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이까 - 2015/07/03(금)
아침 닭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어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지난밤에 늦게 도착해 아무것도 안보였던 이 동네는 온통 모래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놀란 마음에 아이들을 데리고 숙소 바로 뒤 모래언덕에 올랐다. 칠레 아따까마 사막의 모래밭에서 땅강아지처럼 신나서 놀던 제나는 이까의 모래밭에서도 신발 두 짝을 다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신나게 모래를 뒤집어쓰고 놀았다. 아침부터 모래언덕 꼭대기에서 서핑하는 사람들, 그들을 따라 신나게 겅중대는 동네 개들로 사막 마을의 아침 풍경은 경쾌다.
캐이블 채널을 보지 않는 비문명권(?)에 사는 우리 가족은 보지 못해서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곳을 다녀가면서 버기 투어가 남미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모양이었다. 남미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여행자들 중에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한 목소리로 버기 투어가 정말 재미있으니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고 강력추천해주었더랬다.
기대와 설렘으로 약속된 시간에 숙소 앞에 대기하고 있으니 엄청난 크기의 바퀴를 가진 경주용 자동차처럼 생긴 버기카가 지축을 울리며 우리 앞에 등장했다. 우리와 함께 버기카에 탔던 일행은 페루 일가족 네 명과 미국 아가씨 셋이었는데, 마초 기질의 운전기사가 부릉부릉 시동을 걸자마자 우리 일행은 모두 그 소리와 힘에 놀라 기절할 듯 소리를 질렀다. 그 반응에 흥이 났던지 운전기사는 더 거칠게 버기카를 몰아 우리 모두를 거의 반 실성하게 만들었다.
모래 언덕 위에서의 질주 느낌은 단단한 도로에서의 그것과 360도 달랐다. 처음 출발할 때는 푹신하게 바퀴가 꺼지며 헛도는 느낌이지만 버기카의 힘이 워낙 세니까 ‘부릉’하고 액셀을 밟으면 모래를 밀쳐내며 즉각적으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모래밭의 좌우 높낮이가 맞지 않아 차체는 늘 좌우로 흔들리는 느낌이었고, 그렇게 호전적으로 용을 쓰며 눈앞에 펼쳐진 언덕으로 치달아 달리던 버기카는 일순간 언덕 위에서 아래로 고꾸라지듯이 떨어졌다. 버기카에 서스펜션(충격흡수 장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차체가 모래 언덕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의 충격은 모두 승객들의 몸으로 온전히 흡수되었다. 모두들 충격과 공포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는데 마초 운전기사는 또 다른 언덕을 향해 전력질주를 시작했고 이내 언덕 아래로 날아가다가 ‘쿠궁’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모래 언덕 위를 질주하는 여러 대의 버기카 운전기사들은 사막 위에서 다른 차량을 만나기라도 할라치면 누가 더 빠른가 경주를 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우리들을 모래바닥에 내팽개칠 듯이 급선회를 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기겁했던 사실은 제나를 무릎에 앉히고 그 위에 맸던 안전벨트가 마초 운전기사의 기상천외한 운전 솜씨 덕분에 중간에 풀렸던 모양이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차체가 언덕에서 떨어질 때 거의 기립하듯이 튀어 오르며 차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신난다고 제나랑 목이 갈라져라 소리를 ‘꺄악’ 질러대며 모래 위의 질주를 즐겼으니 차체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30여분을 광란의 질주를 즐겼을까? 버기카는 깊은 골이 패인 모래언덕 위에 멈춰 서더니 차 뒤쪽에서 보드와 양초 조각을 하나씩 나눠줬다.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뜨악한 표정으로 운전기사를 바라보니 양초를 보드 바닥에 문지르는 시늉을 했다. ‘이게 샌드 보드라는 것이 로구나’라는 뒤늦은 깨달음 뒤에 든 생각은 ‘그럼, 이 깊은 모래 언덕 아래로 이 보드를 타고 내려가라는 건가? 제나를 등에 태우고?’ 그러나 나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달리 우리 버기카 일행은 겁도 없이 하나 둘 서핑보드에 가슴을 대고 엎드려 비명을 지르며 급경사의 모래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형주도 오랜 망설임 끝에 ‘으악~’ 비명을 지르며 내려가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 혼자서도 못 탈판인데 제나까지 등에 태우고 타는 건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한 손에 보드를 붙들고 다른 한 손에 제나 손을 꼭 잡고 부들부들 떨고 서 있자, 운전기사가 다가오더니 반강제로 나를 엎드리게 하고 그 위에 제나를 태우고 모래 언덕 아래로 그냥 밀어버렸다.
“으아~ 아하하하~ 아아아악”
제나의 무게까지 얹어진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속도감과 스릴은 지금껏 타봤던 그 어떤 놀이기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서웠어도 입을 다물고 탈 걸, 비명을 지르느라 입을 벌리고 샌드 보딩을 하느라 입에 모래가 한 줌은 들어갔나 보다. 내 등에 올라타 내 어깨를 꼭 움켜쥐고 그 아찔한 모래 언덕을 내려온 제나는 거의 다 내려온 지점에서 내가 제동을 걸자 내 등에서 판다 곰처럼 굴러 떨어졌다. 그러더니 쪼르르 달려와서는 “엄마, 진짜 재미있다. 한 번 더! 한 번 더!”를 외쳤다.
그렇게 두 번 더 샌드 보딩을 하고 나서 마초 운전기사의 세계 최강 험악한 운전 실력을 다시 온몸으로 경험하고는 일몰이 아름다운 모래언덕에 앉아 사막의 일몰을 감상했다. 그리고 다시 자리를 옮겨 어둑해진 와까치나 마을의 작은 오아시스가 내려다보이는 모래언덕에 앉아 사막 마을이 서서히 어둠에 잠기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숙소로 돌아와 온몸에 묻은 모래를 구석구석 씻어내고, 길가의 푸드트럭에서 햄버거와 피자로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 때 까지도 우리는 혼을 쏙 빼는 버기 투어의 스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제나한테 남미에 다시 가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니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사막에서 버기카 타는 거!"라고 대답했다.
‘그래, 그러자. 그런데 다음엔 너 혼자 타야 한다. 내 등에 매달리지 말고.'