이면 어떠랴, 지친 몸을 뉠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